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도망치고 있었다.
유다 지파 베들레헴 출신, 이새의 막내아들. 골리앗을 쓰러뜨린 목동. 사울의 궁정에서 수금을 타던 소년이 어느덧 청년이 되어, 지금은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를 떠돌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질투 때문이기도 했고, 사무엘이 '너보다 나은 자'라 했을 때 그 '나은 자'가 다윗이라는 소문 때문이기도 했다.
다윗은 궁정을 탈출한 뒤 각지를 전전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가, 아둘람 동굴로 숨었다가, 모압 왕에게 부모를 맡기기도 했다. 쫓기는 자의 발걸음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윗이 놉에 들렀다.
놉은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의 작은 성읍이었다. 이 성읍에 야훼의 성막이 있었고, 제사장 아히멜렉이 성막을 지키고 있었다. 아히멜렉은 놉의 수석 제사장이자, 이스라엘 전역 제사장 네트워크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다. 사무엘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뿌리 중 하나가 바로 이 제사장 네트워크였다.
다윗은 배가 고팠고, 무기가 없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쇼빗의 빵을 주었고,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에게서 빼앗은 칼을 내주었다. 제사장이 도망자를 도운 것이다. 아히멜렉이 다윗의 처지를 알고 도운 것인지, 모르고 도운 것인지는 나중에 논란이 되었으나 —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엑.
에돔 출신의 도엑은 원래 사울의 목자 감독이었다. 그날 놉의 성막에 있었던 것은 '야훼 앞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도엑은 사울의 비선 조직 — 아히노암의 정보망과 별도로, 사울이 직접 운영하는 감시망 — 에 속한 사람이었다. 다윗의 동선을 추적하는 임무를 띠고 놉에 와 있었던 것이다.
도엑의 눈이 모든 것을 담았다.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빵을 건네는 장면, 골리앗의 칼을 꺼내는 장면. 도엑은 놉을 떠나 곧장 기브아로 달렸다.
* * *
"아히멜렉이 반역자 다윗에게 쇼빗의 빵과 골리앗의 칼을 넘겼습니다."
도엑의 보고를 받은 사울의 눈이 달라졌다. 분노의 눈이 아니었다. 계산의 눈이었다. 사울이 무언가를 계산할 때, 눈동자가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히노암의 눈이 빛을 빨아들이는 눈이라면, 사울의 눈은 빛을 좌우로 튕기는 눈이었다.
사울의 계산은 이러했다.
사무엘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야훼의 말씀에서 온다. 야훼의 말씀은 어디를 통해 백성에게 전달되는가? 제사장들을 통해서. 각 성읍, 각 지파에 흩어져 있는 제사장들이 사무엘의 말을 전하고, 사무엘의 권위를 떠받치고, 사무엘의 편에서 사울을 비판한다. 제사장 네트워크가 사무엘의 손과 발이라면 — 손과 발을 잘라버리면 사무엘은 몸통만 남는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운 것은 사울에게 구실이 되었다. 다윗은 사울이 지명한 반역자였고, 반역자를 도운 제사장은 반역자의 공범이었다. 한 사람의 공범이면 전체의 공범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 사울의 논리로는.
그날 밤, 밀실이 아니라 옥좌의 방에서 사울이 입을 열었다. 아히노암은 옆에 앉아 있었고, 아브넬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놉의 제사장들은 모두 반국가세력이니 단번에 척결해야 한다."
사울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어퍼컷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칼날의 목소리였다. 어퍼컷은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이지만, 칼날은 베어서 끊는 것이다.
아브넬의 얼굴에 핏기가 빠졌다.
"전하, 놉의 제사장은 팔십오 명이옵니다. 그들의 가족과 성읍 주민까지 합치면……"
"척결이라 했다."
사울이 아브넬을 보지 않고 말했다. 허공을 보고 있었다. 허공에 놉의 성읍이 있는 것처럼.
"아히멜렉 한 사람만 잡아서는 뿌리가 남는다. 뿌리가 남으면 다시 자란다. 사무엘의 손과 발을 자르려면, 놉 전체를 뽑아야 한다."
아히노암이 끼어들지 않았다. 이 결정은 사울 자신이 내린 것이었다. 아히노암이 속삭인 것이 아니었고, 아히마아스가 유도한 것도 아니었다. 사울의 머릿속에서, 사울의 계산으로, 사울의 입에서 나온 명령. 아히노암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한 번. 천천히.
그 한 번의 끄덕임이 팔십오 명의 목숨보다 무거웠는지, 가벼웠는지는 — 아히노암만이 알고 있었다.
