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병영칼럼 5
왁자지껄 운동장에 학생들이 뛰놀고 있다. 어제만 해도 졸업시즌이라고 꽃과 노래가 교정에 가득하더니 어느새 겨울방학이 끝나고 수업이 한창이다. ‘검정 패딩 군단’이 사라지는 거리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전방 철책선 경계초소 담벼락에, 고산준령 대공 감시 레이더 돔 지붕 위에, 거친 파도 속의 고속정 갑판 위에 도시에 찾아온 봄이 왔을까? 국방일보를 손에 들면 남쪽 부대에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담겨있다. 야외 훈련을 해야 하는 장병들은 추운 날씨보다 따뜻한 날씨가 좋겠지만, 뜨뜻미지근한 겨울은 겨울답지 않다. 그런 겨울은 제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봄은 생명이고 청춘이고, 겨울은 휴식이고 저장이라 그렇다. 나무는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있어야만 새순을 저장할 수 있다. 동물은 겨울잠을 통해 에너지를 비축한다. 겨울 없이 봄은 없다. 봄과 겨울이 별개가 아니고, 겨울의 끝은 봄이고, 봄의 시작은 겨울이다. 겨울은 세상의 봄을 만들어주는 어머니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들어보라. 바이올린 현을 스치는 활의 힘찬 소리에 개구리가 끔벅끔벅 깨어나고, 뿌리는 영양과 수분을 밀어 올려 나무 눈이 꿈틀꿈틀 일어난다.
그래서 봄은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연이 그러하듯 사람 사이에도 그러하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1’에서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유홍준 작가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서문에서 말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사랑’과 ‘보다’의 선후 관계에서 나태주 시인은 ‘보는 것’을 먼저 말했고, 유홍준 작가는 ‘사랑’을 먼저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앞뒤 순서가 있다기보다는 동시적 관계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파란 여자 나비인간이 파란 남자 지구인간에게 그윽한 눈빛으로 “I see you.”라고 말했다. 나비인간의 see(보다)는 지구인간의 시각적 인지라는 신체 해부학적 말이 아니라 너를 알게 되어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헌신한다는 말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나태주 시인도 유홍준 작가도 곱게 길은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내가 전혀 관계하지 않고 자연이 무심코 만들어낸 풀꽃이라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면 평소 알던 것과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 것이다.
‘식은 밥은 데워 먹지만 식(싫)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런 상대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외면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외면은 그냥 싫은 것이 아니라, 선입견, 편견이 자신의 마음을 덮어 처음부터 쳐다보기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본다는 것은 상대를 알아 가는 시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에는 보자. 항상 내 곁에 있는 전우를, 동료를, 부하를 더 자세히 보자. 자세히 보면 예쁜 것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오래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울 것이다. 파란 나비인간의 ‘I see you’ 눈빛을 가득 담고 말이다. 내가 근무했던 공주 계룡산 자락의 삼군본부 계룡대에 봄이 되면 만발했던 개나리와 산수유, 연산홍이 보고 싶다. 그때 들었던 말, “이대위! 지금 밖에 꽃 보면서 무슨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