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래야 사람사는 거지.... " 언젠가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다라는 걸 알 수 있다던데. 그래서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이길래....
지금 나는 내가 사랍답게 살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게 사람답게 사는 건진 모르겠는데, 지금의 내가 아닌 건 알겠다. 사람답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사람다운 게 뭔지 모르겠다. 어떤 것일까? 사람답게 살려면 뭐가 필요할까? 뭘 해야할까? 비슷한 듯 너무나도 다른 개인의 삶들을 내가 들여다볼 자격이나 있을까? 물어볼 수나 있을까? 질문들이 쏟아진다.
해가 지날수록 가치관이 정립되기보다 혼란스럽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건 다른 사람에게 상식이 아니고 무례이고, 반대의 경우도 여럿 겪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란 걸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느낀다. 이렇게 중심이란 게 없어지고, 마음을 닫고 편하게 안주하고 싶은 마음만 든다. 기본적인 식생활, 발 편하게 뻗을 주거공간, 가끔 만날 수 있는 사람, 아침마다 가는 직장 이 네가지만 생각하면서 말이다. 기본적인 것 같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지도 않으니, 덕도 없고 도도 없다. 그래서 이 일이 힘든건가 싶다. 자꾸 나를 작게 만든다.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몰라서, 겨우 밥벌어 먹기 바쁜데, 업무의 목적이 내게는 너무 커보여서.... 가치중심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하면 할수록 나 살기 바빠서, 생각하는 법 질문하는 법을 자꾸 잊어버리는 내가 싫어서. 그래서 자꾸 고민하게 된다.
몇달 간 개인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회사에서 상담일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이용자의 이야기들을 곱씹고 곱씹었다.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영상이 펼쳐졌다. 특정 장소가 나오면 그 시절의 사진가 지금의 사진을 비교해가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처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듣다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 이 순간,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를 이야기를 하러 가더라도 과거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듣는 순간에도 과거의 기억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보여지면, 자연스럽게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여러번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보면, 어르신들이 올 한해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지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씀을 하셨다. 그 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보니 지금 어떤 '의미'인지 말씀하셨다. 상담일지에 모든 걸 다 담을 순 없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걸 온전히 어떻게 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더불어 지난 경험을 통해 내게 어떻게 잘 살아야하는지, 잘 살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르신들도 나를 돕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도와야하는 게 맞는 건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잘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나는 이용자들이 생각하는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잘 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의 생각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 늙어버릴까 무섭다.
사랍답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 애써본다. 귀찮지만... 생각하는 걸 멈춰버리면 안될 것 같다. 언젠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올해는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