* * *
사울의 학살 명령은 궁정에서 처음으로 '거부'라는 단어에 부딪혔다.
"전하의 명을 받들 수 없사옵니다."
궁정 호위대장 도벡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 뒤에 장교 셋이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사울이 놉의 제사장을 치라 명했을 때, 정규 장수들은 — 한 사람도 칼을 들지 않았다.
"야훼의 제사장에게 칼을 대는 것은, 야훼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이옵니다. 신들은 차마……"
"차마?"
사울의 눈이 도벡을 내려찍었다. 옥좌에서 내려다보는 사울의 시선은 언덕 위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았다. 높고, 차갑고, 떨어뜨릴 준비가 된 돌덩이의 시선.
"차마 못 하겠다고? 왕의 명이 야훼의 명보다 가벼우냐?"
도벡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예'였으나, 그 대답을 입 밖에 내면 자기 목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장교 셋도 침묵했다. 침묵이 거부였다.
사울은 옥좌의 팔걸이를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정규 장수들이 왕의 명을 거부한 것은 사울의 재위 기간 통틀어 처음이었다. 놉의 제사장 팔십오 명은 야훼의 사람들이었다. 야훼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장에서 적을 베는 것과 달랐다. 칼에 묻는 것이 피만이 아니라 저주이기도 하다는 공포가 장수들의 칼손을 얼어붙게 한 것이다.
사울이 궁정을 둘러보았다. 장수들의 고개가 숙여져 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아브넬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사울의 눈이 궁정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도엑에게 멈추었다.
* * *
도엑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에돔 출신. 이스라엘에 들어와 사울의 목자 감독이 되었고, 비선 조직에서 감시와 보고를 맡았다. 야훼의 제사장에 대한 경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뼛속에 박혀 있었다면, 도엑의 뼛속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에돔의 신은 야훼가 아니었고, 놉의 제사장은 도엑에게 외국의 사제에 불과했다.
"도엑."
사울이 불렀다.
"네가 가라."
세 글자였다. 왕의 입에서 세 글자가 떨어졌고, 그 세 글자에 팔십오 명의 운명이 매달려 있었다.
도엑이 고개를 들었다. 이 남자의 얼굴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 표정이 없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분노할 때도 같은 얼굴. 놉의 제사장 팔십오 명을 도륙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도, 도엑의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눈동자만 움직였다. 사울의 눈에서 확인을 읽고,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엑이 일어섰다. 궁정을 나갔다. 뒤따르는 것은 도엑의 부하 서른 명이었다. 이스라엘 정규군이 아닌, 도엑이 직접 모은 에돔 출신과 용병들. 그들의 칼에는 야훼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 * *
놉까지는 반나절 거리였다.
도엑의 부대가 놉 성문에 도착한 것은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성문은 열려 있었다. 놉은 군사 요새가 아니라 제사장들의 성읍이었으므로, 성문을 닫을 이유가 없었다. 적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적이 올 곳이 아니었으니까. 야훼의 성막이 있는 성읍에 칼을 든 자가 들이닥치리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도엑은 성문을 통과하며 칼을 뽑지 않았다. 성읍 중앙의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칼을 뽑지 않았다. 아히멜렉이 광장으로 나왔을 때 — 그때야 칼을 뽑았다.
"아히멜렉, 왕의 명이다. 너는 반역자 다윗을 도운 죄로, 네 제사장 직위를 박탈당하며, 네 목숨은 왕에게 속한다."
아히멜렉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다. 그러나 두려움은 아니었다. 야훼의 제사장은 야훼 앞에서만 두려워했다. 사람의 칼 앞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왕의 사위 다윗에게 빵을 주었을 뿐이오. 다윗이 반역자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소. 왕이여, 제사장에게 칼을 대시려거든 야훼의 앞에서 하시오."
도엑은 대답 대신 칼을 휘둘렀다.
아히멜렉의 머리가 광장의 돌바닥에 떨어졌다. 흰 수염에 피가 번졌다. 에봇이 피에 젖었다. 야훼의 제사장이 야훼의 성막 앞에서 죽은 것이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팔십오 명. 에봇을 입은 제사장 팔십오 명이 그날 놉에서 죽었다. 도엑의 부대는 성막부터 시작하여 성읍 전체를 훑었다. 제사장의 집을 부수고, 아내를 끌어내고, 아이를 ——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울이 놉 제사장들의 성을 쳐서 남녀와 아이와 젖 먹는 자와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남녀노소. 가축까지. 진멸.
