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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여행기 #6 토론토

문구여행 #6. TORONTO PEN SHOPPE

by 너일론

다시 태평양과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 토론토에 왔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인구가 가장 많인 도시다. 오대호 연안에 위치하고 있고,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문구덕후의 여행은 언제나 문구점부터 시작된다.


TORONTO PEN SHOPPE

7 Case Goods Lane, Toronto, ON M5A 3C4 캐나다


지난번 원더 펜스(Wonder Pens)는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가야 했다면, 토론토 펜 샵(Toronto Pen Shoppe)은 남동쪽의 디스티럴리 디스트릭트에 있다. 이곳은 애틀랜타의 아처 페이퍼 굿즈(Archer Paper Goods)가 있던 폰즈 시티 마켓(Ponce City Market)처럼 역사가 있는 건물을 개조한 힙한 상권이다.


과거에 양조장이었던 이곳은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과 짙은 초록색 구조물들이 조화롭다. 맥주의 이동로였을까 싶은 굵은 파이프들도 여전히 건물 사이사이를 연결하고 있어 고풍스러운 산업시대를 추억하고 있다.


입구라 할 수 있는 곳에는 하트모양의 철제 구조물이 포토스폿을 대신하고 있고, 메인광장에는 양조장이었던 곳답게 맥주를 파는 펍이 있다. 주변으로는 설치미술품들과 디자이너의 편집샵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끌어들이고 있다. 현지인의 여유를 본떠 맥주를 한 잔 시켜보지만 친절한 서버는 내가 관광객임을 별 어려움 없이 읽어내는 눈치다.

토론토 펜 샵은 이 중앙광장에서 조금 더 변두리 쪽으로 가야 한다. 파란색 입간판을 기억해 두면 찾기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구점 반대편에 무료 공중 화장실이 있다. 특히 외국에서는 화장실에 미리 가두는 습관이 존엄성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수도 있다. 나도 알고 싶진 않았다.


토론토 펜 샵의 내부는 우드 계열의 인테리어와 백열전구 느낌의 조명으로 따뜻하게 꾸며져 있다. 문구점의 주인은 여성분인데, 내 짧은 영어에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친절히 답해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보이는 전경이다. 만년필 같은 고급 필기구들이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자리하고 있다. 까렌다쉬와 로이텀들이 보인다.


사진을 잘 살펴보면 까렌다쉬의 원색 펜케이스 옆에 언뜻 파란색 커피캡슐로 보이는 펜꽂이가 있다. 얼핏 봤을 때는 영락없이 커피캡슐인데 펜이 꽂혀 있는 재미있는 디자인의 오브제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스프링노트들과 틴캔 재질의 공구함들이 있다. 빨갛고 파란 원색의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도 틴캔 재질을 좋아하는데 틴캔 공구함이라니 하나 갖고 싶긴 하다. 실용성과 내구성은 떨어질 것 같지만 그게 제품 디자인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장식장 상단에는 골동품 같은 느낌의 소품들도 있어 눈길을 끌지만 오늘은 필드노트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한쪽에는 트레블러스의 코너가 따로 있다. 원래는 미도리에서 만들던 브랜드인데 언제부턴가 미도리의 이름을 빼고 단독 브랜드로 출시되고 있다. 가죽케이스와 내부 노트들, 고무밴드를 커스텀할 수 있고, '참'이라 불리는 금속 장식품으로 꾸밀 수도 있어 다꾸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트레블러스에서는 황동 재질의 연필인 불릿펜슬(Bullet Pencil)도 출시된다. 앞부분을 꺼내서 뒤집어 끼우면 연필이 되는 구조인데, 도쿄 에디션을 토론토에서 만나게 됐다. 보안 검색대에서 총알로 오인받을까 싶어 구입을 망설이고 말았다.


애틀랜타에서 시작된 필드노트를 찾는 여정은 세계를 돌고 돌아 토론토에서 끝났다. 지리적으로는 미대륙 동부에서 시작하고 끝냈으니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두 도시의 사이에는 1년 반이라는 시간차가 있다. 그 사이에 출장 간 도시를 계산해 보면 지구 몇 바퀴는 돌았으리라.


크래프트지 표지가 필드노트의 기본 라인업이다. 심플하고, 작고 가볍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니다 생각이 피어날 때마다 붙잡아두기 제격이다. 내부는 줄무늬, 바둑판무늬, 점무늬로 되어 있어 심플하다.


화려한 일러스트가 있는 버전은 미국의 국립공원 시리즈다. 그랑 테톤과 세쿼이아 국립공원 등이 있는 D 시리즈를 사 왔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버전이나 한정판을 발매하는 것이 덕후들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나도 나만의 문구를 만든다면 심혈을 기울여 한정판을 만들어야지.


아, 크래프트지의 기본 라인업 중 가장 오른쪽의 노트를 잘 보면 제본이 반대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뒤집어 놓은 것이 아니라 표지를 반대로 넘길 수 있게 만든 제품인데, Left-Handed라고 적혀있다. 번역하자면 '왼손잡이용'인데 이런 다소 엉뚱한 디테일이 브랜드의 매니아층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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