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챙길 수 있을 때 챙긴다

by 차성수

야훼의 명령은 명확했다.

사무엘이 기브아 궁정에 직접 찾아와 전한 말은 이러했다. 아말렉을 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까지 진멸하라. 하나도 남기지 말라. 이것은 거룩한 전쟁이요, 전리품은 야훼께 속한 것이니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사무엘의 눈이 사울을 관통하고 있었다. 노인의 음성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빠져 있었다. 명령이었다. 야훼의 명령을 전달하는 선지자는 조언자가 아니라 전령이었고, 전령의 말에 왕의 재량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선지자."

사울이 고개를 숙였다. 아히노암이 가르쳐준 고개 숙임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로 무거운 고개 숙임이었다. 진멸 명령.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명령. 사울의 칼이 싫어하는 종류의 명령이었다 — 칼은 적을 베기 위해 존재하지, 양과 낙타를 도륙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러나 사울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된 것은, 사무엘이 궁정을 떠난 직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울의 머릿속이 아니라 아히노암의 머릿속에서.

* * *

"진멸이라고?"

아히노암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자정의 밀실. 기름등 하나. 늘 그랬듯이.

"소와 양과 낙타를 다 죽이라고? 아말렉의 가축이 몇 만 마리인 줄 알아요? 양떼만 해도 수만 마리예요. 살진 것들로 골라잡으면 은으로 환산하면……"

아히노암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셈을 하고 있었다. 아히마아스가 가르쳐준 암산법이었다. 가축의 머릿수, 시장 시세, 운반 비용, 도축 수수료. 아히노암의 손가락은 전장의 피보다 장부의 숫자에 더 익숙했다.

"이걸 그냥 다 태워 버리라고요? 야훼한테 바치라고?"

사울이 턱을 긁적였다. 습관이었다. 결정을 미루고 싶을 때의 손짓.

"사무엘이 직접 명한 것이니……"

"사무엘이 전장에 나가서 칼을 들어요? 당신이 피를 흘리는 거잖아요. 피 흘린 사람이 전리품을 가져가는 건 당연한 거예요. 야훼가 뭐라 하셔도, 전장에 서지 않은 분이 전리품을 가져가라 마라 하시는 건 — "

"아히노암."

사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야훼의 이름 앞에서는 사울도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러나 아히노암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방법을 만들게요. 당신은 전장에서 칼만 휘두르면 돼요. 나머지는 내가 할게요."

아히노암이 만든 것은 '전리품 회수팀'이었다.

전투 부대와 별도로 움직이는 소규모 편대. 장인 아히마아스가 자금을 대고, 아히노암이 인원을 선발하고, 아브넬이 군사 통행증을 발급했다. 이 팀의 임무는 전투가 끝난 직후, 정규군이 진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장에 도착하여 '좋은 것'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좋은 것. 살진 양, 건강한 소, 털이 고운 낙타, 값나가는 직물, 금붙이. 진멸 대상에서 빼돌려 아히마아스의 창고로 보내는 것이 회수팀의 일이었다.

"죽일 건 죽여요. 야훼의 명령이니까. 다만 전부 다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좋은 것만 골라서 살리고, 나머지를 진멸하면 — 야훼도 만족하시고, 우리도 남는 거예요."

아히노암의 논리는 간결했다. 그리고 사울은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 야훼의 명령을 반만 따르는 것이, 아예 따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궤변이 사울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 * *

아말렉 전쟁을 앞두고, 궁정에서 한 가지 인사가 단행되었다.

아브넬이 군사령관에 올랐다.

아브넬은 사울의 사촌이었다. 베냐민 지파 넬의 아들. 체격이 좋고, 칼을 쓸 줄 알았으나, 뛰어난 장수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전장에서의 판단력보다 궁정에서의 처세술이 월등했다. 사울이 말하면 '예'라고 대답하는 속도가 기브아에서 가장 빠른 사내 — 그것이 아브넬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였다.

아브넬의 등용과 함께, 두 명의 유능한 장군이 밀려났다.

야베스 출신의 장군 갈랄. 암몬 전쟁에서 좌익을 지휘하여 나하스의 전차대를 무력화시킨 명장이었다. 그러나 갈랄은 사울에게 두 번 직언을 했다. 한 번은 토지 분배의 불공정에 대해, 한 번은 인사 청탁의 폐해에 대해. 두 번의 직언은 두 번의 사형선고였다 — 궁정에서의.

갈랄은 해임되었다. 명목은 '건강상의 이유'였으나, 기브아 전체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에브라임 출신의 장군 아마사. 블레셋 국경전에서 기습 작전을 성공시킨 지략가. 그러나 아마사의 죄목은 갈랄과 달랐다. 아마사는 직언을 한 것이 아니라, 병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병사들이 '아마사 장군'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울은 질투를 느꼈고, 아히노암은 위험을 감지했다.

