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연, 그리고 권기옥

- 항공 선각자 이야기 권기옥 편 1.

by 이형걸

Scene #1. 치마저고리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 머리 위로 커다란 새가 날아간다. 소녀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커다란 새를 쫓아 억새풀 가득한 산등성이를 달려간다. 커다란 새는 비행기. 그리고 자막, ‘1925년 한 여자가 하늘을 꿈꾸기 시작했다.’

2005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첫 장면이다. 영화 제목은 청연(靑燕). ‘푸른 제비’, 아니면 ‘파란 하늘의 제비’라는 정도의 뜻이 되겠다. 윤종찬 감독이 만들고 배우 장진영, 김주혁이 열연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한 여성이 비행사가 되기 위하여 꿈을 실현해 나가는 내용이다. 조선 여성의 이름은 박경원. 실존 인물 박경원은 영화로 각색되지 않았더라도 현실에서 영화처럼 살다 간 신여성이다. 식민지 여성이라는 억압과 차별을 극복하고 비행사라는 소망을 이루었지만 33살에 비행 중 구름 속에서 추락하여 요절한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난 경원은 집안이 부유하지 못하고 더구나 언니가 4명이 있어 아주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경원은 어릴 적 동네에서 비행기를 처음 본 후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경원은 비행사가 되려면 일본으로 가야 하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눈이 내리는 겨울 일본 다치가와 시내 저녁, 낮에는 비행학교 학생이면서, 밤에는 택시 기사로 일하며 비행학교 학비를 벌고 있는 경원이는 우연히 술에 취한 남자 승객을 태운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남자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면서 잔돈을 돌려받지 않는다. 한눈에 서로 조선의 젊은이라는 것을 알고 가벼운 눈인사로 여운을 남긴 채 헤어진다. 승객 한지혁은 자신과는 달리 당당하게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경원에게 끌린다. 그리고 경원과 지혁이 다시 만난 것은 비행학교 연병장에서 이뤄졌다. 지혁은 조선의 갑부로서 아버지가 지혁에게 일본군에 입대할 것을 강권했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배치받은 곳이 경원이가 비행 훈련을 받고 있는 곳이였다. 다시 만난 이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여기까지는 어릴 적 꿈꾸어 왔던 자신의 모습에 한발 다가서는 스토리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새로운 고난을 예고한다. 식민지 국가의 여성인 경원에게 이중의 불행이 찾아온다. 비행대회에 출전하려는 경원은 일본 여조종사에게 기회를 뺏기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간첩 혐의를 받으며 사형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2등 조종사가 되지만 사랑도 잃고 동료도 잃고 힘겨운 그녀.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비행뿐. 고국 방문 비행만이 그녀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것을 알고 기상 조건이 매우 나쁜 악천후임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시작한다. 만류하는 동료들의 말을 듣지 않은 채 폭우를 동반한 희색 구름뿐인 서쪽 하늘을 향해 조종간을 당긴다. 그녀의 비행 좌석 안에는 사랑하는 연인 지혁의 유해를 담은 보자기와 함께. 그리고 구름 속에 방향을 잃고 산에 추락한다. 경원이가 조종했던 비행기의 이름은 ‘청연’이다.


이 영화는 조선 여성 박경원이 최초 여류비행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조종사가 되려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여군 조종사가 되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민간 비행학교의 자격증을 획득하는 길이 있다. 그런데 공군사관학교가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때가 1997년이었으니 매우 늦은 편이라 하겠다. 나라가 없었던 1920년대, 식민지 여성이 남성 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신문물의 비행사가 되겠다고 하였으니 첨단을 걸어가는 신여성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한 이유로 영화는 개봉되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며 순항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네티즌들이 ‘청연’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 한몫했기도 했다. 이 영화는 2가지 관점에서 논란이 되어 오래 상영되지 못했다.

하나는 박경원은 최초의 여류 비행사가 아니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그녀가 비행사가 된 후 친일 행각을 했다는 점이다. 먼저 최초 여류 비행사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영화제작사 측에서 ‘최초의 민간 여자 비행사’로 수정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박경원의 친일 논란은 꽤 오랫동안 세간의 이야기가 되어 흘러 다녔다. 그의 고국 방문 비행은 일본 고위층의 후원을 받은 것이며, 후원은 추문과 얽혀 있었다. 고국방문 비행이 일본의 만주국 설립을 홍보하는 ‘일만 친선 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日滿親善 皇軍慰問 日滿連絡飛行)이라는 선전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윤종찬 감독은 “박경원을 영웅으로 만들거나 미화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꿈을 향해 노력할수록 조국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제작 취지를 설명했지만, 우리 사회의 반일감정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건드린 만큼 논란은 상당 기간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화는 대중매체 중 TV와 쌍벽을 이루며 보통사람들의 지식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 흥행에서 관객 수가 300만 명이면 웬만한 사람은 다 본 것이며 1천만 관객 동원의 영화라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본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박경원은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제 강점기 요절한 여류 비행사라는 기억은 남아 있는 셈이다. 이제 박경원과 함께 우리가 더 깊게 기억해야 할 여성 비행사로 권기옥이 있다. 권기옥은 여류 비행사라는 타이틀보다 여군 조종사라는 타이틀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우연인지, 두 여성을 비교하라는 것인지 권기옥과 박경원은 같은 해에 출생하여 다른 삶은 살아야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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