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아에서 당나귀로 반나절 거리, 벨 마을 언덕 위에 아히마아스의 저택이 있었다.
저택이라 부르기엔 소박했고, 집이라 부르기엔 탐욕스러웠다. 바깥은 회칠이 벗겨진 돌담이었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원의 석류나무는 이집트에서 들여온 품종이었고, 안마당의 물항아리는 두로의 장인이 빚은 것이었으며, 곡식 창고는 여섯 개였다. 바깥의 초라함은 의도된 것이었다. 아히마아스는 부를 숨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부를 숨긴다는 것은 부를 쓸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저택의 가장 안쪽 방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히마아스. 딸 아히노암. 그리고 사위 사울.
기름등 하나가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아히마아스가 일부러 등을 하나만 켠 것이다. 밝으면 얼굴이 다 보이고, 얼굴이 다 보이면 거짓말의 미세한 떨림까지 보인다. 아히마아스는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나, 거짓말에 가까운 것을 할 예정이었으므로 조명은 어두울수록 좋았다.
"사무엘이 움직인다."
아히마아스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원래 낮은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했다. 목소리의 높낮이조차.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겠다는 뜻을 굳힌 모양이야. 각 지파 장로들에게 물밑으로 의견을 타진하고 있어. 백성들이 왕을 원한다, 야훼께서도 허락하셨다, 뭐 그런 식으로."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이 꿈틀거렸다. 이 남자는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몸이 항상 움직이고 싶어 했다. 주먹을 쥐거나, 칼자루를 만지거나, 최소한 손가락이라도 꺾어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
"장인어른,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사울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장인 앞에서는 돌려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히마아스는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고, 돈을 쥔 사람 앞에서 말을 돌리면 시간만 낭비된다는 걸 사울은 체득하고 있었다.
아히노암이 끼어들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 * *
아히노암은 남편보다 반 뼘이 작았고, 시아버지보다 스무 살이 젊었다. 그러나 이 방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기름등 하나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히노암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빛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 검은 눈동자가 등불의 불꽃을 삼키고 더 검어지는 그런 눈.
"왕 자리는 사오는 거예요."
아히노암이 무릎 위에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쳤다. 아히마아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울은 양피지를 내려다보았으나, 글씨보다는 아내의 손가락 끝을 보고 있었다. 아내가 양피지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세상이 그 손가락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이 남자는 알고 있었다.
"사무엘 주변 사람부터 정리할게요. 라마 성소에 드나드는 사람이 서른두 명이에요. 제사장 보좌 넷, 서기관 둘, 문지기 셋, 성소 관리인 하나, 나머지는 수시로 찾아오는 각 지파 연락책들. 이 중에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열넷이에요."
사울이 눈을 떴다. "열넷이나?"
"사람은 생각보다 싸요."
아히노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과 달랐다. 이 여자의 입꼬리는 순간적으로, 칼날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미소가 아니라 계산 결과의 표시 같은 것이었다.
"제사장 보좌 야셀에게는 아들의 학비를 대 줘요. 서기관 호다비야는 도박 빚이 있어요. 은 열 세겔이면 입을 맞출 수 있어요. 문지기 스바는 딸이 넷인데 혼수를 못 마련하고 있어요. 아버지, 스바 딸의 혼수는 제가 직접 챙길게요. 여자의 은혜는 잊기 어렵거든요."
아히마아스가 양피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매수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
"소문을 만들 거예요."
* * *
아히노암의 '평판 조작 프로젝트'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사무엘의 귀에 사울의 이름이 '우연히' 들리도록 만든다. 라마 성소에 드나드는 매수된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사울의 이름을 흘린다. '기브아의 사울이라는 청년 장군, 혹시 들어보셨소?' '블레셋 국경에서 용맹을 떨친다는 그 사람?' '키가 어깨에서 한 뼘은 더 크다던데.' '그런데 성품이 참 겸손하다 하더라.'
둘째, 사울에 대한 소문의 내용을 '겸손'에 집중시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왕은 거만한 영웅이 아니라 겸손한 영웅이라는 것을 아히노암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무엘은 특히 겸손을 좋아했다. 야훼가 좋아하는 덕목이 겸손이라고 평생을 설교한 사람이다. 사무엘의 마음을 사려면 사울을 겸손의 화신으로 포장해야 했다.
셋째, 사울 자신이 겸손한 청년을 연기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였고, 가장 어려운 단계이기도 했다. 사울은 겸손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신, 옷부터 바꿔야 해요."
아히노암이 사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입고 다니는 군복은 안 돼요. 어깨에 철 장식 붙은 거, 가죽 혁대에 금실 박은 거, 그거 전부 벗어요. 가장 낡은 옷을 입어요. 무릎에 기운 자국 있는 거, 팔꿈치가 해진 거. 그게 겸손이에요."