"인기 있는 장수는 왕의 경쟁자예요. 경쟁자는 키우면 안 돼요."

아마사도 밀려났다. '전략적 재배치'라는 이름으로 기브아에서 가장 먼 남쪽 초소로 보내졌다. 사실상의 유배였다.

갈랄과 아마사 자리에 아브넬이 올랐다. 유능한 두 사람의 자리를 무능한 한 사람이 차지했다. 전투력이 빠지고, 충성심이 채워졌다. 사울의 군대는 강해지는 대신 순해지기 시작했다.

* * *

아말렉의 수도가 불탔다.

사울의 군대 이십만이 남쪽 사막으로 내려갔을 때, 아말렉 왕 아각은 이스라엘의 규모를 보고 놀랐으나, 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전투는 치열했다.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칼과 칼이 부딪혔고, 비명이 바람에 실려 갔다.

사울은 선두에 섰다. 이것만은 사울의 진짜 장점이었다. 전장에서 뒤로 빠지는 법이 없었다. 칼을 들면 겁이 없었고, 겁이 없으면 병사들이 따랐다. 어퍼컷은 허공이 아닌 적의 턱에 날아갔고, 그 주먹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실질적으로 전세를 뒤집은 것은 사울의 주먹이 아니었다.

요나단이었다.

열일곱이 된 요나단은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독립 부대를 지휘했다. 병력 삼백. 아말렉의 후방을 우회하여 보급로를 끊는 임무. 아브넬은 이 작전에 반대했다 — '왕자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요나단의 공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사울은 아브넬의 반대를 묵살했다. 아들의 칼솜씨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울의 드문 올바른 판단이었다.

요나단의 삼백 명이 아말렉 후방을 기습한 것은 전투 둘째 날 새벽이었다. 보급 수레 열일곱 대를 불태우고, 연락병 스물넷을 사로잡았다. 아말렉의 본진은 보급이 끊기자 반나절 만에 와해되었다. 사울의 정면 돌격이 결정타를 날렸으나, 요나단의 우회 기습이 없었다면 정면 돌격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피를 닦으며 돌아온 요나단에게, 병사들이 환호했다.

"요나단 왕자 만세!"

"보급로를 끊은 건 요나단 왕자였다!"

요나단은 손을 저었다. 환호가 불편했다. 이 승리는 삼백 명 전원의 것이었지,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환호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것이 걱정이었다. 아버지는 환호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환호는 왕의 것이어야 했다. 왕의 것만.

* * *

요나단의 걱정은 정확했다.

전쟁이 끝난 뒤, 사울은 길갈에서 승전 보고를 발표했다. 각 지파에 보내는 공식 서신. 아브넬이 초안을 잡고, 사울이 최종 승인한 문서.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울왕이 친히 아말렉을 격파하시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으시니, 야훼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빛나도다. 왕의 칼이 사막의 모래를 피로 물들이고, 왕의 지략이 적의 후방을 무너뜨렸으니……'

요나단의 이름은 없었다.

삼백 명의 우회 기습도, 보급로 차단도, 연락병 포획도 — 모두 '왕의 지략'이라는 네 글자 안에 흡수되어 있었다. 요나단의 피와 삼백 명의 땀은 사울의 공적 장부에 왕의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

요나단은 그 서신을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공을 가로채리라는 것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싸운 것은, 공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백 명의 병사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보급로를 끊지 않으면 정면 돌격에서 피해가 커질 것이었고, 피해가 커지면 죽는 것은 장군이 아니라 병졸이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역시 쓰라렸다.

아브넬이 요나단을 찾아온 것은 서신이 발송된 다음 날이었다.

"왕자,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전쟁의 공은 왕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요. 왕자의 공은 왕이 알고 계시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소."

아브넬의 말투에는 기름이 발려 있었다. 미끄러운 말. 잡히지 않는 말. 요나단은 아브넬의 눈을 보았다. 거기에는 위로도, 미안함도 없었다. 있는 것은 확인이었다 — 이 왕자가 순순히 받아들이는지, 반발하는지를 가늠하는 계산.

"관례라면 따르겠습니다."

요나단이 짧게 대답했다. 아브넬이 물러갔다. 요나단은 천막 안에서 혼자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처럼 어퍼컷을 날리지는 않았다. 다만 주먹 안의 손톱이 손바닥에 반달 모양의 자국을 남겼다.

* * *

한편, 전장 뒤편에서는 아히노암의 회수팀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회수팀의 지휘는 아히마아스의 하인 도단이 맡았다. 도단은 가축 시세를 달력보다 정확히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투가 끝난 직후, 도단의 팀은 아말렉의 목초지를 훑으며 가축을 골라냈다.

살진 양 삼천 마리. 건장한 소 오백 두. 낙타 이백 마리. 아말렉 왕족의 금장식품 열여섯 궤. 고운 직물 수십 필.

