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을 TV 영화에서 무료로 봤다. 무료 영화 시리즈들 리스트에 20년대 시적 리얼리즘 영화부터 60년대 누벨바그 영화까지 있는 것을 보고 흥분되면서도 격세지감을 느꼈다. 거실 한 귀퉁이에 있는 내 DVD들을 이제 별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구시대의 물건이 되어버렸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의문을 갖는 세대가 곧 나올 것이다.
이 DVD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공부하던 시절, 열정의 부스러기들이다. 매주 알라딘에서 출시된 리스트를 열독하고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가격이 내려가면 장바구니에 얼른 넣고 구매를 하곤 했다. 알라딘에서 이런 서비스를 하기 전에 직접 용산전자 상가에 가서 공수한 것들도 있다. P2P 파일을 누군가 받으면 그 파일을 서로 옮겨 받곤 했던 시절을 거쳐 DVD 시대로 들어서면서 개인 소유가 쉬워졌다. 소유에 대한 욕망은 더 탐욕적이 되었고 지갑을 즐겁게 열어젖혔다.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는 편이지만 은퇴하면 나만의 AV실을 만들어 고전영화들을 실컷 보고 또 봐야지 하는 꿈에 부풀었다. 그래서 대부분 포장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곱게 모셔져 있다. 이를 어쩔.
시간은 흘러서 DVD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나는 DVD 플레이어도 없다. 플레이어가 없으면 DVD는 무용지물이다. 영화는 이제 USB에 파일로 담아 TV에 꽂으면 바로 볼 수 있는 시대이고, 구하기 힘든 영화는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잉마르 베리만 감독 영화들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감독 회고전을 할 때면 못 볼까 봐 매일 들어가서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몇 편을 볼지 리스트를 만드는 수고가 즐거웠다. 그때 아니면 못 본다는 희소성의 원칙은 바쁜 일정 속에서 틈만 나면 극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TV 앞에 편하게 앉아서 리모컨만 움직이면 세계영화사에서 다룬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DVD를 모았던 열정, 아트시네마로 틈만 나면 달려갔던 열정을 이제 TV에 바치면 된다. 반가운 영화들의 목록을 확인하고는 TV를 끄게 된다. 언제든 내가 원하면 볼 수 있으니까 언젠가 보겠지 하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나도 잘 안 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 열정이 빛을 바래기도 했지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에 놓칠 거라는 조급함도 사라져 버렸다. 희소성의 원칙이 인간에게는 행동의 추진력인가.
곱게 잠만 자고 있는 DVD를 볼 때마다 난감하다. DVD를 버리는 것은 내 과거 열정의 한 부분을 없애는 거라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편인데 유독 DVD와 책 소유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가 없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지나온 내 열정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