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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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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네모펀치 Jun 09. 2024

[모녀전쟁] #2. 우리 사이가 연인이라면

우린 서로의 타이밍을 놓친걸까

기억에는 길이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특정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낀다면

그와 비슷한 상황이 더 잘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소 20년 동안이나 우리는 맞지 않았다.

엄마의 절대적 존재가 필요했던 유아기를 제외하면

나는 끊임없이 엄마가 좋은데 엄마가 너무 두렵고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답답했다.

엄마를 떠올리면 답답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증오하는,

그렇지만 불쌍한 그런 감정이 든다.


신기하게도 살아온 시간 동안 그런 부정적인 감정만 느낀 것은 아닐텐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감정은 대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했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 용기 내서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던 몇 번의 사건이 있다.

하지만 깊은 우울에 빠져있던 엄마는 그런 말을 했다.

'좋은지도 모르겠다. 몸만 힘들고 꽃이 예쁘고 풍경이 예쁜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니가 가고싶어하니까 따라 간거지.'

내 딴에는 힘들게 시간을 내서 간 건데 이런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졌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엄마에게 어디를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엄마가 서울을 떠나 지방에 집을 구하러 가자고 나를 주말마다 끌고 갔다.

그 시절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던 때라 무척 힘들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서 따라갔다.

서울을 떠날 생각도 없었지만.

지방이라고 해도 집을 살 돈이 우리에게 있는지도 의문스러웠지만.

정말 매주마다 대한민국의 끝과 끝으로 집을 보러 갔는데,

엄마는 집을 고르지 못했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만 했다.

주로 토요일에 내려가서 일요일에 올라오는 일정이었는데,

숙소값이 비싸고 담배냄새가 난다며 숙소에서 자는 걸 싫어하셔서

모닝에 두명이 구겨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못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엄마의 집 아이쇼핑도 중단되었다.

그 땐 엄마는 안 힘들고 좋았을까?


엄마의 말을 들으면 엄마가 참 불쌍해진다.

그래서 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밉고 아빠도 밉고 엄마의 가족들도 다 밉고,

엄마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든 모든 사람을 미워하다가

결국에는 나까지 미워진다.


나는 엄마와 함께 있고 대화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 딴에는 나라도 살려고,

엄마는 깊은 우울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으니까

엄마를 방치하는 선택을 했다.


가끔 엄마가 말을 걸거나 연락이 오면 나는 점점 더 엄마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엄마 앞에서 항상 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엄마가 나한테 준 상처는 큰게 아니고, 엄마는 사과를 이미 다 했고,

엄마가 한 행동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고,

기억이 안나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아냐고?'

안다고 하면 아는데 그러냐고 할 것이고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냐고 할 것이기 때문에

주로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엄마의 말들에 점점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는 정말 내 입장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때면

미친년처럼 나도 같이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엄마가 황급히 본인 이야기를 멈추고 전화를 끊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분 좋게 만날때면 엄마는 내 표정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

나는 정말 결백하게 아무 표정도 안 짓고 있었는데도

표정이 왜그렇냐고 왜 기분나쁜 표정을 짓냐고 했다.

너는 표정에 다 드러난다고, 뻔히 보이는데 안 그런척 하기는,...

안경을 안 써서 눈이 안 보여 찡그릴 때도 왜 인상을 쓰냐고 다그쳤다.

인상을 자꾸 쓰는 걸 보니 엄마 말 들을 생각이 없다고 잔소리를 또 시작한다.

엄마와 나는 이미 역치가 턱 끝까지 차서 찰랑찰랑한 우물인데,

이제 한 바가지만 그렇게 부으면 서로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자식이 부모를 싫어하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의 존재를 갈구하기 때문에.

무수한 소통의 단절 끝에서 나는 이번에도 먼저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엄마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이제 자기 마음의 힘이 더 남아있지 않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더 이상 나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신이 손 내밀 때 딸인 내가 잘했으면 됐을 텐데,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린 이렇게 타이밍이 늘 안 맞는다.

연인이었으면 진작에 헤어졌을 타이밍이다.

그런데도 천륜이라는 연 때문에 아직도 헤어지지 못하고

이렇게 질척거리고 있다.


이제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애초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애들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냥 이혼하고 서로의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수개월 동안 생활비를 부쳐주지 않고 끝내 바람이 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아직 10대였던 난 이혼하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혼을 주저하는 엄마 모습에

나는 내 팔까지 그어가면서 내가 죽을 정도로 힘드니까 이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메세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강하게 거부하는데도 내가 팔 그은 사진을 촬영하여 아빠에게 전송했다.

이게 꼭 필요하다고 울면서 부탁하니 난 싫었는데도 결국엔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압박하려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대충 어떤 용도로 촬영했는지 짐작은 간다.

비록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과는 10년이 훌쩍 지나서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사건에서 엄마는 너무도 피해자였기 때문에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자식이면 당연히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딸이라도 이해해줬을 거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그 때 마음이 아팠을 거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사건에서 엄마가 너무 힘이 들었다.

엄마는 우울했고, 밝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딸년들은 엄마께 살가운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힘들지' 그 한마디만 딸들한테 들었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20대까지는 난 그 말이 이해가 안 됐다.

왜냐하면 나도 매일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엄마한테 그런 위로의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퇴근 후에 먹으라고 죽을 끓였는데

퇴근한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이렇게 맛이 없어서 어떻게 먹냐고

싱크대에 죽을 다 버렸다.

맛이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워낙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데 그 죽 한 그릇은 나름의 위로도 담겨있는 거였는데.

엄마는 살기 바빠서 그런 것까지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


30대가 된 지금은 그냥 그 한 마디 해줄걸 싶다.

그러면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지친 상태가 10년, 20년씩 지속되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냥 엄마를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고 불쌍하고 여린 인간으로 생각하여

힘들지, 한마디 해주고 엄마보다도 더 넓은 마음으로 엄마 말이 다 맞다고 해줄걸 그랬나싶다.

그러면 나도 지금 세상이 날 죽어라고 둘러싸고 패고있구나

하는 기분은 안들텐데.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타이밍이 늘 안 맞다.

전쟁은 계속되고, 지금은 잠시 휴전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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