이것들은 진멸 대상이었다. 야훼의 명령에 따르면, 칼로 찔러 죽이거나 불에 태워야 할 것들. 그러나 도단의 팀은 이것들을 밤새 남쪽 산길로 빼돌려 아히마아스의 중간 창고로 보냈다. 전투의 소란과 먼지 속에서 양 삼천 마리가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각이 있었다.

아말렉 왕 아각. 야훼의 명령은 아각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을 죽이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아각은 살아 있는 편이 값어치가 있었다. 살아 있는 왕은 정치적 카드였다. 아말렉 잔존 세력을 협박하는 데 쓸 수 있었고, 주변 국가와의 외교에서 꺼내들 수 있는 패였다. 아히노암이 이를 설명했을 때,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사울의 허영이었다. 패배한 왕을 사슬에 묶어 끌고 다니는 것은 마초적 퍼포먼스의 극치였다. 사울은 아각을 죽이는 것보다 아각을 끌고 다니는 장면이 더 좋았다. '적의 왕을 산 채로 잡은 왕' — 그 타이틀이 '야훼의 명령을 이행한 왕'보다 자기 귀에 달콤하게 울렸다.

야훼의 명령은 이렇게 비틀어졌다. 좋은 것은 남기고, 하찮은 것만 진멸했다. 반쯤 순종하고 반쯤 불순종한 것이다. 사울은 반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쯤은 충분하지 않았다.

* * *

사무엘이 길갈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노인은 밤새 걸었다. 야훼의 말씀이 밤에 임했기 때문이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라. 그가 내 명을 등지고 내 말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무엘은 그 말씀에 밤새 통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자기 손으로 기름 부은 왕이 야훼의 명을 어겼다는 것. 그것은 사무엘에게 자기 인생의 결정이 틀렸다는 선고였다.

길갈에 도착한 사무엘이 본 것은, 양 떼의 울음소리였다.

메에에. 메에에에.

죽었어야 할 양들이 살아서 울고 있었다. 불에 탔어야 할 소들이 여물을 씹고 있었다. 진멸되었어야 할 것들이 사울의 진영 한가운데서 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무엘의 손이 떨렸다. 분노가 아니었다. 슬픔이었다. 분노보다 깊은, 속아왔다는 자각의 슬픔.

사울이 사무엘을 맞으러 나왔다. 활보였다. 승리한 왕의 걸음. 사울은 팔을 벌려 노인을 맞이하려 했다. 미소가 얼굴에 펴져 있었다. 그 미소는 아히노암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승리의 도취가 만든 진짜 미소였다. 그래서 더 나빴다.

"사무엘 선지자, 야훼의 복을 받으소서! 나는 야훼의 명을 이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이 멈추었다. 한 발짝도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면 내 귀에 들리는 이 양 울음소리는 무엇이며, 내게 들리는 이 소 울음소리는 무엇이냐?"

사울의 미소가 굳었다. 찰나였으나 사무엘은 보았다. 미소가 굳는 그 찰나에, 교활한 눈이 번뜩이는 것을.

"아, 그것은 — 백성들이 가져온 것입니다.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겨 야훼께 제사를 드리려 한 것이오니, 그 나머지는 다 진멸하였나이다."

거짓이었다. 백성들이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아히노암의 회수팀이 골라낸 것이었다. 야훼께 제사를 드리려 한 것도 아니었다. 아히마아스의 창고에 넣으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이 거짓을 거짓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정당하다는 착각이 사울의 혀를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사무엘의 눈에서 마지막 온기가 빠졌다.

"잠잠하라."

노인의 한마디에 길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병사들이 멈추었다. 양들조차 울음을 멈춘 것 같았다.

"내가 간밤에 야훼께서 내게 이르신 말씀을 네게 전하겠다."

사울의 입이 다물어졌다. 사무엘의 목소리에서 선지자의 무게가 내려앉고 있었다. 조언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심판하는 자의 목소리였다.

"네가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야훼께서 너를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로 삼지 않으셨느냐. 야훼께서 너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시고, 길을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 네가 어찌하여 야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전리품에 달려들어 야훼 앞에 악을 행하였느냐!"

사울이 한 발짝 물러섰다. 처음이었다. 사울이 사람 앞에서 물러서는 것은. 어퍼컷을 날리는 사내가, 주먹을 내리고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아, 아니오, 선지자! 나는 야훼의 목소리를 들었소. 야훼가 보내신 길을 갔고, 아말렉 왕 아각을 잡아왔고, 아말렉을 진멸하였소. 다만 백성이 전리품 중 가장 좋은 것을 취한 것은 길갈에서 야훼께 제사를 드리려 함이었소!"