아말렉에게 하지 않았던 진멸을, 사울은 야훼의 제사장에게 자행했다. 야훼가 명한 아말렉 진멸은 이행하지 않고 전리품을 챙기더니, 야훼가 명하지 않은 제사장 진멸은 제 손으로 명한 것이다.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말아야 할 때 복종을 강요한 것. 사울의 칼은 야훼의 방향과 정확히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 *
아비아달은 도망쳤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아버지가 광장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도엑의 칼이 아버지의 목을 치는 것을, 성막 뒤편에 숨어서 보았다. 도망치라는 것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도엑이 성문에 들어서기 직전, 아히멜렉이 아들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도망쳐라. 살아남아라. 네가 살아야 증인이 남는다."
아비아달은 놉의 뒷담을 넘어 남쪽으로 달렸다. 에봇을 걸친 채. 아버지의 피 냄새가 바람에 실려 뒤를 따라왔으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달릴 수 없었으므로.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도착한 것은 이틀 뒤였다. 아둘람 동굴 앞에서, 기진맥진한 제사장이 쓰러지듯 다윗 앞에 무릎을 꿇었다.
"놉이 멸망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팔십오 명의 제사장이 모두 — 모두 죽었습니다. 여자와 아이와 가축까지. 도엑이 한 것이나, 명령은 사울이 내렸습니다."
다윗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일그러짐에 분노만 있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놉에 들른 것이 빌미가 되었다는 자책도 섞여 있었는지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날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는 것을 보고, 반드시 사울에게 알릴 줄 알았다. 네 아버지의 집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나 때문이로다."
다윗은 아비아달을 품에 안았다. "나와 함께 있으라. 두려워 말라. 네 목숨을 찾는 자가 내 목숨도 찾는 자이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유일한 생존자. 유일한 증인. 아비아달은 다윗 곁에 남았다. 그리고 그의 증언은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사울의 이름에 지워지지 않는 피의 낙인을 새겼다.
* * *
놉의 학살 소식이 이스라엘에 퍼졌을 때, 백성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말렉이었다.
야훼가 진멸하라 한 아말렉은 진멸하지 않고, 전리품을 챙겼다. 야훼가 진멸하라 하지 않은 놉의 제사장들은 남녀노소 가축까지 진멸했다. 이 역설을 백성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아말렉의 살진 양은 살려두고, 야훼의 제사장은 죽이는 왕이라."
"양은 은이 되니까 살렸고, 제사장은 사무엘의 편이니까 죽인 거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사무엘이 말했는데 — 사울은 야훼에게는 불순종하고, 제사장에게는 칼을 들었구나."
시장통에서, 우물가에서, 성문 앞에서 백성들이 속삭였다. 속삭임의 온도가 달라져 있었다. '날리면'과 '마담 율리아' 때의 조롱과 분노를 넘어, 이제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제사장을 죽이는 왕. 야훼의 사람에게 칼을 대는 왕. 이 왕이 내일은 누구에게 칼을 들겠는가.
사무엘은 라마에서 통곡했다. 놉에서 살아남은 자가 아비아달 한 명뿐이라는 소식을 듣고. 노인은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사흘을 울었다. 자기 손으로 기름 부은 왕이, 자기가 세운 제사장들을 도륙한 것이다. 사무엘의 통곡은 놉의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했고, 자기가 사울에게 속았다는 후회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 * *
요나단은 그 자리에 있었다.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은 모두 반국가세력이니 단번에 척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요나단은 옥좌의 방 한쪽에 서 있었다. 궁정 회의에 배석하는 왕자의 자격으로.
요나단의 몸이 얼어붙었다.
척결. 그 단어가 아버지의 입에서 나왔을 때, 요나단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아버지의 입에서 '척결'은 '죽인다'는 뜻이었다. 연무장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의 '사람'이 에셀을 뜻했듯, 지금의 '척결'은 칼을 뜻했다.
요나단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 "
말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옆에서 손이 요나단의 팔을 잡았다. 아브넬이었다. 군사령관의 손이 왕자의 팔꿈치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아브넬의 입이 요나단의 귀에 가까이 왔다.
"왕자, 지금은 아니오."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명령의 무게를 가진 속삭임.
"전하의 결심이 선 다음에 반대를 하면, 반대자가 되오. 반대자가 되면 왕자라 해도 — 이 궁정에서 설 자리를 잃소."
아브넬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요나단은 그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아브넬보다 힘이 셌다. 열여덟 살의 청년은 이미 아버지의 키에 가까웠고, 팔에는 전장에서 단련된 근육이 있었다. 뿌리치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가고, '아버지, 이것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뿌리치지 않았다.
