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라니, 진부한 표현을 빌려올 수 밖에 없어 아쉽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나는 변호사시험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인 2018년 4월부터 일을 시작해서 한 번도 길게 쉰적 없이 계속해서 일을 해왔다.
그러다 작년, 불현듯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서류작성-면접-필기시험을 거쳐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였다.
주변 지인들에게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하니 다들 교수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박사과정 진학이 일반적으로는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결심한 건 어느 날 불현듯 하긴 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중-고-대-로스쿨까지 학교만 도합 19년을 다녔고 변호사 일도 만으로 7년 넘게 쉼없이 했다. 변호사 일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공부해야 하는 성격이 있음을 고려하면 26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진짜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스스로 공부에 대한 만족이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초, 중, 고 시절의 공부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의 성격을 지닌 공부이다. 수능이라는 1회의 시험을 잘 봐 정시에 합격하든, 수 없이 많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예비 시험을 치르고 훌륭한 내신 성적을 거두어 수시로 합격하든 12년의 초, 중, 고 과정은 대학 입학을 위하여 정해진 과목과 정해진 교과서를 충실히 공부해야 한다.
대학은 다를까 기대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대학이라고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채워야 하는 전공 학점이 있었고, 교양 수업도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했다. 로스쿨에 진학하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해서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공부에 지치는 바람에 중간에 교환학생이라는 외도를 잠시 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바람직해 보이는’ 교과과정을 따라가기 급급했다. 로스쿨은 오죽하겠는가.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수강과목들이 짜여져 있었고 더 많은 시험을 치르고 과제를 해내야만 했다.
그래도 아주 불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던 건 내가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공부를 좋아한다. 나는 개념과 원리를 배우고 익혀서 문제를 맞췄을 때 희열을 느낀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도 아주 잘하고 익숙하다.
다만, 살면서 한번쯤은, 좋아하는 공부를, 남이 해야한다고 정한 분야가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전술했듯, 변호사 일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그 공부는 고객의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그 때 그 때 1회성 세미나도 듣고, 새로 나온 판례도 공부하고, 장기로 진행되는 연수과정도 수료했지만 단발성 공부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나의 밑천이 늘어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채우고 단단하게 내것으로 만들었다가 꺼내야 하는데, 채우자마자 꺼내야 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그 동안의 공부를 통해 채워 놓았던 곳간을 계속해서 비우기만 하는 느낌이었고, 이런 단발성 공부로는 모멘텀을 만들거나 내가 정말 성장했다고 느끼게하는 공부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나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면 내가 생각지 못한 기회의 장이 열릴 수 있음을 체득했다.
회사 생활만 하더라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카데믹 쪽에서도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회사 생활만 할 경우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기회와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초심을 잃지 않고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서라도, 왜 처음에 내가 그렇게 강하게 박사과정 진학을 희망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나의 고군분투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내 글이 어딘가에서 나처럼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고,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실용적인 팁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리고 브런치 또한 대학원 진학과 마찬가지로 마찬가지로 어떤 기회가 열릴지 모르는 새로운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