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와 기록 사이, 사회복지사에서 아키비스트로

학교에서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

by 학이지지


수업 시간의 망설임


오늘 수업 시간.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닌데, 나는 결국 말을 하고 말았다. 회사에 와 곱씹다 보니 괜한 소리를 보탠 것 같고, 나만 분위기를 흐린 것 같았다. 오늘 학교에서는 공동체 아카이브와 당사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관에 가득 쌓여 있거나 묻혀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는 듯했다.


당사자성과 나의 자리


당사자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더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직접 겪었기에 할 수 있는 말”과 “겪지 않았기에 조심해야 할 말”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책임의 의미도 담고 있다. 나는 늘 그 애매한 경계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당사자들 가까이에 있고, 또 그들의 기록을 이어주는 자리. 이 자리는 때로 불안하게 다가오지만, 어쩌면 그 불안 자체가 기록을 다룰 때 내가 가져야 할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지를 떠난 이유


사회복지를 그만둔 건 내가 어느 순간 ‘당사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구슬꿰는실에서 “겪지 않았더라면 몰랐을”이라는 글을 썼을 때 나는 당사자성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곁을 지킨다고 해서 내가 곧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사회복지에서의 당사자주의


사회복지에서 당사자주의란, 서비스의 ‘대상’이라 불리던 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주체가 되는 것이다. 전문가가 정한 기준에 맞춰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정신장애인 혹은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의제를 세우고 결정하며 실행하는 것을 존중하는 원칙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로 살아가는 것.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대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게 내가 꾸던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구술생애사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내 생각이 짧고 말이 서툴러서, 어딜 가나 어색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첫인상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진심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조심스럽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사회사업의 성과는 관계


사회사업은 결국 당사자가 자기 삶을 살고 주변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사회사업의 성과는 거창한 지표에 달려 있지 않다. 당사자의 삶 속에 새로운 관계가 생기고, 더 깊은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과다. 그래서 사회사업가는 당사자에게 작은 일도 묻고, 의논하고, 부탁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그 일이 ‘당사자의 일’이 된다. 더 나아가 사회사업가는 둘레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어울릴 만한 일을 제안한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일


나는 여기서 다시 마음이 복잡해진다. 당사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부자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까? 나는 그럼에도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언어를 따라가려 애써왔다. 타인의 언어를 배우며, 그 속에서 나의 언어를 새로 찾으려는 것. 그 과정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윤리적 실천 아닐까 싶었다.


기록학에서의 당사자성


기록학에서 당사자성은 단순히 ‘누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목소리가 어떤 맥락 속에서 발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기록과 해석의 과정에 들어오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공동체 아카이브 담론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기존 공공 기록 체계는 특정 권력층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소수자와 주변부의 경험을 배제해왔다. 반면 당사자성을 존중하는 기록은 그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그러나 동시에, 당사자만의 목소리가 기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전문 아키비스트와 연구자는 ‘비당사자성’을 자각한 상태에서 기록을 구조화하고 보존하는 또 다른 책임을 갖는다. 두 입장이 긴장과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만 기록은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경계 위에서 묻는 질문


사회복지를 그만두고 기록학을 배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회사업가가 아키비스트가 될 수 있을까?


사회복지와 기록학의 접점에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있다. 사회복지 현장은 스스로를 전문가라 규정하기보다 당사자의 삶을 거드는 ‘조력자’라는 위치를 강조한다. 반대로 기록학은 제도와 법, 기술적 체계를 기반으로 발전하며 자신을 “전문직”으로 확립하려는 노력이 강하다.


이 두 태도는 상반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사회복지가 지닌 자기-비전문가적 겸손은 기록학이 지향해야 할 윤리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기록학의 전문성은 사회복지가 기록화 과정에서 부족했던 체계성을 보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문가’라는 위치를 독점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당사자성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을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복지와 기록학 사이, 당사자와 비당사자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경계가 바로 나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사회복지사가 아키비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한 개인의 진로 고민을 넘어 두 학문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복지가 지닌 관계적 감수성과 기록학의 체계적 전문성이 만나야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기억을 더 공평하게, 더 풍부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교차점에서, 아직 불완전하지만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주절주절 썼다. 답답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고 느껴서. 하지만 어쩌면 이 무력감 속에서도 나는 기록을 하고 있었다. 나의 불안과 망설임, 경계 위에서의 방황도 결국은 지금 여기의 나를 증명하는 작은 기록일 것이다. 아직은 불완전하고 어수선하지만, 그 주절거림 속에 내가 찾고 싶은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거울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