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병영칼럼 1.
나의 작심(作心)
새해가 열흘이 지났다. 동해 푸른 물에도, 도시의 빌딩 숲에도, 산간 어촌 마을에도, 3소대 병사들의 생활관에도 새해의 희망이 힘차게 출발했다. 우리는 세밑에서 지난 한 해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각 분야 시상식을 했고, 해가 바뀌자 올해의 정치 경제 전망을 펼쳤다. 어찌 보면 어제와 똑같은 아침인데 다소 법석을 떨 듯이 행사와 의식을 치러야 하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지나간 것 중 잘한 것보다 부정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만족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리셋(Reset)하고, 저마다 다시 꿈을 잡으려고 세월의 마디를 나누는 통과의례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가나 부대나 개인이나 다 그렇다. 그렇지만 공적인 조직과 단체는 시작과 마무리에 관한 법규가 있어 긴장감이 있고, 개인은 법규가 없으니 늘 느슨하고 매듭이 헐거워진다. 이제 세월의 마디에 따라 지난해를 리셋하고 다시 작심하는 기회를, 아니 권한을 갖고자 한다. 문제는 ‘작심 3일’인데, 아직 작심하지 않았으니 3일에 걸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그동안 작심이 문제였는지, 3일이 문제였는지 알 것 같다. 작심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시간 위에 타인들의 덕담만이 쌓여 간다.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은 춥다.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봄처럼 따뜻한 날을 1월로 정했으면 훨씬 좋으련만. 며칠 전 현역 때 시무식에 참석하는 날처럼 추운 날, 후배 사무실을 방문했다. 책 한 권이 필요했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이란 책으로 시판되지 않아서 구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내 책이 되면 밑줄도 긋고 페이지를 접거나 북마크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책을 받으러 가는 길, 부대 근처 전철역 앞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길래 큰 한 봉지 가득 샀다. 가득 샀지만, 큰돈이 필요치 않았다. 편안하게 지갑을 꺼냈다. 붕어빵은 겨울 맹추위를 녹일 수 있는 마음의 간식이다. 붕어빵은 3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겉은 온기를 가지면서 바삭바삭하고, 속은 적당히 따뜻하면서 쫀득쫀득하고, 핵심인 팥은 뜨겁게 ‘달콤 달달’한 오묘한 맛을 지니고 있다. 미소를 곁들여 봉지를 건네주니 참 맛있게도 먹는다. 오후 4시, ‘당’ 떨어진 시간에 입속의 붕어빵은 가성비 최고의 간식이 아니겠는가. 먹는 후배가 포만감을 내어주니, 건네주는 선배는 행복감을 받는다. 소확행? 맞다.
이때 묘한 생각이 들었다. 군대 BX에서 붕어빵을 팔아보면 어떨까. 3가지 오묘한 맛을 지난 붕어빵. 월간 참모회의가 끝나면 사단장님이 붕어빵을 같이 먹자고 손짓하고, 제설작업이 끝나면 부하들에게 전대장님이 붕어빵을 한 손 한 손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보자. 팥의 뜨거움이 너를 향한 나의 가슴이라고 말하면서. 해군 보급창은 푸드트럭을 이용하여 장병들이 일하는 임무현장까지 찾아가 ‘구이식 간식’을 제공한다는 국방일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푸드트럭에서 붕어빵도 만들면 좋겠다. 이 발칙한 상상만 해도 가슴이 흐뭇해진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과 평일 외출도 어느 누구의 발칙한 상상에서 발아되지 않았을까. 내친김에 북한군 병영에 우리 붕어빵 기계를 보내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황금돼지해 2019년, 나는 발칙한 상상을 더 많이 해보리라. 예전에도 그랬듯이 시작부터 거창하고 무거운 계획을 잔뜩 등에 지고 출발하면 가는 도중에 지칠 것 같다. 발칙한 상상 중 분명 행복하고,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의 작심 36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