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병영칼럼 2.
대전광역시 유성구 자운대를 금빛 병풍인 듯 감싸고 있는 금병산. 자운대 지역 부대 장병들이 전투체련 시간에 단체운동을 하는 산이다. 현역 시절 이곳 합동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전입 신고를 하는 날, 합동대학교 총장은 나에게 ‘「손자병법」 쓰기’ 책을 주었다. 원문 밑에 3번 쓸 수 있는 칸이 만들어져 있다. 합동부대 근무는 육해공군 서로 간에 장점을 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단점까지도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군인으로서 필수보직 코스이다. 자운대로 전속 가기 전, 합동대 예하 나의 직속 부대장님이 등산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전 ‘인사정보’를 획득하고 ‘케미’를 만들기 위해 꽤 고가인 등산화를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부대장님은 야전에서 지휘관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라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강조하셨다.
1월은 인사이동 마무리 시즌이다. 육군 여군 대위가 내가 속한 교학처에 배속되었다. 전입자의 신고가 있는 주간에는 수업 중인 교관·교수를 제외하고 어김없이 모두 금병산을 등산하는 ‘혹한기 훈련’이 시행된다. 비록 오후 한나절이지만, 겨울철 눈이 쌓여 미끄럽고 설상가상 바람도 불기에 높이가 낮다고 만만히 볼 수 없는 훈련 코스다. 힘들지 않으면서도 왠지 힘든 것이 등산이다. 2시간 여가 흐르고 연화봉을 지나자 개인 간의 간격들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갓 전입 여군 대위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처장님! 부대 후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부대 후미?’, 참으로 생소하게 들렸다.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 공군인 내게 지금 상황이 ‘군인들의 행군’ 임을 일깨워 주는 지상군의 외침이었다. 후미는 행군이 힘든 자이거나, 아이젠이 없거나, 무거운 짐을 든 자일 것이다. 그는 조금씩 뒤처지는 인원들이 계속 신경 쓰였고, 자신의 시야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자, 바로 내게 보고하면서 동시에 이상 유무를 확인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근래 고전 인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군인 출신인지라 그때 받은 손자병법을 다시 읽고 쓰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공기무비 출기불의, 승병 선승이후구전, 상하동욕자승’ 이외에도 가슴에 새겨둘 만한 글귀가 보였다. 장수가 왕의 명을 받고 출정하는 7장 군쟁(軍爭)에 이르면 전투에 있어 ‘말은 서로 들리지 않으므로 징과 북을 사용하고, 눈으로 서로를 보기 어려우므로 깃발을 사용한다. 병사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용감한 자일 지라도 홀로 진격하지 못하고(勇者不得獨進), 겁쟁이지만 혼자 후퇴하지 못한다(怯者不得獨退).’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후미가 염려되어 나에게 보고하였던 육군 대위의 단체정신과 손자의 勇者不得獨進(용자부득독진), 怯者不得獨退(겁자부득독퇴)라는 병법이 융해되어 ‘혼자로 안된다’는 ‘不獨(불독)’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잘났다고 앞서 가지 않고 힘들다고 뒤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나누는 전우다. 병영이나 외출해서 독불장군이나 외톨이는 안된다. 전우란 서로 간에 단단한 정서적 유대로 묶어진 불독(不獨)의 관계이다. 전우는 강력한 ‘전투 솔메이트’다. 동해 북단의 영공을 수호하는 전투비행단 구호가 떠오른다. “훈련은 실전처럼, 생활은 가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