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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Sep 09. 2022

보험 문제로 진작 죽을 수 없던 태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미국에서는 상상보다 자주 있는 일

보통 삶과 죽음이라고 한다. 살아야 죽을 수 있으니까. 허나 살기 전에 죽는 생명체가 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아의 특성상 고독한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한 엄마의 몸 안에서 아니면 엄마 아빠의 품에서 죽을 수 있는 인간 최소한의 존엄성이 지켜진다.

태아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기도 한다. 가끔씩 태아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거나 느껴지지 않는다며 산모병원에 온다. 이미 사망한 아기가 나오기도 한다. 혹시라도 살릴  있다는 희망하에 산모는 전신마취를 한다. 아마도 불필요한 수술, 응급 제왕절개로 엄마의 배를 가른다. 물에 빠진 사람에겐 일분일초가 중요한 순간이듯 태아도 마찬가지이다. 최대한 급박하게 절개를 하고 아기를 꺼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면, 이제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손에 달린 것이다. 최대한 빨리 상태를 확인한다.

탯줄을 빨리 움켜줘서 심장박동 수를 확인하다. 대부분 느껴지지 않는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간 아니면  경계에서 누워있는 아기의 가슴에 청진기를 댄다. 혹시나 나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심장이 아주 가늘게 뛰어있을 까 봐.  사이에 빵빵한 백을 짜서 공기와 산소를 공급하고 입안의 분비물을 뽑아낸다. 간호사는 바이탈을   있는 선들을 연결한다.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빛의 속도로 기도 삽관을 마쳐야 하며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심장을 뛰게 해야만 한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아기 가슴을 누른다. 뛰지 않는 심장을 위해 손가락으로 가슴을 눌러서 혈액을 펌프 하는 것이다.

소독제를 들이붓고 탯줄을  묶어야 한다. 그리고 메스로 탯줄을 잘라 혈관을 구분해 최대한 멸균상태로 탯줄 혈관에 실 같은 관을 넣고 약을 수액을 아니면 혈액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면 혹시라도 아기의 작은 심장이 다시 뛰기라도 할까 봐. 가끔은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넜다. 시간이  흘러서 사후 경직이  아기도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러나 너무 넘치지는 않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그러다 경직이 풀어지는 아기도 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아기를 보내  차례이다.

엄마는 전신마취라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다. 다른 보호자, 대부분 아버지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데리고 와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혹시라도 그게 위로가 될까 봐.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아기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잡고 삶의 땅으로   있는 시간이 다했다고 그럴 힘조차 없었다고 말이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지우고 싶지만 지울  없는 비명 소리 같은 아니 동물 같은 소리를 내면 울부짖는다. 차마  고통을 상상할  없기에,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고통이기에 어쭙잖은 위로를 해야 할지 아니면 조용히 밀도 짙은 침묵을 지켜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러다 나도  기억나지 않는 말로 유감을 표하고 조의를 표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자꾸 도망가려는 정신줄을 잡고 나의 의무를   있다.  환자의 상태와 치료의 과정을 설명하고 마지막 경과, 죽음을 전달하며 의사로서의 의무는 끝이 난다. 하지만 나도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엄마로서 해야 하는 위로의 말과 반의 반도 안 되는 공감의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미래에 대한 미확신과  아이에 대한 걱정  몸상태에 대한 염려로 마지막 지각활동을 마친 산모에게 눈을 떠보니 본인 혼자 회복실로 덩그러니 누워있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은 정신이  돌아온 상태이거나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몽롱하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의 산모에게 호르몬의 불균형과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는 엄마에게 나는 말해야 한다. 아기가 죽었다고. 반드시  말을 써야만 한다. 죽었다. 이겨내지 못했다, 아기를 잃었다가 아닌 ‘죽었다라는 말을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가족들은 그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작은 희망, 내가 사랑하는 아기가 혹시나 살아있을  하는 희망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그들은 모른다.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물론 미국 문화상 ‘죽었다말은 거의 쓰지 않는 다. 다른 완곡한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미운  말을 써야 한다. 아기가 죽었다. 그리고 얼이 빠진 산모에게 아니 이제는 아기를 잃은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아기는 아마 죽은   시간이 지난  같다고. 그리고 다시 의사의 의무로 돌아가 혹시 부검을 원하냐고 물어봐야 한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의사의 의무를 다하고  사람으로서  엄마로서 위로의 말을 전해도,  부분에서는 나는 그냥  명의 의사가 된다. 같이 흘리던 눈물과 공감의 시간이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같이 슬퍼하던  다른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명의 의사로 남는다. 그래도 나의 진심은 전해지기 바라면서

