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의 말처럼

사진: Unsplash의redcharlie

by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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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디플레이션이 온다.”

유명한 경제학 교수가 그때 뱉은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이제 빚은 없어야 하고,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부모가 30년 동안 쉬는 날 없이 새벽까지 죽어라 일만 했는데. 대출이 독이 되어 그들의 재산을 잠식하게 두지 않기를 바랐다. 그 교수가 그랬다는 것처럼, 집을 팔아 대출을 갚고 전세로 가야한다.


부모를 설득하여 집 A를 6억에 팔았다. 그리고 만족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뼈아프지만 부모는 안전하다. 이제 소소하게나마 원하던 삶을 편안하게 누리시리라.”


2014년,

“부모에게 부담주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결혼의 기본 전제였다.
최대한 우리의 힘으로 시작해보자. 우리는 충분히 똑똑하니까.


그리고 집 B를 사주겠다는 부모에게 극구 마다하고 5,000에 60. 월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선택은 모두 부모를 위한 선한 의도에서 나왔지만, 작위와 부작위(즉,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각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나의 그 의도를 깡그리 무시했다. 아니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만 흘러왔다.


2015년 6억이었던 집 A는 2021년 16억이 되었고, 2014년 2억이었던 집 B는 2021년 7억이 되었다.

6년만에 벌어진 차이가 15억. 아무리 양보해서 보려고 해도 10억의 차이였다.


내것도 아닌 부모의 것이었고, 그들이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무렵 결혼한 다른 친구들의 '부'는 아파트와 함께 빠르게 축적되고 있었다. "집? 집은 당연히 부모님이 해줬지"라며 자랑하던 친구는 오히려 경제적 효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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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이 사자성어의 뜻은 알아도 새옹의 이야기를 잘 알고 쓰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변방에 살던 어떤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을 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위로했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들을 잔뜩 이끌고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축하했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게 또 화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위로했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게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전쟁이 났고 장정들은 징집되어 전쟁에 나가 죽었지만 그 아들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단번에 월드스타가 되었던 '깐부할아버지' 오영수 배우를 기억하는가. 평생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그의 말년의 성공을 사람들은 축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큰 유명세를 가져오면서 (사실 관계를 떠나,) 묵혀져 있던 화살들이 드러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연예계나 셀럽들의 세상에서는 이런 유명세의 반작용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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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나. 우리는 정말로 현명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그 경제학 교수가 공부를 덜 해서 그런 예측을 학생들에게 나누었던 걸까? 그냥 누가 봐도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한 치"라는 단위조차 세상의 속도와 복잡도에 맞추어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눈 앞의 일을 정말로 일절 알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끊임 없이 이어졌었다.


결과가 선하지 못하였다면 나는 정말 선한 사람이 맞는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평생 선하고 현명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허상이었다. 선해도 선한게 아닐 수 있고,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현실에 닿았을 때에는 충분히 오만일 수 있다. 성실함이 가져다주는 가치와 보람이 이제는 너무 작아보였고 어떻게 보면 어리석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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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의 작위와 부작위의 결과가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지금. 그래서 나의 삶이 무너졌는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았다.


돈만 보자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회복을 하였지만, 그때의 경험과 생각은 엄청난 자양분이 되어 우리의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씩 직접 성취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우상향하고 있고, 우리의 성취는 그래도 차곡차곡 단단히 쌓여 불안함이 적다. 그리고 시대에 올라 타서 얼결에 얻은 부가 아니라는 점. 이 부분이 난 가장 좋다.


돈으로 보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부모님은 소박한 시골집을 하나 얻어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고, 우리가 직접 일구어낸 결과들은 더없는 만족감을 준다. 특히, 재미없는 사업을 그만두고 개발자로 전직한 나의 삶이 좋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절감'한 "새옹지마"의 자세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분명하게 해주었다. 그것도 좋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 수가 없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그때 집 A를 팔지 않고, 집 B를 신혼집으로 얻었던 내가 행복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당연히 행복하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 일이 '복'이될지 '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그 삶을 두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할걸 그랬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껄무새로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 살고있는 유니버스에 충실하게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거다.


"오히려 좋다."

내가 MZ들을 존중하고 좋아하게 된 문장이다. 이런 세계관이 요즘 '우희적 사고', '원영적사고'라는 말로 정리되어 다시금 즐거운 밈이 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딱 그만큼 행복해진다.

20240606123603718rqhf.jpg 우희적 사고: "얼마나 잘되려고 이럴까? 에피소드 하나 더 생긴다 생각하지, 뭐~" (유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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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그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어떤 시집에서 스치든 읽었던 이 글귀가 내가 이제까지의 삶에서 알게된 '유일한 정답'이다. 이게 늘 현실로 돌아오게 해주는 무게추가 되어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지금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눈앞의 문제를 그대로 보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하나씩 해결해가는 성취감으로 즐겁게 살아내고 있는 내가 좋다. 그렇게 생긴대로 살며 흐르는대로 흘러가는 것. 이게 불안과 불행을 많이 줄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흐르는대로 두는 편이다. 새옹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