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나단의 계략

by 차성수

나단은 변방의 선지자였다.

예루살렘 성소의 권위는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왕실의 제사를 관장해온 그의 가문은 막강한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단 같은 변방 출신에게 중앙 종교 세력은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나단은 뛰어난 통찰력과 백성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기반은 미약했다. 중앙에 뿌리내리지 못한 그는 늘 변방을 떠돌며 야훼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왕의 눈에 띄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중앙 종교 세력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그 기회가 왔다. 밧세바 사건이었다.

* * *

밧세바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왕이 신하의 아내를 범하고, 그 신하를 죽였다. 궁 안에서, 군대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왕에게 직접 말하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단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침묵했다. 왕의 권력 앞에서 비굴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나단은 달랐다. 그는 잃을 것이 없는 변방의 선지자였다. 오히려 거침없이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단은 단순히 정의감에 불타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계산했다. 어떻게 하면 왕에게 말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면서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까?

나단은 계략을 세웠다.

* * *

나단은 왕궁을 찾아갔다.

다윗은 변방의 선지자가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의아해했다. 무슨 일일까? 그러나 선지자를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야훼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를 무시하면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들어오게 하라."

나단이 들어왔다. 그는 초라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다윗 앞에 절을 하고 입을 열었다.

"왕이시여, 재판을 청하러 왔습니다."

"재판? 무슨 재판이냐?"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자요, 하나는 가난한 자였습니다."

나단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으나, 가난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양은 그와 그의 자녀와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고 그의 잔으로 마시고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습니다."

다윗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좋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습니다.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아껴 손님에게 접대할 것을 차리지 않고,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자기 손님에게 접대했습니다."

다윗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자는 죽어야 마땅하다! 그가 양을 네 배로 갚아야 할 것이다. 어찌 그런 짓을 하고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단 말이냐!"

나단은 다윗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 * *

다윗은 얼어붙었다.

나단이 계속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었고, 사울의 손에서 건져냈다. 내가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었으며,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주었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면 더 많은 것이라도 주었으리라. 어찌하여 야훼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그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헷 사람 우리아를 칼로 치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도다.'"

다윗은 침묵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선지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죽일까? 그러면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야훼의 선지자를 죽인 폭군. 그런 이미지는 피해야 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역이용할 수 있었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겸손한 왕", "야훼를 두려워하는 왕"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다윗은 결정했다.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노라."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물론 연기였다.

* * *

나단은 다윗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예상대로였다. 다윗은 죄를 인정했다. 나단은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야훼를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자. 지금 죄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단의 목적은 다윗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의 신임을 얻는 것이었다.

나단은 두 번째 계략을 실행했다.

"야훼께서 왕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놀랐다. 죽지 않는다고?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러나..."

나단이 말을 이었다.

"이 일로 야훼의 원수들이 야훼를 모욕하게 했으므로, 왕에게서 난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다윗은 멈칫했다. 아이가 죽는다고?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아이가 죽으면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간음의 결과물이 없어지면, 이 사건은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밧세바와 새로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정당한 후계자가 될 수 있다.

"야훼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다윗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서는 안도감이 번지고 있었다.

* * *

나단은 왕궁을 나서며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였다. 그는 왕에게 직언한 용감한 선지자로 알려질 것이다. 동시에 왕에게 용서를 선언하여 왕의 신임도 얻었다. 그리고 아이를 죽임으로써 이 사건을 "해결"해주었다.

물론 야훼가 정말로 아이를 죽이라고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단이 야훼의 이름으로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진짜 야훼의 뜻인지, 나단 자신의 계략인지는 나단만이 알았다.

나단은 다윗과 비슷한 자였다. 야훼를 진정으로 섬기는 자가 아니라, 야훼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 권력을 위해 신의 권위를 도구로 쓰는 자.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 * *

아이가 병들었다.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갑자기 열병에 걸렸다. 다윗은 아이를 위해 금식하며 밤새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 신하들이 일으키려 해도 일어나지 않았고,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칠 일째, 아이가 죽었다.

신하들은 왕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도 저렇게 괴로워했는데,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이가 죽었느냐?"

"죽었나이다."

다윗은 일어났다.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야훼의 성전에 들어가 예배했다. 그 후에 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청해 먹었다.

신하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며 우시더니, 아이가 죽으니 일어나서 잡수시나이다."

다윗이 대답했다.

"아이가 살았을 때는 혹시 야훼께서 불쌍히 여기사 살려주실까 하여 금식하며 울었노라. 그러나 이제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겠느냐? 내가 다시 아이를 돌아오게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아이에게로 갈 것이나, 아이는 내게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 말은 지혜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다윗의 담대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다윗은 슬프지 않았다. 아이의 죽음은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증거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 * *

밧세바는 아이의 죽음을 듣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기 아이였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었지만, 열 달을 품고 낳은 아이였다. 그 아이가 죽었다. 야훼의 벌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이가 죽어야 했다.

그러나 밧세바는 알았다. 이것이 정말로 야훼의 뜻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계략인지.

나단. 그 선지자가 아이의 죽음을 예언했다. 아니, 선언했다. 그리고 아이는 죽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아이를 죽인 것일까?

밧세바는 의심했다. 그러나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약자였고, 왕궁에서 홀로였다. 남편은 죽었고, 아이도 죽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윗이 그녀를 위로하러 왔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그녀와 동침했다. 밧세바는 다시 임신했다. 아들을 낳았다. 다윗은 그 아이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었다.

야훼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셨다고 기록은 전한다. 나단이 야훼의 명령을 따라 그 아이를 "여디디야", 곧 "야훼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불렀다.

나단은 이제 왕실과 깊이 연결되었다. 그는 더 이상 변방의 선지자가 아니었다.

* * *

아히도벨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나단이라는 선지자. 그는 아히도벨에게 불쾌한 존재였다. 야훼의 이름을 팔아 권력을 얻으려는 자. 다윗과 다를 바 없는 자.

그러나 아히도벨이 더 분노한 것은 다른 이유였다.

밧세바는 그의 손녀였다. 그 손녀가 강제로 범해지고, 남편이 죽고, 아이까지 죽었다. 그런데 다윗은 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회개한 왕", "야훼를 두려워하는 왕"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나단은 그 모든 것을 도왔다. 다윗의 죄를 "해결"해주고, 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것이 정의인가? 이것이 야훼의 뜻인가?

아히도벨은 마음속 깊이 분노를 삼켰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다윗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압살롬이라는 이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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