왜?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브넬의 경고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요나단이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한 것은 — 한 발짝을 내딛으면, 아버지와의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반대하면, 아버지는 요나단을 적으로 분류할 것이다. 사울의 세계에는 아군과 적만 있었다. 중립은 없었다. 충고하는 아들은 적이고, 직언하는 장군은 적이고, 비판하는 선지자는 적이다. 요나단이 놉의 제사장 편에 서는 순간, 요나단은 사울의 적이 된다.
적이 되면 — 아버지를 구할 수 없다.
요나단은 아직 아버지를 구하고 싶었다. 이 모든 교활함과 무능함과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칼을 쥐던 아버지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눈에 거짓이 없었던 순간을. 아버지 안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진짜 사울을.
그래서 요나단은 멈추었다. 아브넬의 손에 잡힌 채. 입을 다문 채. 놉의 팔십오 명이 죽으러 가는 것을 알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 * *
학살 소식이 기브아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정오였다.
도엑의 부하가 가져온 보고는 간결했다.
"제사장 팔십오 명 처형 완료. 성읍 진멸 완료. 생존자 아비아달 한 명 도주. 추격 중."
궁정 앞뜰에서 이 보고를 전해 들은 요나단은, 열 걸음을 걸었다. 열 걸음째에 무릎이 꺾였다. 궁정 뒷뜰의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요나단은 구토했다.
아침에 먹은 보리빵이 올라왔다. 빵 뒤에 위액이 올라왔다. 위액 뒤에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으나,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빈 위장이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올리브나무 뿌리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요나단은 토했다. 토할 것이 없는데도 토했다.
팔십오 명.
에봇을 입은 제사장 팔십오 명. 그들의 아내. 그들의 아이. 젖 먹는 자. 소와 나귀와 양까지. 놉이라는 이름이 지도에서 지워진 것이다. 아말렉에게 하지 않았던 일을, 야훼의 사람에게 한 것이다.
그리고 요나단은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한 발짝. 한 마디. '아버지, 이것은 안 됩니다.' 그 한마디가 팔십오 명을 살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아들의 말에 멈추었을 수도 있고,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기 싫어서. 아버지의 적이 되기 싫어서. 아버지 안의 진짜 사울을 아직 포기하지 못해서.
요나단의 입에서 담즙이 흘러내렸다. 쓴맛이 혀와 입술을 태웠다. 요나단은 그 쓴맛이 자기 비겁의 맛이라는 것을 알았다.
* * *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일어선 요나단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울지 않았다. 울음은 연무장 시절에 끝났다. 연민도, 수치심도, 분노도 — 지금 요나단의 눈에는 없었다. 대신 거기에 있는 것은 자각이었다. 차갑고 단단한, 돌바닥 같은 자각.
아버지의 체제 안에서는 정의가 불가능하다.
요나단은 이것을 이제 안다. 연무장에서 밀 횡령을 덮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기름 부음을 사는 것도, 전리품을 빼돌리는 것도, '날리면'이라 해명하는 것도 — 추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팔십오 명의 제사장을 도륙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참고 안 참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체제 안에서는 참든 참지 않든 결과가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요나단이 반대했다면 — 아버지는 어차피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반대를 묵살하고, 반대자를 밀어내고, 칼을 보냈을 것이다. 아브넬이 제지하지 않았어도, 요나단이 나섰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이 체제에서 사울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히노암조차 사울을 조종할 수 있을 뿐, 막을 수는 없다.
체제 안에서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체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요나단은 나가지 못했다.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장에서의 아버지를 향한 마지막 줄기의 사랑. 그것이 요나단의 발을 궁정에 묶어두고 있었다.
요나단은 자기 비겁을 알았다. 떠나지도 못하고, 맞서지도 못하는. 팔십오 명이 죽은 뒤에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토하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구토는 저항이 아니었다. 구토는 무력함의 표시였다.
요나단은 올리브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잎사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놉의 하늘과 같은 하늘이었다. 팔십오 명의 제사장이 마지막으로 올려다보았을 하늘.
요나단은 소매로 입을 닦았다. 담즙의 쓴맛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 쓴맛을 잊지 않겠다고 요나단은 생각했다. 이 비겁의 맛을. 이 무력함의 맛을. 잊으면 또 참게 되고, 참으면 또 다른 놉이 생길 것이므로.
그러나 잊지 않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요나단은 아직 행동할 수 없었다.
아직은.
— 제8장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