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생존력

by 나도혜

아빠와 같은 이부자리에 누워 있으면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던 엄마는 결국 원하던 이혼을 이루었다. 한 여름에 수박도 못 사 먹고 모으던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기듯 엄마는 나갔고 아빠는 여동생과 나를 절대 엄마에게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모든 환경이 뒤바뀐 게 7살 때였다.


하루아침에 여동생과 나는 큰아빠와 사촌 여동생이 있는 친할머니댁에 맡겨져야 했다.

같은 시기에 큰엄마도 사촌동생을 두고 집을 나가버려서 할머니가 손녀 셋을 씻기고 입혀야 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새롭게 가게 된 어린이집에서는 하지 않던 소변 실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이집 버스에선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낯설고, 무섭고 불안정했다. 엄마가 없는 하루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엄마가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보고 싶어도 아빠한테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녀의 증명사진 한 장을 몰래 숨겨 보곤 했다.


친할머니한테도 엄마 이야기를 되도록 안 하는 게 이 로워 보였다. 여동생과 내가 친할머니집에 온 이후로 5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은 매일 할머니한테 혼이 나고 구박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지 하는 행동이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 그 하나였다. 솔직히 얼굴만 보면 엄마를 닮은 건 나고. 여동생은 아빠 판박이었다. 그저 내가 할머니한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첫 손녀인 게 큰 것 같았다.

제일 막내인 사촌여동생은 큰 아들에 외동딸이라서 사랑을 받았는데 내 동생 혜림이만은 미운오리새끼 마냥 혼이 났다.


어느 날은 짜장 배달을 하던 아저씨가 단무지를 길바닥에 흘리고 갔는데 그걸 혜림이가 주워 먹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할머니한테 혜림이가 길에 떨어진 단무지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네가 거지냐며 매를 들고 혜림이를 혼 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엄마나 아빠한테 동생이 맞거나 혼나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꽤 충격이었다. 얼른 엄마와 아빠가 동생 만이라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바랫다.


밥을 먹을 때에도 밥상 위에 새 반찬이 올라오면 할머니는 혜림이한테만 어떻게 새 반찬인 줄 알고 그거부터 먹냐며 혼을 냈다. 생선이 있어도 사촌동생과 나한테만 발라주고 동생은 매일 김치에 밥. 라면에 김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할머니가 발라주는 생선을 싫어한다며 안 먹는 것뿐이었다. 그 밖에도 혜림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구박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단 둘이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는데 뜬금없이 비밀이라며 어린 혜림이가 말했다.

‘언니, 잠을 자다가 잠깐 깨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할머니가 나한테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리면 입을 꿰매 버린데.’ 비밀이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에 나는 침착했지만 충격이 컸다. 할머니가 그런 말을 동생에게 했다는 사실에 실망과 분노가 일었다. 그럼에도 함께 어렸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우리의 의식주를 챙겨주는 사람은 할머니뿐이라서 오히려 더 사랑받으려고 용을 썼다. 나는 동생처럼 미움받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컸고 매일이 생존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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