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당시를 생각해본다. 길어야 30-40분인 사이, 면접 동안 나는 얼마나 나에 대해 보여줬으며, 면접관은 나를 제대로 보려 노력했을까? 뭘보고 나를 뽑았을까? 내가 사회복지사처럼 보였을까?
같이 일해도 무난한 사람, 시키면 뭐든 할 것 같은 사람 그럼에도 사회복지사 업무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은 사람. 적당히 활발한 사람. 그 짧은 시간, 내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들이다.
일을 하러 왔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 시야를 넓히겠다는 마음에 직장을 옮겼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지난 몇 달 간, 그동안 쌓아왔던 수많은 질문들이 다시 내 안에서 밖에서 쏟아졌다. 그 질문에 답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잠깐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볼 시간은 주말 밖에 없었다. 일에 치여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꼭 그 질문에 답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그렇게 현실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큰 질문은 '사회복지사다움이라는 건 무엇일까'였다. 사회복지사답다는 건 어떤 이미지를 말하는 것일까? 내겐 명확한 자기다움이 없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해야하는지 여전히 모르는 내가 답답하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 묻고 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답다'라는 말은 '성질이나 특성이 있다'라는 뜻인데, 도대체 그 성질과 특성이 명확히 뭔지 말로 표현이 안되고 그 느낌만 남아있다. 말로 표현이 안되니 9년 가까이 해도 여전히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일하면서,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해보고 '아닌 것 같다'라고 판단내릴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실습생들에게 말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 실습하다가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속 시원하게 제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지만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지 않고 열심히 출근하고 있다. 변덕스럽게도 어쩔 땐 이 일이 아니었으면 내가 정말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살았을까 싶기도 하고 쪼꼬만한 애들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이 일하기 잘했다 싶기도 했다. 어쩔 땐 이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맞는 비처럼 점점 사람이 축 쳐지는 데, 이 정도면 안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사회복지사답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 기준에 내가 부합한 사람이었나 생각한 다음, 때려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자꾸 '왜'의 질문을 찾고 있었다. 나름 오래해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냥 돈 벌려고 한 건 아니니까 뭐라도 말이라도 좀 해보고 싶다. 그래서 더 잘사는 게 뭔지, 도대체 사람다운 게 뭔지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다움, 사회복지사다움, 내가 이걸 왜하는지 근거, 말, 증거가 있어야 때려치더라도 후련할 것 같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
먼저 사회복지사답다는 이미지를 생각해봤다. 적당히 밝고 외향적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친절하게 들어주고, 적당히 회사원이지만 내 나름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주변에 관심을 쏟는 활동가 같은 사람? 회사원과 활동가의 그 중간? 그 다음, 이 회사에서 원하는 사회복지사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회사가 직원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요구하는지 파악하고 관찰했다.
이 두가지 생각 중, 사회복지조직원으로서의 이야기는 배제한 채, 먼저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역사회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참 애매모호하다. 복지관의 역할들은 어느새 다른 영역으로 떨어져 나가 전문화된다. 그렇게 여러 센터들이 생겨난다. 연말 연초마다 도대체 복지관의 역할이 뭔가 고민하다. 내가 뭔 일을 할 수 있나 여기저기 세미나를 찾아보고 바뀐 정책들을 참고해본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면 뭐냐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또 새로운 일을 어떻게든 찾아나선다. 방법은 자꾸 바뀌지만,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게 있다. 지역 안에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게 혼자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 틈을 찾는 건 사회복지사다. 소위 적당한 오지랖을 부리며, 지역 안에서 소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응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별 일 없이 밥 먹고 소화 잘되고, 똥 잘싸고 잘 잤으면 좋겠다. 하루 24시간이 평범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여러 방식으로 구체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동네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른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데? 결국에는 관찰하고 묻는 수 밖에 없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도 내가 아닌데, 이 관계 속에서 결국엔 묻고 답하고 조율하는 것 밖에 없다. 어쩌면 사회복지사답다는 건 상대방 또는 지역의 강점을 잘 발견하고 잘 묻는 성질이 있다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내가 이게 잘 안된다. 괜한 두려움이 앞서, 언제나 쭈그린 채 소심히 툭툭거리기만 한다. 무언가를 깊이 알아가는 게 힘들다. 사람이든 지역이든 해결해줄 수 없으면서 남의 지난 상처를 후벼파는 것 같아 무섭다. 내가 도우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때,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조직에서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때, 그러다보니 빠른 일처리에 마음이 급급해질 때,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짧은 시간 내 너무 쉽게 그 사람의 어려움에 깊이 빠져드는 내 성향이 싫었다. 