같은 변명을 두 번 반복하고 있었다. 사울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승리의 도취가 벗겨지고, 그 아래에서 궤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사무엘이 입을 열었다. 반세기의 선지자 생애에서 가장 무거운 말이 노인의 입술을 떠났다.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느냐."

사무엘의 목소리가 길갈의 하늘에 새겨지고 있었다.

"보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사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 말은 사울이 제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탐욕을 정면으로 찌르고 있었다.

"네가 야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야훼께서도 너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 *

사울의 무릎이 꺾였다.

길갈의 먼지 위에, 키가 어깨 위로 한 뼘 더 솟은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었다. 기름 부음을 받을 때의 계산된 무릎 꿇기가 아니었다. 진짜로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이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야훼의 명령과 당신의 말을 어긴 것은 —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따랐음이니이다. 청하오니,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와 함께 돌아가 주소서. 내가 야훼께 경배하리이다."

백성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전히. 무릎을 꿇으면서도 책임을 돌리는 혀는 멈추지 않았다. 아히노암의 회수팀도, 아히마아스의 창고도, 자신의 허영도 말하지 않았다. 백성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했다. 장군들이 자기 앞에서 반 발짝 물러서게 만들던 어퍼컷의 사내가, 백성이 두려워서 전리품을 남겼다고 했다.

사무엘은 돌아섰다. 갈 것이었다. 사울과 함께 돌아갈 수 없었다. 야훼가 버린 왕과 나란히 서는 것은 선지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사울이 사무엘의 예복 자락을 잡았다.

잡았다기보다 움켜쥐었다. 어퍼컷을 쥐는 힘으로. 돌아서는 노인의 등을 향해, 사울의 손이 예복의 끝자락에 매달렸다.

찢어졌다.

소리가 났다. 천이 찢어지는 소리. 오래된 아마포가 사울의 주먹 안에서 갈라지는 소리. 길갈의 침묵 속에서 그 소리는 비명처럼 울렸다.

사무엘이 찢어진 예복 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사울을 바라보았다. 사울의 손에 예복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왕의 주먹 안에서 선지자의 옷이 찢어진 것이다.

"야훼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네게서 찢어 너보다 나은 네 이웃에게 주셨느니라."

사무엘의 선언이 길갈에 떨어졌다. 돌이 떨어지듯. 되돌릴 수 없는 무게로.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말도 후회도 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후회하지 않으시느니라."

* * *

요나단은 보았다.

길갈 진영의 한쪽, 병사들 사이에 섞여 서 있던 요나단은 그 장면을 전부 보았다. 아버지가 사무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변명하는 것을. 예복을 잡는 것을. 예복이 찢어지는 것을.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포가 갈라지는 소리. 그러나 요나단의 귀에는 다른 것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왕국이 찢어지는 소리.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 찢어지는 소리.

전장에서의 아버지는 진짜였다. 요나단은 그렇게 믿어왔다. 궁정에서는 가짜이되, 전장에서만큼은 진짜라고. 칼을 쥐면 거짓이 벗겨진다고. 그러나 지금, 칼을 쥔 손이 전리품에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전장에서 흘린 피를 은으로 환산하는 계산서를 보았다. 아버지의 진짜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요나단은 자기 이름이 승전 서신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삼백 명과 함께 피를 흘린 보급로 차단 작전이 '왕의 지략' 네 글자로 압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쓰라렸으나, 견딜 수 있었다. 공을 빼앗기는 것은 아프지만, 공이 누구의 것이든 병사들이 살아 돌아왔으므로.

그러나 예복이 찢어지는 것은 — 견딜 수 없었다.

'야훼께서 너보다 나은 자에게 나라를 주셨다.'

그 말이 요나단의 머릿속에 박혔다. 나보다 나은 자. 아버지보다 나은 자. 그것은 곧 아버지가 왕의 자격을 잃었다는 선고였고, 아버지의 아들인 자신도 왕이 될 수 없다는 선고였다. 요나단은 왕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왕국이 끝나는 것은 — 아버지가 끝나는 것과 같았다.

요나단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아무도 듣지 못하는 물음.

'아버지가 정말 야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을까?'

기름 부음을 받던 날의 몰약 냄새가 코끝에서 되살아났다. '노인네를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중얼거림이 귓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때 이미 알았어야 했다. 아니,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복이 찢어지고, 사무엘이 돌아서고, 사울이 먼지 속에 무릎을 꿇고 있는 길갈의 풍경 앞에서 — 요나단은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야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야훼의 선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값을 치르는 날이 온 것이다.

요나단은 길갈의 먼지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릎 꿇은 아버지. 찢어진 예복 조각을 쥔 주먹. 그 주먹은 더 이상 어퍼컷을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허공도 때리지 못하고, 진실도 때리지 못하고, 다만 천 조각을 쥐고 떨고 있었다.

양 울음소리가 길갈에 가득했다.

죽었어야 할 양들이, 살아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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