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르바의 외형적 모습이 험상궂게 변하는 과정 속에 그 이름도 언어 속에서 다르게 자리 잡았으니 바로 '건달'이다.
(술 먹고 노래하며) 놀기만 좋아하면 "이 간달바 같은 놈"이란 소리를 듣다가 '건달'이 되었다나...
그런데 시대가 또 변해서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BTS와 같은 음악인들이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걸 보면 언어도 결국 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름 재미있는 부분은 일을 나타내는 글자 중에 業(업)이란 글자의 금문을 보면 악공이 악기를 들고 다니는 모양이란 점이다.
(이 글자가 인도 전통이나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 중국과 인도의 교류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간다르바에 대한 개념이 다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업(業)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려고 애쓰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저 큰 일 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을 추구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음(音)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소리만 계속 이어진다면 어떨까? 음악(音樂)의 즐거움은 없는 소음(騷音)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결국 업(業)이 인생에 가져다주는 만족은 UP(그리고 DOWN)을 통해 화음을 건드리면서 추구하는 바를 터치할 때에서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업(業)의 현장에서 인생의 파고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데, 그 만족감은 당연하지 않다는 점에서, 여기서 마무리 지으면 펀쿨섹좌스러운 글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업'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가 더 남았다.불교와 함께 한민족의 토착문화에 접두사로 자리 잡아 탄생한 아름다운 개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업둥이'다.
드라마 구미호뎐 1938 제4화에서는 업신이라는 용어로 등장했다.
업둥이(혹은 업신)는 집 앞에 누가 버리고 간 아이를 의미하는데, 그 혼에는 그 집안이 받을 복을 주관하는 신이 깃들어 있기에 잘 키우면 형통하게 된다는 민간 신앙이다.
불교 경전보다 업보의 개념을 확실히 알려주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뭐야 그냥 업보의 개념이잖아?'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생각은 관계주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면 그 특수성을 느낄 수 있을 때가 많다.
본 발표가 있던 모임에서 나는 운이라는 다소 미신적인 개념 한자를 관계주의적 관점에서 풀어주곤 한다. 거기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運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軍(군사 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운이란 건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내 삶의 군대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를 모은다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고, 훈련시킨다는 건 적절한 도움을 줘서 그 사람의 성장을 응원하는 것이다. 마침내 내가 승부를 걸고 뭔가를 도모할 때, 그 전쟁에서 그렇게 형성된 관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하는 게 인생에 작용하는 운의 원리라고 보면 별로 그저 지극히 논리적인 원리의 하나다.
위에서 언급했던 '업보'도 관계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선한 혹은 악한 행위를 저지르면 결국 보응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가르치고자 창안한 동화적 개념 이상의 통찰을 담고 있다.
'업보'에 대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은 명저 세 권을 소개하는 게 설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한국인이 쓴 책은 없다는 점을 보면... 내 이야기에 국뽕을 좀 빼고 인류의 위대한 지성들이 보편적으로 탐구한 생각임을 인정해야겠다.
업(業) 혹은 업보(業報)를 산스트리트어 카르마(कर्म)라고 하는데, 일본의 존경받는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가 자신의 저서에서 제목으로 채택했다. 그는 회사 경영과 인생의 여정의 핵심은 카르마를 관리하고 가꾸는 데 있었음을 설명한다.
누군가는 나쁜 행실에 합당한 보응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반론할지 모르겠다. 이에 도요토예프스키는 소설 죄와 벌에서 보여준다. 죄의 대가는 사회가 치르게 하기 전에 스스로가 이미 내린 벌을 받는다는메시지이다.
그렇게 보니 '업보'가 기독교적 개념의 '성화'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막스베버는 위의 저서에서 일에 종사하는 직업윤리와 경제생활이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성스러움으로 도야하는 통로가 된다고 본다.
정리해 보면 카르마 경영은 내 영적 모습을 갈고닦는 과정이다. 내가 주어진 일을 농땡이 친다면? 걸리지 않더라도(분명 모든 눈을 속일 수 없겠지만) 내 카르마는 그런 파동의 형태로 모양이 잡혀 나간다.
실제 월급 루팡들은 망곰이처럼 귀엽지 않다...
돌아와서 업둥이를 정성 들여 키우면 복을 받는다는 개념도 그것이 카르마를 아름답게 만들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친자식도 아닌 아이를 정성스레 키우는 카르마라면 자기 일 앞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운(運)이 타자와의 관계 형성에 대해 말한다면 업(業)은 그 상대방과 공명을 시도하는 나의 상태를 의미한다. 운을 잡으려고 해도 내 카르마가 그들과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파동을 주고받지 못하면 불협화음 끝에 헤어질 뿐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들과 만난다는 말처럼, 운이 인연에 있으나 나 자신의 업(카르마)에 집중하며, 영혼을 갈고닦는데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도 나도 만족스러워 할 수 있는 화음을 조율할 수 있기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