더 단단해지려고 했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 '외면하기' 스킬만 생겼다. 하지만 100프로 외면하지 못했다. 당사자와의 깊은 관계가 두려워진다고 해서 외면할 순 없었다. 무언가를 점점 알아가다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나는 감정이입을 잘하지만 그건 내 경험에 한해서다. 이 포인트에서 질문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나온다. 명확하지만 배려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처음은 그렇다. 상대방이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나의 경험치로는 나의 생각으로는 여전히 선택적인 공감을 할 수 밖에 없고 자꾸 이 틀을 깨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자꾸 졸렬해지는 내 모습이 보기 싫다. 그렇기에 자꾸 나를 경계하고 날을 세운다. 그래서 더 확신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아픔, 그들이 말하는 경험에 대해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정말 맞나 생각이 들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로울 때도 있다. 사례집을 찾아보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언제나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야되는데, 쉬고 싶고 어렵게 가기 싫은 마음에 질문하기를 꺼려하고 망설인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는 일이 묻고 평범한 일상을 돕는 일인데, 그 첫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은 돈 받고 일을 안하겠다는 거나 다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헛된 희망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구분하려고 애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잘 안되니 힘들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고 할 때 신중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적당한 기준, 지침, 매뉴얼이 없어 답답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 자체도 괴롭지만, 어쨌든 내가 모든 걸 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앞뒤가 들어맞게 말하고 싶고, 그렇게 일하면서 돈 벌고 싶다. 하지만 난 모순 덩어리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정리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다움이란 잘 묻고 당사자를 잘 돕는 일인데, 내가 묻는 걸 힘들어하고 빨리 일처리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는 것이다. 근데 물어야 일이 끝난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놓고 집에 와서 일 생각한다.
열심히만 하면 잘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래하면 할수록 공허하기만 하다. 내가 확신이 없어서다. 내가 주관이 없어서다. 뭐가 정상적인건지, 어떤게 평범한건지 내가 정의를 못내리겠다. 정의를 내리려고 하다보면 일처리가 안되니까, 조금씩 시간을 내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집에 오면 다 짜증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마음을 다독인다. 내가 정말 사랍답게 살고 있는 건지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누군가의 일상을 크게 응원한다는 게 힘드니, 나부터 다시 생각한다. 자꾸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본질이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멈춘다. 이어서 지역 안에서 각자 알아서 잘, 혼자가 아닌 주변의 관계 속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여기까지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내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기록하고 근거라도 열심히 남겨놔야겠다. 하면 할 수록 답이 없다. 그래도 자꾸 기록하다보면 내 나름대로 정리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무말 대잔치를 한다.
두번째로 회사가 원하는 사회복지사다움이다. 아직은 말하기 조심스럽다. 찾고 있다. 조직마다 다를테지만, 아직은 해내야 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대신 여러 글을 읽다보면 가치와 철학이 분명한 사회복지사들을 보게 된다. 부럽기도 하다. 그들처럼 사회복지를 하든 안 하든 회사생활을 하면서 적당한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이러한 글들이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회사 사람들은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서로 관심이 없다. 나는 그 점이 적당히 좋고 적당히 불편하다. 무심히 던지는 뼈있는 말들을 이해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굳이 표현하지도 않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버티는 느낌이 들때도 웃는다. 여기도 일하는 곳이고 회사다. 그래서인지 나는 복지관이라는 말보다 '회사'라는 말을 잘 쓰는 것 같다. 어쩌면 사회복지사로서 전문적으로 누구를 돕는 일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혼자 쭈굴거리고 있다. 이 안에서 내 개인의 성장, 당사자 중심의 실천,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가 조금 더 애정이 넘치는 '동네'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나가고 싶다.
이왕 돈벌러가는 거 신나게 벌러 가보자. 실천하고 자책하고 성찰하고 보완하고 도전하고... 다른 사회복지사들의 실천처럼 흐름 있게 잘 한 점에 대해 말하지는 못하겠다. 잘했다는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더욱 있는 그대로 적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보면 그렇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여전히 부족한 나에 대한 자책이 주된 내용이었다. 비슷한 글들이 주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조금씩 생각할 거리들이 세분화되는 게 보인다. 시간이 지난 뒤 이 기록들을 보면서 내 변화를 내가 느끼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복지사답게 일한다는 게 뭔지 내 안에 확신이 생기면 언젠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일 출근하기 위해 아무말 대잔치를 한다. 즐겁게 돈 벌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