사울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옷은 없는데."
"만들면 되죠."
아히노암이 짧게 웃었다. "새 옷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에요. 돌에 문질러서 올을 풀고, 물에 담가서 색을 바래게 하고, 무릎 부분에 형편없는 실로 기운 자국을 넣으면 돼요. 당신이 그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이렇게 말할 거예요 — '저 사람, 장군인데도 저렇게 소박하게 사는구나.'"
사울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볍게 쳤다. 어퍼컷의 잔영 같은 동작이었다.
"연기를 하라는 거지."
"연기가 아니에요. 투자예요."
아히마아스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왕관은 머리에 쓰는 순간 투자가 회수되는 거야. 그 전까지는 전부 밑천이다."
* * *
보름이 지났다.
라마 성소의 제사장 보좌 야셀은 사무엘에게 저녁 보리빵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지자님, 기브아에서 온 상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울이라는 젊은 장군이 블레셋 척후병 열 명을 혼자 상대했다는데, 그 뒤에 자기 공을 부하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빵을 뜯으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관심의 표시였다.
"기스의 아들이라 했던가."
"예,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이요. 키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품이 참 온순하대요. 큰 키에 겸손한 마음이라니, 요즘 세상에 드문 일이지요."
야셀은 은 닷 세겔의 값어치를 정확히 해내고 있었다.
같은 시각, 벧엘 시장에서는 서기관 호다비야가 장사치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사울 장군을 본 적 있소? 나는 지난달 라마 길에서 마주쳤는데, 장군 복색이 아니라 농부 차림이더라. 물어보니까 자기 나귀를 직접 끌고 장에 간다더군. 종을 시키면 될 텐데. 그런 사람이 장군이라니, 이 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어."
호다비야의 도박 빚은 이미 아히마아스의 하인이 대신 갚아준 뒤였다.
문지기 스바의 첫째 딸 혼례에는 아히노암이 직접 참석하여 혼수 보따리를 안겨주었다. 스바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라마 성소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울 장군의 부인이 우리 딸 혼수를 챙겨주셨다오. 그런 선한 집안을 야훼께서 돌보지 않으시겠소?'
소문은 물과 같았다. 아히노암이 판 수로를 따라 정확히 흘렀다.
* * *
사울은 불편했다.
아히노암이 만들어준 '위장된 겸손'의 옷은 어깨를 긁었고, 허리가 헐거웠으며, 무엇보다 자존심이 긁혔다. 사울은 사람들 앞에 설 때 어깨를 펴는 사람이었다. 주먹을 쥐고, 턱을 들고, 눈을 부릅뜨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라니.
"이게 꼭 필요한 거냐."
사울이 낡은 옷의 기운 자국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아히노암이 남편의 어깨를 잡고 거울 앞에 세웠다. 거울이라 해봐야 물을 담은 놋 대야에 비치는 흐릿한 상이었지만.
"봐요. 이 모습이 사무엘이 보고 싶어하는 왕이에요.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그런데 옷은 초라하고, 눈은 순하고. 야훼가 선택한 겸손한 영웅. 그게 당신이 되어야 해요."
"나는 겸손하지 않아."
"알아요. 그래서 연기하라는 거잖아요."
아히노암이 남편의 턱을 손으로 잡아 아래로 눌렀다.
"턱을 내려요. 사무엘을 만나면 시선을 바닥에 두고, 말끝을 흐려요. 자신감이 없는 척이 아니라, 자신보다 야훼를 더 의식하는 사람처럼 보이라는 거예요."
"……야훼를 의식하라고."
"의식하는 '척'이요."
사울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낡은 옷을 입은 거대한 남자. 확실히, 이 모습에는 뭔가가 있었다. 어깨가 넓은데 옷이 남루하면, 사람들은 '고생한 영웅'을 떠올린다. 턱이 강한데 눈이 순하면, 사람들은 '힘을 절제하는 자'를 떠올린다.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방 안에 셋뿐이었다.
사울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연습이었다.
"이 정도면 되느냐."
아히노암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만 더. 눈을 더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다물고. 좋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 사무엘이 말할 때 절대로 끊지 마요. 노인들은 자기 말을 끊는 사람을 싫어해요. 끝까지 듣고, 한 박자 쉬고, 천천히 대답해요. 그게 겸손이에요."
"그건 겸손이 아니라 인내지."
"같은 거예요. 보는 사람 입장에선."
* * *
아히노암에게는 자신만의 그물이 있었다.
