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거짓말

by 나도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야 했다. 허전함을 먹는 걸로 달래고, 물건으로 채워보면 잠시 채워지지만, 결국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하느냐였고. 좋은 차를 타고, 멋있는 풍경을 봐도 혼자 보다 둘이 봐야 좋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이에 오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평생을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라면, 남은 생을 함께 해도 재밌고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오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같은 집,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평범하면서 기적 같은 일인 걸 알고 있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을 바라며, 나는 단 한 사람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그 사람과 나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때와 서로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진지한 대화를 할 때도 있다. 어느 날 우리는 바람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바람도 유전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 말 앞에서 나는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됐다.

살면서 바람이라는 걸 피운 적이 없지만, 바람피우는 엄마와 동조를 해서 아빠를 속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에 능통했다고. 우리 외할아버지와 그의 딸 우리 엄마는 바람을 핀 전적이 있었다고

그런 유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친할머니는 처음부터 엄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안 하는 게 맞다는데 어린 부모는 나를 낳고, 지하 단칸방에서부터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두 집 모두 그럴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23살에 어린 아빠는 낮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엔 군밤을 팔았다. 22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아빠가 벌어 온 돈을 악바리처럼 모았다. 얼마나 악바리였냐면 한 여름, 임신 중이던 엄마는 시장에 파는 수박이 먹고 싶었지만 비싸서 포기하고 집에서 하루 두 끼를 라면으로 해결했다고 했다.

2.5킬로에 태어난 나는 그 덕인지 어릴 때부터 컵라면을 좋아했지만 다 커서 안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라면이 돼버렸다.

지하 단칸방에서의 옛 시간들은 아득하면서 잊히지 않는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부엌과 화장실. 풍수지리상으로 현관문을 열고 바로 보이는 문이 화장실문이면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그 집에서 보낸 몇 년의 어린 시절은 웃는 일보다 우는 일이 많았다.

엄마 아빠가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던 때였다. 두 사람이 싸운 주요 원인은 친할머니였다.

엄마는 시댁식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엄마가 뱃속에 나를 가질 때였는데 큰아빠가 왜 누워 있냐고 싫은 소리를 할 때 엄마는 바로 아빠를 불러 본인들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친동생을 애기 때부터 미워했는데 그 이유가 하는 행동이 엄마를 닮았다고 나와 차별대우를 했다. 엄마는 그런 게 불만이었고, 친할머니 집에 다녀올 때마다 아빠와 그 이유로 말다툼을 하고, 크게 싸울 땐, 방문을 닫고 욕을 하고 몸싸움을 했다.

문 틈 사이로 보일 건 다 보던 어린 나는 그때마다 무서워했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불을 꺼두면 애들은 잘 거라는 그들의 생각은 그냥 어둠 속에서 벌벌 떨게 할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의 일탈은.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가는 사람이 내가 되었는데 예쁘게 단장을 하고 온 엄마는 모르는 아저씨 차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미사리 카페를 다녀왔다.

그 옆에서 나는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뒷좌석에서 멀미를 해서 차를 세우게 했다.

그게 바람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엄마가 집 들어가기 전 시킨 거짓말 또한 태연하게 할 수 있었다. ‘혜민아, 아빠가 어디 갔냐고 물으면 엄마랑 교회에 가서 저녁 먹고 왔다고 해 그렇게 말 안 하면 아빠랑 엄마 또 싸우는 거야 알겠지?’ 나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거짓말을 했다. 태연하게, 천연덕스럽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