이런 힘든 과정 없이 부모의 선택으로 죽는 태아도 있다. 요새 미국에서는 낙태가 위헌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되고 있다. 2022 여름 연방 대법원은 1973 낙태가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뒤집었다. 딸이 엄마와 할머니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덜해진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보다 못해 대통령까지 나서 통탄을 공개적으로 했다. 미국의 부끄러움 민낯이다. 그래도 주마다 결정할 자유가 주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낙태가 위법이 아니다. 임신 13주까지는 약이나 시술로 임신중절을   있다. 24  전까지도 시술로 임신 중절이 허락된다. 하지만 24  이후  500그람의 무게가 되면 불가능이다. 물론 산모의 건강이 위험하면 예외가 된다.

내가 아직 수련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소아 심장과 교수님과 고위험 산부인과 교수님, 그리고 또 산모와 함께 상담시간을 가졌다. 아기는 선천적으로 심장 기형이 너무 심해 태어나도 살 확률이 크지 않고 또 행여나 살아난다고 해도 많은 수술과 합병증이 예상되는 아기였다. 산모는 아기를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모두 그 의견에 동의했다. 아직 주수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아기를 지우는 것 자체가 큰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산모는 보험이 없는 취약계층의 여자였다. 어쩌다 보니 보험을 신청하고 보험이 적용이 되기까지 시간이 좀 많이 흘렀다. 이제 아기는 30주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아기의 모습으로 배가 부쩍이나 나온 엄마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교수님들과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벌써 아기를 지우고 임신을 끝내야 했을 엄마가 아직도 임신한 채로 죽을 운명의 아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임신과 함께 오는 모든 위험을 아직도 가지고 곧 잃을 아기를 품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어떨까. 특히나 소아 심장과 교수님은 분노했고 이 말도 안 되는 보험제도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 소아 심장과 교수님은 자세히 보면 손가락 끝이 곤봉 모양이다. 선천적 심장 질병의 소유자인 것이다. 수많은 수술을 견뎌냈고 지금은 버젓이 소아 심장과 교수가 되어 태아부터 아기, 청소년, 그리고 선천적 심장병을 가진 어른 환자들까지 돌보는 마음이 따듯한 교수님. 공감의 차원이 다른 유일무이한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곧바로 전화 한 통을 걸었고 산모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다 준비되어 있으니 이 병원으로 가면 된다고. 둘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보는 모든 이들의 눈이 다 벌게 지거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 산모는 그 길로 즉시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아기를 보냈다. 엄마의 튼튼한 태반으로 공급받은 산소와 영양소로 태아의 심장을 힘차게 뛰고 있었다. 엄마 밖에서의 아기의 심장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무용지물인 심장이었으나, 엄마 안에서는 열심히 혈액을 공급하는 건실한 심장이었다. 그런 심장은 약물을 투여받자마자 곧 멈추었다. 너무 커 버린 아기라 심장이 멈추고 죽은 아기를 꺼내는 것 또한 산모에게는 큰 위험이고 또 어찌 보면 불필요했던 과정이었다.

나와 각별했던 소아 심장과 교수님은 코로나 팬데믹 중 갑자기 나빠진 심장 때문에 돌아가셨다. 나는 많이 울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아이의 순수함과 재미를 추구하시는 분이었다. 나와 격의 없는 장난을 치고 병원 복도에서 장난스러운 격투를 치러 주던 유일무이한 분이 사라지신 것이다. 그분의 장례식은 원하신 대로 그분의 뒷마당에서 치러졌다. 참석자들은 손수 고른 식물을 가져왔다. 나는 ‘사랑, 애정을 표현하다’라는 꽃말을 가진 서양난을 가져갔다. 순수한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셨고 사회적인 문제로 너무 길게 지속된 산모의 임신기간을 전화 한 통으로 끝내버릴 만큼의 능력자셨다. 아직도 그분의 격앙된 목소리가 산모의 손을 잡아주던 곤봉 모양의 손톱을 가진 약간 푸르스름했던 그분의 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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