기브아 시장통의 과일 장수 밀가. 벧산의 직물 상인 노아. 라마 성소 근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쓰루야. 하나같이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쓸모가 있었다.
밀가는 과일을 팔면서 손님들의 대화를 주워 담았다. 누가 누구와 사이가 틀어졌는지, 어느 장로의 아들이 빚을 졌는지, 어느 지파의 연장자가 사무엘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지. 과일 장수에게 속내를 터놓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과일 장수가 간첩이리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노아는 각 지파 유력자의 아내들에게 직물을 납품하며 안방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남자들의 회의실보다 여자들의 안방이 정보가 빠르다는 것을 아히노암은 알고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숨기지만, 안방에서는 남편에게 불평을 하기 때문이다.
쓰루야는 라마 성소 우물가에서 제사장들의 아내와 나란히 빨래를 하며, 사무엘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사무엘이 어제 누구를 만났는지, 오늘 아침 기분이 어떤지, 다음 주에 어디로 순회할 예정인지.
이 그물의 중심에 아히노암이 앉아 있었다. 거미가 진동으로 먹잇감을 감지하듯, 아히노암은 그물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으로 사무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읽었다.
"사무엘이 기스 집안을 주시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밤, 아히노암이 사울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빨라져 있었다. 이 여자의 목소리가 빠를 때는 계획이 먹혀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라마 성소의 야셀이 보고를 올렸는데, 사무엘이 '기스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두 번 물었대요. 한 번 물으면 관심, 두 번 물으면 확신에 가까운 거예요."
사울이 어퍼컷 자세로 주먹을 올렸다가, 아내의 시선에 천천히 내렸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단계예요. 사무엘이 직접 당신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해요. 아니, 당신이 사무엘을 찾아가되 — 우연처럼 보이게."
"우연?"
"나귀를 이용할 거예요."
아히노암의 입꼬리가 칼날처럼 올라갔다.
"아버지 집 나귀를 풀어놓을 거예요. 당신이 나귀를 찾으러 다니다가 라마 근처를 지나는 거예요. 그러면 사무엘이 당신을 '우연히' 만나게 되겠지요. 이미 당신 이름을 두 번이나 물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당신을 그냥 보내겠어요?"
* * *
요나단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밤마다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밀실에 들어가면, 요나단은 자신의 방에서 벽에 귀를 대었다. 흙벽이라 목소리가 다 새어 나왔다. 아히마아스의 저택이 아닌, 기브아의 자기 집에서는 벽이 더 얇았으므로 더 잘 들렸다.
요나단이 들은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버지: "야셀에게 은을 더 줘야 하지 않겠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데."
어머니: "안 돼요. 은을 올리면 값어치를 알게 되고, 값어치를 알면 더 달라고 해요. 처음 정한 액수를 유지해야 해요. 대신 추석 때 선물을 넉넉히 보내면 돼요. 선물은 뇌물이 아니라 감사니까."
아버지: "사무엘이 나를 의심하면 어쩌지?"
어머니: "의심할 게 뭐가 있어요. 당신은 겸손한 청년이에요. 블레셋과 싸우느라 옷이 남루해진 겸손한 청년. 사무엘 앞에서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마요."
아버지: "……사무엘이 영리한 노인이라면?"
어머니: "영리한 노인이라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봐요. 사무엘은 야훼가 선택한 겸손한 왕을 보고 싶어 해요. 우리는 그걸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요나단은 벽에서 귀를 떼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열네 살이 된 소년은, 1년 전 연무장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선명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연무장에서는 아버지의 말이 비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비틀어지는 과정을 '듣고' 있었다. 느낌과 듣는 것은 달랐다. 느낌은 부정할 수 있었지만, 들은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왕이 되려 하고 있었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스라엘에 왕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키가 크고, 칼을 잘 쓰고, 사람들을 쥐어잡는 힘이 있는 사람.
그런데 '왕이 되는 것'과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같은 말인가?
아버지는 왕이 '되려' 하고 있었다.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연기하고, 소문을 제조하고, 사무엘의 눈을 속여서 왕관을 사는 것 — 그것은 왕이 되는 길이지, 왕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었다.
요나단은 그 차이를 아직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배 속이 뒤틀리는 감각으로는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밀실에서 만들어내는 이 정교한 거짓이, 어딘가에서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예감.
그러나 요나단은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어디에 말하겠는가.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그들은 요나단이 엿듣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요나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소년은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벽 너머에서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날카롭고, 확신에 찬, 승리를 미리 축하하는 웃음.
요나단은 눈을 감았다. 감아도 어둠뿐이었고, 떠도 어둠뿐이었다.
'왕이 되는 것'과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
열네 살의 소년은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외롭게 만들 것인지는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