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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Jul 08. 2023

사람 앉혀놓고 폰만 보는 게 싫다

오랜만에 막걸리에 전이 먹고 싶어졌다. 다음 주가 장마철이라는데, 혼자 먹기에는 그 비에 더 취할 것만 같아서, 미리 먹었다. 물론 변명인 건 안다. 여튼 오늘 대각선 테이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나와 비슷하게 가게를 들어왔다. 그들은 앉자마자 주문을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휴대폰만 보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럴 거면 왜 만났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휴대폰을 본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꼰대 같은 걸까? 정말 급한 일이 있으면 메시지나 카톡보다는 전화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테이블에 휴대폰을 꺼내둘 수 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앞에 두고 휴대폰을 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없다. 추측하고 싶지 않지만, 이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이 일을 당해봐서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 친한 사이여서 함께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오래 전 알던 사람은 나를 앞에 두고 1시간 내내 남자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었다.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친구와 두어번 정도 더 만났고,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자 더이상 직접 만남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도움이 서로 필요하거나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카톡으로만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급하게 카톡할 일이 있다면, 예를 들어 정말 중요한 연락이라던가, 빠르게 답장을 해줘야하는 사람이라던가... 그럴 경우 미리 양해를 구하고 보낸다면 괜찮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짐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저 시간을 흘러가게 둬버린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조차도 그렇다. 작년 제주도 한 서점의 책방지기는 몽테뉴 책을 건넸다. 오래 전 배웠던 그리스인의 시간 구분이 적힌 책이었다. 짧게 말하면, 그리스인들은 주어진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이다. 때문에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도 각자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시간이 달라진다. 그 부분을 다 읽고, 책방지기는 물었다. "당신의 카이로스는 어떤 가요?"


다시 돌아와, 오늘 봤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함께 하며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활용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때문에 가끔 저렇게 소중한 사람을 물리적으로 앞에 앉혀놓고 휴대폰만 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처럼 크로노스 안에서 카이로스를 잘 보내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행동은 사치다. 


만날 때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며,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소중하다'는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둘의 카이로스가 짧은 순간이라도 일치할 때,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오늘 막걸리와 전은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인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한히 흘러갈 것만 같은 시간 속에 내 시간은 유한하다. 오늘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시간을 좀 더 소중히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고, 이 다짐이 오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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