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칠 월 이십구 일
고향에 갈 때마다 꼭 챙기는 물건이 있다. 여행용 목베개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잘 잔다. 수업 시간이나 회의 시간처럼 자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잘 잔다. 두 시간 반 걸리는 KTX나 SRT 뿐만 아니라 네 시간 반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도 중간에 한 번 깨는 것 빼고 푹 잘잔다. 이동시간에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들곤 하는데 지겹긴 하지만 그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여행이 조금 힘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얻은 온갖 병과 만성피로 덕분인 것 같았다.
작년에 고성으로 여행을 가기 직전에 여행용 목베개를 하나 샀다. 왜 진작 사지 않았을까? 고작 이것 하나가 정말 편했다. 인터넷에서 칠천오백 원짜리를 배송비 이천오백 원을 더해서 샀는데, 비싼 것은 얼마나 더 편할까 궁금해진다. 여행 갈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 무중력 의자(?)를 젖히고 목베개에 기대어 영화를 봐도 꿀이다. 부산행 비좁은 KTX에서도 이 목베개와 다이소 표 이천 원짜리 안대만 있으면 꿀잠 보장이다.
유일한 단점은 싸구려라서 커버 재질이 면이 아니다. 그래서 목이 가끔 따갑다. 다음에는 더 보드라운 목베개를 살 것이다. 참고로 나의 생일은 칠 월 이십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