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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7년만에 로스쿨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다

by Hee

나는 학비가 비싼 학교들만 다녔다.


학부는 고려대를 다녔고 등록금은 학기당 500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신입생때 신나게 놀다가 처참해진 학점을 끌어올리느라 1학기를 더 다녀서 9학기 학비를 냈다. 로스쿨은 이화여대인데 로스쿨 등록금은 더 비싸서 학기당 800만원이 넘었다.


친오빠가 사립 의대를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은 아들, 딸의 학비를 대느라 말 그대로 등골이 휘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인식을 갖지도 못했다. 그저 좋은 학교를 다니는 자식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학비를 내주시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돈을 벌고 보니 공무원이셨던 부모님께서 학기당 족히 몇천만원이 넘는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을지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자녀 학자금 대출이 아니었다면 오빠와 나는 계속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을 거다.


철없던 나는 로스쿨 진학 후 1년을 휴학하고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유학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안되지만 생활비는 필요했다. 그 때 거의 처음으로 엄마가 부담스러우니 유학보다는 빨리 로스쿨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다. 부모님께서 그 동안 힘든 내색을 안 하시기도 했고,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놀라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았는데 유학을 포기하라는 말이냐고 대들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유학가서 아르바이트를 해 직접 생활비를 버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긴 했지만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내 학비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계시단걸 깨달았다. 내 꿈만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봐오다가 그런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죄송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유학을 다녀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로스쿨 3학년 올라가는 시점에 결혼을 했다. 남편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 관련해서는 부모님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았다. 부모님은 학생 때 결혼하는 걸 염려하시면서도 동시에 정말 홀가분해 하셨다. 당신들 표현에 따르면 날라다닐 것 같다고 하셨다. ㅋㅋ


결혼을 했으니 부모님께는 더 이상 학비를 지원받지 않기로 했다(사실 당연한 얘기이고 대단한 결심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도 내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남은 로스쿨 학비를 내겠다고 고집했다. 결혼에 보탬이 못된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더 이상 내 학비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이자를 내야되는데 뭐 하러 그러냐고 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려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학기분 학비를 대출받았다. 당시 학자금대출 이율은 2.5%였고(찾아보니 점점 인하되어 2021년부터는 4년째 1.7%로 동결), 졸업한 2018년부터 몇 년에 걸쳐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7년이 흘러 박사과정 입학을 앞둔 올해 2월 4일 드디어 학자금 대출을 완제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대출 받을 땐 부담없이 쉽게 빌렸는데, 갚을 땐 어찌나 이율도 높아보이고 갚아나갈 돈이 많아보이던지 정말 징글징글했다.

상환율 100% 달성


올해 3월부터 박사과정에 입학할 걸 계산하고 상환기간을 정한 건 아닌데, 또 우연히 로스쿨 학자금 대출완제와 동시에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언제쯤 학자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가 싶긴 하지만, 이번 만큼은 아무에게도 대출을 받지 않고 학비를 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는 정말 기쁘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쇼츠를 하나 봤다. 행복의 비결에 대해 외국인들이 토론하는 내용이었는데 한 사람의 발언이 마음을 쿵 울렸다. 그 사람은 행복의 비결이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아주 잠깐만 시간을 내서 생각해보라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몇년 전의 내가 얼마나 원했을지, 지금의 내가 그 때에 비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를. 진심으로 그것들을 인지(recognize)해보라고 말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완제를 축하하고 감사하다면서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의 '어제보다 밝은 오늘처럼, 오늘보다 더욱 빛날 내일'을 기원한다고 했다. 미래가 어떨진 잘 모르겠지만, 나의 오늘은 어제보다 밝다. 7년 전 로스쿨 학생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내 돈으로 학비를 낼 수 있다. 진심으로 이것들을 생각하고, 인지해야겠다. 그래야만 오늘보다 더욱 빛날 내일도 찾아올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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