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인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서
1952년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료주의 사회의 모순들을 신나게 욕하고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볼 용기가 없는 장님이다. 열심히 일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라는 교훈을 얻었다면 그 또한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아주 오래된 낡은 칼이지만 여전히 묵둑한 날로 힘있게 내려쳐서 아픔을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몰아친 실존주의의 영향이 가득하다. 공무원들에 빚대어 이야기하는 것은 진부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 그렇게 아무런 의미없이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메뚜기떼 만큼이나 널려 있다. 일 속에서 소모품처럼 소진되어 살아가고, 그럼으로 일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며, 그저 일 속에서 편해지는 방법만을 갈구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다.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삶의 허무함에 대한 지적 또한 진부한듯 하지만 칼로 베는듯이 아픈 지적이다.
사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들은 평범하게 알고 있는 진리들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거의 모두가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는 진리이기에 70년이 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를 제목에서 너무나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가? 죽음을 매일 같이 마시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신은 살아있는가? 움직일뿐인 시체는 아닌가?
주인공이 자신의 일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고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진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삶은 개별적인 것이며 각자의 삶마다의 진리가 따로 있다. 문제는 자신의 삶의 진리를 찾지 못하고, 남들 하는대로 세상에서 규정하는대로, 많은 사람들이 하는 모습 그대로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실존주의가 통렬하게 외쳐왔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렇게 실존적으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이 영화가 아무런 불편함과 메시지를 주지 못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