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항저우의 날씨는 우기로 접어들어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중국 고도의 하나인 항저우는 ‘시후(西湖)’로 유명한 곳이다. 시인 소동파도 서호를 노래했다. 이번 항저우 여행이 나에게 특별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2년 상하이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1919년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우국지사들은 4월 11일 조선의 바깥 땅에서 임시정부를 설립하였으니 풍찬노숙의 망명정부였다. 임시정부 지도부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거사 후, 5월 항저우로 임시정부를 옮기게 된다. 임시정부는 그 후로도 자싱, 난징, 창사, 광저우, 치장을 거치고 여덟 번째를 끝으로 충칭에서 5년간을 머물게 된다. 자주독립의 절실함을 느꼈던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광복군을 창설하고 아래에 공군설계위원회를 두었다. 비행대를 편성하여 미군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공군에서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창공클럽 창설’과 ‘공군 역사인물 선정’을 계기로 공군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생겼다. 창군 이전 일제강점기에 미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조종사를 양성하려고 했거나 조종사로 활동했던 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안창남, 안창호, 노백린, 박희성, 이용근, 최용덕, 서왈보, 권기옥 그 외 다수 인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항공력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그들을 우리는 항공 선각자로 불렀으며 공군의 역사로 이어가는 일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우리 항공력으로 국권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좌절과 실패의 역사라고 하지만 도전과 헌신의 역사임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때를 같이 하여 항공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재야 학자들이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윌로스 비행학교와 중국 공군에서 조종사로 활동한 한인 조종사들에 관한 자료를 선뜻 내놓았다. 지금 우리 공군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맥이 닿아 있었음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광복군 공군설계위원회 주임이자 총사령부 본부 참모처장은 중국 공군 기지사령관이었던 최용덕 장군이며 제2대 공군참모총장이다. 그리고 백범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은 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미국에서 비행훈련을 받았던 조종사로 해방 후 다시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한 제6대 공군참모총장이다.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 만세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충칭을 방문하고서 대한민국의 뿌리는 임시정부라고 선언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된 지 30년이 지난 1949년,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 수립 1년 후에 공군이 창군되었다. 내년 2019년은 3·1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공군 창군 70년이다.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항공 선각자들에 대한 사료들이 더 많이 나오고 가치가 선양되어 공군의 자긍심이 드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경희대 공군 MBA 과정 학생들과 다녀온 항저우 여행을 계기로 공군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항공선각자들을 찾아하는 여행을 할 것이다. 첫번째 여행은 일제강점기 시대 최초 한인 여류 조종사인 박경원과 중국 공군으로 조국의 독립을 꿈꿔온 여군 조종사 권기옥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