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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대학원 입시(1)

대학원 입학의 가장 큰 산, 지도교수님 컨택하기

by Hee

박사과정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지도교수님을 찾는 것이다. 어떤 분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실지 찾고, 해당 교수님에게 연락해서 나를 지도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왜 필요하지?


주변에서 '먼저 지도교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박사과정에서 지도교수님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할 때는 정말 그런 것인지, 왜 그런것인지 의문을 갖는 고약한 성격이 있다.


하지만 학부 때나 대학원 때 지도교수님과 유의미한 접점이 없었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가끔 진로상담을 하거나 추천서를 받을 때 빼고는 적극적으로 찾아뵙지 못한 나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학부나 대학원 생활에서 지도교수님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일단 지도교수님이 왜 필요한지 알아야 어떤 분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실지도 결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다소 쌩뚱맞은 의문이 들 땐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좋다. 즉, 박사과정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박사과정이 무엇이길래 지도교수님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 나무 위키에서는 박사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스스로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를 발굴하거나, 여태껏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의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학식을 갖추었다고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학위.

다소 무시무시한 정의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의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준의 학식이라니. 이 정의에 따르면 학사, 석사는 이미 알려진 문제, 그리고 해결책이 제시된 문제를 배우지만 박사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이슈를 던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해야 한다. 이를 문서화한 것이 논문이다. 논문을 써야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과정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서울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의 경우에는 2년안에 졸업하는 것을 전제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다. 2년 안에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쉬울리 없다. 그래서 지도교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교수님은 연구만 전문적으로 몇 십년을 해오신 분이다. 뛰어난 작곡가들이 미발표곡을 수백곡 가지고 있듯이 교수님들도 아직 연구에 착수하지는 못했지만 연구해 볼만한 주제를 여럿 머릿속에 갖고 계신다. 나는 교수님을 통해 연구 주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교수님들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므로, 교수님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연구 주제를 찾거나 발전시킬 수도 있다.


지도교수님 컨택하기


주변에 박사과정 중인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학부나 석사 때의 지도교수님 또는 한 번쯤 수업을 들은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학사는 고려대, 석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했고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하기를 희망했으니 연락을 드릴 만한 교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막막했던 차에 누군가 모르는 교수님에게도 메일 드려서 지도교수님이 되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얘기해줬다. 하지만 매우 바쁘신 교수님들이 알지도 못하는 학생으로부터 지도교수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특히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은 이런 저런 요청을 매우 많이 받기 때문에 메일을 보내도 회신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두렵고 걱정되긴 했으나 이럴 땐 일단 저지르고 보는 나의 성격이 큰 도움이 된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내가 희망하는 전공을 가르치시는 교수님들의 이력을 살펴보고 연구하신 주제들도 살펴봤다. 가장 나와 맞다는 느낌이 드는 교수님께 냅다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전공을 희망하는지, 교수님을 왜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싶은지에 대해서 간략히만 썼다. 바쁘신 분들에게는 요점만 간단히 전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4년 2월에 처음 어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는데(25년 3월 입학 희망), 두 달을 기다렸지만 회신이 오지 않았다. 역시 이런 방법으로는 힘든거구나하고 다소 낙담했다. 그러나 한 번 시도해보고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교수님들 프로필을 살펴보고, 메일 드렸던 교수님을 제외하고 이력이 훌륭하신 교수님을 찾아 메일을 보냈다. 이때가 24년 4월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무려 한달 여간 메일함 체크를 하지 않았다. 업무 이메일이 2개나 있기 때문에 개인 이메일을 들여다 볼 틈이 없기도 했고, 답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5월 어느 날 날씨가 좋아서 친구랑 등산을 갔다가 내년에 박사과정에 가고 싶은데 지도교수님을 찾는게 쉽지 않다는 얘기를 했다. 얘기를 하면서 생각난 김에 메일함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세상에, 교수님께서 메일 받으신 후 10일 후에 답장을 보내셨음을 확인했다.


내용은 왜 서울대에 오고 싶은지, 왜 본인을 지도교수로 희망하는지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완전 나는 망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쁘신 교수님도 10일만에 답장을 주셨는데, 요청을 드린 내가 1달 넘게 답장을 안 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후회해봤자 어쩌겠는가. 사정이 있어 답장을 못드렸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나는 이런 주제로 연구를 하고 싶고 그렇기 떄문에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내용으로 회신을 드렸다. 답장을 드리고 나서는 매일 메일함을 체크했다. 정말 조마조마했다. 내가 교수님이라면 이런 학생을 지도학생으로 받지 않으려고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1달여 가까이 답장이 오지 않았다. 역시 엎지러진 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동 추천 뉴스에 교수님의 좋은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떴다. 아마도 내가 교수님의 이름을 검색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럴 땐 또 알고리즘이 큰 도움이 된다. 교수님께 다시 한번 이메일을 보냈다. 좋은 소식 정말 축하드린다고, 많이 바쁘실 것 같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말이다. 내심은 괜찮지 않았지만 내 나름의 소심한 밀당이었다.


그런데 소심한 밀당이 통했던 것일까, 다음 날 교수님께서 답장을 주셨다.

너무 기뻤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아이처럼 기쁜 마음이 들어 혼자 방 안을 방방 뛰어다녔다. 단언컨대 2024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교수님께 너무 감사했다. 일면식도 없는, 거기다 메일 회신을 1달 넘게 지체한 학생을 흔쾌히 받아주신다니.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교수님 컨택이라는 큰 산을 넘게 되었다. 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저지르기는 잘하지만 세심하게 챙기질 못한다. 단점은 입학을 하면 반드시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꼼꼼하게 챙기고 끝까지 집중해서 무사히 졸업할 것이다. 지도교수님이 ‘쟤 내가 잘 뽑았지’라고 뿌듯함을 느끼시게 하고 싶다.


하지만 장점은 빛을 발휘했다. 나는 일단 결심하면 망설이지 않는다. 바로 실행에 착수하고 될 때까지 밀어붙인다. 어떨 땐 대책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성격 때문에 인생의 많은 큰 산을 넘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Just do it!


Just do it을 부르짖는 오이(a.k.a 베네딕트 컴버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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