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다섯 살

by 나도혜

아빠는 엄마를 만나기 전에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일을 했다고 한다. 아빠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있다고 했다. 친할머니는 엄마보다 그분을 더 마음에 들어 하셨다. 아마도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쁜 여자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시골에서 올라온 사투리 쓰는 여자가 단순히 귀여워 보였거나 보호본능이라는 게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얼굴도, 손도, 키도 다 작은 우리 엄마. 서울에 사는 나 씨네 아들과 문경에서 올라온 박씨네 딸이 만나 내가 태어났다. 아빠는 그 나이 또래에 하고 싶은 일과 갖고 싶은 걸 참고 돈을 벌었다. 그러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한다.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일들을.


아빠는 술만 먹으면 진상이었다고 한다. 부엌 바닥에 참기름을 일부러 부어, 친할머니와 엄마가 밤새 바닥을 닦게 했고. 이제 막 뒤집기를 하는 나를 침대 위에 던져버리곤 했다.

엄마는 놀라 나를 업고 놀이터로 나와 새벽 내내 아빠가 잠들 때까지 서성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틈만 나면 경기를 했다. 뒤늦은 엄마 아빠의 결혼식 후에도 경기를 해서 두 사람은 신혼여행 대신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결혼식까지 뒤늦게 올리고 잘 살면 좋았을 텐데. 다섯 살 때였을까. 새벽 늦은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아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와 엄마는 택시를 타고 급하게 응급실로 갔다. 친할머니, 고모, 큰아빠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만 보면 웃던 할머니와 큰아빠, 고모가 울고만 있어서 왜들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 울고 나를 좀 재워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병원을 놀이터처럼 돌아다녔다. 집보다 넓은 병원 복도와 또래의 오빠가 누워 있는 침상에 가면 게임기와 장난감이 있어서 좋았다. 2년 동안 아빠는 병원에서 생활해야 했고 엄마는 나와 여동생을 재워두고 밤마다 나가서 새벽에 들어왔다. 잠에서 깨면 엄마가 없는 게 그렇게 무서웠나 보다. 나는 온 빌라가 떠나가라 울었고, 내가 울면 동생도 따라 울었다. 그때마다 누군가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어디 갔냐며 내 가슴을 토닥이고 재워주곤 했다. 아직까지도 정말 이웃집 사람이었는지 아님 어린 나의 환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 둘을 두고 나가서 첫차 뜰 때 들어오는 엄마도 무심한데 문도 안 잠그고 나간다는 게 말이 되질 않으니까. 술에 취해 들어오자마자 잠을 자는 엄마는 새벽에 또 깨서 울었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혼날 걸 알았지만 울었다고.

신경질을 내며 혼을 내는 엄마에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엄마는 눈을 떠서 살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다.


언제부턴가 엄마 대신 친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할머니는 포도껍질을 손으로 하나씩 까주며 내 입에 넣어줬다. 엄마한테 받아 본 적 없는 손길을 받으니 배가 불러도 계속해서 먹어댔다. 졸음이 올 땐 꾹 참았다. 할머니도 엄마처럼 자고 있을 때 떠날까 봐 무서웠다. 옆에 있을거라고, 괜찮다고 자라고 해도 울면서 잠자는 걸 싫어했다. 어느 날은 잠을 자다가 현관에 있는 신발에 소변을 누기도 했다. 큰아빠는 정신적으로 어린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다.

그럼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퇴원 후 아빠는 밖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엄마를 잡아 오고. 집에 들어온 엄마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매번 싸울 때마다 옆집에 잠시 맡겨져서 언니 오빠들이 노는 걸 기웃거리고 있는 일도 비참했다. 집 가는 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아빠를 보는 일도 괴로웠다.

어린 나는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빠 울지 마’ 하고 말했다. 어려도 느낄 건 다 느낄 수 있는 힘든 다섯 살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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