2020. 05. 16. 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 일상을 벗어나려고 늘 먼 곳만을 바라보곤 했다. 코로나로 타의적, 자발적 억류기를 보내면서 언제쯤 해외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가늠해 보지만 알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여행객 입국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하고, 루프트한자는 6월부터 130개국 노선을 운행한다고 한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지역들이고, 인종차별까지 일어나는 먼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당분간 안 들것이다.
'먼 곳'에 가지 못하면서 눈을 돌려 가까운 곳에 신록이 아름답고 조용한 곳들이 있는 걸 알게 되어 고마운 나날들이다. 강씨봉.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데 집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가평에 있다. 숲은 울창하고 전날 비가 와서 논남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우렁찼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 숲이 깊어서 산골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임도와 잔잔한 돌이 섞인 흙길이 번갈아 나와서 새의 지저귐, 계곡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차분히 걷기에 좋다. 눈을 들면 사방이 각기 다른 연둣빛 농담으로 이루어진 수목들이 마치 보드라운 담요처럼 펼쳐져 있다. 여름의 녹음 전에 거치게 되는 계절의 여왕 5월에 돋는 신록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뻥 뚫린다. 요즘 마음이 자꾸 뾰족해지려고 하는데 넓고 깊은 숲 속에서 뾰족한 마음을 좀 갈아서 둥글게 만들고 싶었지만 미션은... 음 실패에 가까운 걸로.
용산에서 ITX를 타고 11시쯤 가평역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한 일행의 차에 올랐다. 가평역에서 40여분 정도 달리면서 안개가 숨바꼭질하는 모습을 실컷 즐겼다. 가평역에서 출발했을 때 물기를 많이 머금은 대기는 안개를 산허리까지 감싸더니, 강씨봉에 도착할 때쯤 안개는 산꼭대기로 도망갔다. 달리면서 지인과 아름다운 풍경에 내내 감탄사를 주고받았다. 뾰족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숲의 모습은 편안했다. 편안함은 특별하지 않은 익숙한 모습에서 주로 얻을 수 있다. 강씨봉휴야림이 간직한 모습은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양한 나무들의 군락지였다. 같은 나무라도 조금 가까이서 보면 잎의 크기도 모양도 색도 다 달랐다. 차이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차이였다.
임도에는 산취나물과 쑥이 지천이었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배우는 게 참 많다. 취나물은 나물로 완성된 형태로만 알고 있는 나는야 식.알.못. 함께 간 지인들은 기꺼이 채집인으로 변신해서 취나물과 쑥을 뜯었다. 그리하여 쑥-다발을 만들었다.
양치식물이라는 관중 밭(?). 모여있으니 꼭 꽃 같다. 둥글게 모여 잎이 나서 다발처럼 자라고 있다. 숲길을 걸으면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오랫동안 조용히 그 자리에 있지만 알아봐 주는 이만 발견할 수 있는 식물의 세계는 오묘하다. 식물은 먼저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이에게 많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내향인, 트리플 A형쯤 되려나. 아무튼 이렇게 배우고 저렇게 배운다. 아는 만큼 세상을 본다고 했다. 식물에 애정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육식성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다.
계곡이 깊지는 않지만 여름에 물놀이하고 발을 담그며 도란도란하기에는 충분하다.
콘크리트에 찌들었던 눈이 시원해지는 호사를 누렸다. 사방이 푸르고 방문객이 드물어서 초록 커튼이 드리워진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푸른 숲. 서울 가까이에 이런 울창한 초록숲을 알게 된 것만으로 기쁜 하루였다.
어떻게 하면 어여쁜 초록이들을 핸드폰에 담을까, 몸을 기울이면서 고심해 보지만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따라갈 수 없는 법. 사진을 보면 어여쁨이 다 안 담겨서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