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군 아저씨가 들려주는 공군 역사인물 이야기 김영환 장군 편 3.
김영환 장군은 부하들의 어려움을 잘 살피는 지휘관이었어. 1954년이면 정전협정으로 포성이 그치고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복구가 한창이던 때였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3년 동안 대부분의 산업 시설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다쳐서 먹고 살 일이 전쟁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 자료를 보니 1인당 국민소득이 77달러라고 나와 있어. 한국은 세계 아주 가난한 나라들에 속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상상도 못 하겠지만 말이야. 그 당시 공군에는 「코메트」라는 잡지가 있었어. 코메트 comet는 혜성이란 뜻이야. 제1훈련비행 단장으로 취임한 김영환 장군에게 통솔 방침과 소감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려 있어. 그 내용을 보면 통솔 방침은 따로 없고 본인이 실천으로 시범하는 것이 통솔 방침이라고 하였지. 그러니까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겠다는 뜻이지. 자신이 ‘솔선수범’하면 따라 하고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부하에게 따라 하라고 강조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그리고 소감을 묻자 우리 공군 장병들의 봉급을 미국 사람들만큼 준다면 좋겠다고 말했어. 그렇게 되면 군사강국인 미국 공군에도 절대 지지 않고 제반 기술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어. 어디까지나 소망을 말한 것이겠지만. 전쟁 후 우리 경제가 너무나 어려워 세계 최빈국에 해당되다 보니 지휘관으로서 부하 장병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봉급 이야기를 한 것일 거야.
김영환 장군은 1921년 우리의 국권이 상실된 시대에 서울에서 태어났어.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학병으로 징집되었지. 해방 후 국군이 강해야 나라도 강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조선경비대 육군 항공대에 지원했고 미군정 당시 지금의 국방부라 할 수 있는 통위부 정보국장을 했었어. 그리고 공군이 육군항공대에서 독립된 군으로 창군하기까지 지대한 공을 세우지. 6·25 전쟁에서는 우리 공군이 강원도 강릉기지에서 유엔군의 도움 없이 단독작전을 수행한 제10 전투비행단 초대 단장을 맡아 항공전을 수행한 거야. 그러나 그의 생애는 짧았지. 33세 나이에 비행 중 사고로 실종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멋쟁이 공군, 호연지기 전투조종사, 부하를 누구보다 사랑한 지휘관 그리고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지켜온 진정한 군인 김영환 장군의 정신은 공군의 전설로 남아있어. 김영환 장군 유품과 정신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 전투비행단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어. 10 전투비행단 정훈공보실에 견학 신청을 하면 볼 수가 있어. 관람 강추야. 김영환 장군을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