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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Nov 21. 2022

벼락 두 번 맞은 아기

18번 삼염색체 증후군도 모자라 미숙아로 태어났다.

안젤라(가명)는 죽을 운명이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18번 삼염색체 증후군도 모자라 미숙아로 태어났다. 속된 말로 말하는 벼락 두 번 맞은 아기였다. 살 수 없는 운명, 18번 염색체 하나를 더 달고 너무 일찍 태어났다. 불운을 둘이나 붙어 나온 아기였다. 1 킬로도 채 안 되는 작은 몸에 내장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입과 연결된 식도는 막혀있고 위와 연결된 식도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배 왼쪽에 있어할 위는 오른쪽에, 오른쪽에 있어야 할 간은 왼쪽에, 신장도 배 아래쪽에 강낭콩 같은 모양으로 내려앉아있었다. 싹이 나서 쑥쑥 자라야 할  아기가 강낭콩으로 남아 힘없이 주저앉은 처지였다. 심장에도 구멍이 있었다. 비정상으로 만들어진 장기를 찾는 것이 정상적인 장기를 찾는 것보다 쉬운 아기였다. 18번 유전자 하나가 더 있을 뿐인데 온 세포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송된 안젤라는 콧줄이 내려가지 않았다. 급히 찍은 엑스레이에는 가슴 위쪽에 도르르 말려있는 콧줄과 공기가 가득 차 빵빵한 위가 턱 하니 나와 있었다. 어차피 살길이 막혀 있다는 운명을 함축한 사진 같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의 아기에게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안젤라의 부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젤라가 신의 가호로 살아 나왔으니 다시 신의 은총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생명을 구하는 수술을 모두 다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어이없게도 건강해진 안젤라와 행복하게 집에 돌아가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어떤 의사의 조언이나 이미 알려진 사례를 아무리 들어도 그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라는 특별한 아기여서 그럴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결국 신생아분과 의사는 수술을 해줄 소아외과 의사를 백방으로 찾아야 했다. 대부분의 외과의는 결코 죽을 아기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주변에 있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시도해 보았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전원을 받아줄 병원은 있었으나 수술해 줄 소아외과 의사는 없었다. 3시간 거리에 있는 큰 대학병원의 소아외과의 한 명이 기꺼이 수술해 주겠다고 동의했다. 그렇게 안젤라의 전원이 결정되었다.  

소아외과 의사가 안젤라를 처음 본 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젤라가 작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팔다리, 작디작은 턱과 주먹만 한 머리가 그를 맞이했다. 아기가 갑자기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실제로 태어났을 때부터 몸무게 부쩍 줄었다가 다시 회복하는 다른 아기와는 달리, 안젤라의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 보자마자 그는 알았던 것 같다. 성공적인 수술은 힘들 것이라는 것을. 수술을 성공하더라도 회복해서 집으로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영양사, 약사, 의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최고의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맞춤 주사액을 줘도 소용없었다. 안젤라의 몸무게는 도대체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안젤라는 겨우 수술실로 향했다. 작은 안젤라의 몸은 차가운 수술실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서늘하게 식어갔다. 따뜻한 담요와 뜨거운 공기를 주입해도 체온은 오르지 않았다. 수술은 점점 길어지고 겨우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안젤라의 체온은 너무 낮아 측정이 불가능했다. 차갑게 식은 안젤라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엄마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울음을 내질렀다.   

그 후로도 안젤라는 집에 가기 위한 두 가지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목과 배에 구멍을 뚫어 숨과 영양을 넣어 주는 삶이 시작되었다. 목구멍 주위는 시뻘겋게 감염되고 뱃구멍에 모유를 넣어줘도 위와 장은 소화시키지 못했다. 기계가 때맞춰 넣어주는 숨이 불편했던 안젤라는 자주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를 떨어뜨리며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안젤라의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는 다시는 오르지 않았다. 안젤라의 부모는 빠르게 운전해 병원에 당도했다. 안젤라의 심장이 멎은 지는 오래였다. 어느 누구도 안젤라의 사망선고를 내리지 않아 어찌 보면 살아있는 안젤라는 부모의 품에 안겼다. 실로 깜깜한 병실 밖의 세상과 마음적으로 시커먼 병실 안의 세상이 하나로 합쳐졌다. 안젤라에게 일곱 달 동안 집이 되어줬던 엄마의 자궁 안과 같은 색깔이었다. 일곱 달 내내 안젤라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던 부모의 목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전과 같은 사랑이 담겨있는 공간이었다. 다만 슬픔이 조금 더 짙게 깔려 바닥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하늘에 뜬 구름같이 높고 새하얀 희망이 뭉개지는 순간이었다. 안젤라의 부모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젤라는 결국 불편함, 불안함, 고통 속에서만 살다 하늘로 떠났다.  

니큐 입원, 집중치료, 수술이 점차 늘고 있다. 생존율도 점차 오르고 있다.

13번 18번 삼염색체 증후군을 가진 아기의 수술이 미국 전역에서 점차 늘고 있다. 어떤 이는 이제 의료계에서도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 진단명 자체가 죽음을 의미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수술을 통해 삶을 연장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 가능하면 삶을 연장하는 것이, 치료를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다. 반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거절하는 이도 있다. 늘 변화하는 과학계와 진보하는 의료계이기에 한 가지 주장만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치료에 동의하고 거부하는 것은 의사 개인의 자유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소견을 넘어 아기에 대한 의무를 더해 부모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인적으로 미래가 없는 고통은 인간에게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13번 18번 삼염색체 증후군의 아기의 삶을 지지한다. 그래도 어딘가에 선을 그어져야 한다. 고통을 동반한 큰 수술을 받아야만 생명이 연장된다면, 그 연장된 삶은 너무 짧다면, 작은 아기에게 너무 큰 아픔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Acharya, Krishna, et al. "Medical and surgical interventions and outcomes for infants with trisomy 18 (T18) or trisomy 13 (T13) at children’s hospitals neonatal intensive care units (NICUs)." Journal of Perinatology 41.7 (2021): 1745-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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