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갔다. 고모 손을 대신 잡았다. 처음 가는 낯선 교실 안에서 내가 왜 이곳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몰라 교실밖을 나왔다. '혜민아 나오면 안 되는 거야 가서 앉아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고모말에 주변 엄마들이 웃었다.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도 미술시간에 꼭 한 두 번씩 손바닥을 자로 맞았다.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게 이유였다. 할머니는 엄마 대신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미안해했다. 그런 건 상관없었다. 엄마가 없어서 제일 곤욕이었던 건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전체 눈을 감게 한 뒤, 부모님이 이혼을 한 아이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말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눈을 감는 척 실눈을 뜨고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죄를 지은 듯 심장이 쿵쾅 거렸다. 아마 그때 내 얼굴은 터질 듯 빨개졌을 것이다.
학교에서 나는 말수가 적고 잘 웃지도 않고 늘 친구 한 명 아니면 혼자 다녔다.
그럼에도 친구 사귀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12살 무렵 사귀게 된, 반 친구 여자아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집안에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계셨다. 인사를 했고 내 인사를 받는 아이의 엄마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어디서 이런 아이를 데려왔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친구 집에 들어온 지 30분도 안 돼서 혼자 집으로 가야만 했다.
매일 교복처럼 입고 다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였을까. 아님 빗질 한 지 오래된 보이는 머리상태 때문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엄마 없는 티가 났길래 도망치듯 친구네 집에서 나와야 했을까. 그다음 날 그 친구는 내게 인사를 하지 않고 말을 걸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니 또한 그랬다. 장을 보고 오셔서 혜민이가 있으니 쟤가 집에 가면 비싼 과일을 먹으라는 말을 하거나 그랬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걸. 일주일에 여러 번 가던 대형마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할머니와 동생들과 가던 곳이어서 시식코너에 계신 아줌마가 내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나 보다.
한 번은 엄마가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던 때에 엄마 손을 잡고 마트에 갔는데 아주머니께서 엄마가 있었네 라는 말을 하셨다. 그 말에 엄마는 그 아주머니에게 마트가 떠나가라 화를 냈다.
엄마 없는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엄마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긴 했다.
다시 엄마는 엄마의 삶으로, 나는 나대로 돌아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내가 말했다.
‘엄마, 단칸방이라도 좋으니까 같이 살면 안 돼?’
엄마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에 또 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책상 위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를 무시했다. 인사도 하지 않고. 슬프고 화가 났다.
엄마가 가고 나선 곧바로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너무 엄마랑 같이 살았으면 하고, 사랑하고 있는 게 티가 났을까. 금세 할머니한테 미움받을까 조바심이 났다.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매일 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서 숨죽여 울었던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