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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박사과정 합격 발표

by Hee

박사과정 입시의 시작인 교수님 컨택이 있었던 4월 초부터 7개월이 훌쩍 지나 합격 발표일이 다가오자 점점 긴장이 되었다. 교수님 컨택, TEPS 시험 응시, 서류 준비, 면접, 필기시험까지 일하면서 준비하기에는 지난하고 고난했던 입시가 마무리 된 건 기뻤지만 이제 그 준비의 결과를 통보 받을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지원한 서울대학교 법학과 2025년 전기 입학 박사과정은 총 14명을 선발한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쟁률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강 추론해볼 수는 있다. 모든 박사과정 지원자는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나의 수험번호는 400XX였고, 필기시험 고사장 안내를 보니 400XX에 해당하는 수험번호는 40001부터 40081까지 총 81명이므로 단순 계산하면 경쟁률은 최대 5.78이다(81÷14).


최대 5.78이라고 하는 이유는, 400XX 수험번호는 고사장이 2군데로 나뉘어졌는데 내가 필기시험을 치른 고사장에서는 22명, 다른 고사장에서는 59명이 각 시험을 치렀고 만약 59명이 석사과정 지원자라고 한다면(석, 박사가 같은 날 필기시험을 치렀다) 박사과정 지원자는 22명이므로 경쟁률은 1.57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400XX가 아닌 200XX 수험번호가 58명이 있기 때문에, 200XX 수험번호가 석사과정 지원자 수험번호가 아닐까 추측한다.)


경쟁률이 1.57이든 5.78이든 지원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수준으로 긴장이 된다. 내가 합격자에 들지 못하면 경쟁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긴장하지 않은 척 했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일하면서 힘들게 입시를 준비했는데 그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박사과정 지원했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했는데 떨어지면 창피해서 어떡하지(이놈의 입)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박사과정 지원하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실 박사과정 안 해도 아무 상관 없을 수도 있는데 뭐 하러 스스로를 스트레스의 구렁으로 몰아 넣었을까 싶었다.


하필 또 합격 발표일인 2024. 11. 21.은 다음날 제주도에서 재판이 있어서 퇴근하자마자 비행기를 타러 가야 했다. 차라리 정신없이 보내는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일이 조금 꼬이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러 짐을 싸고 바로 공항에 가려면 택시 잡을 정신도 없을까봐 미리 택시 예약을 해두었는데, 기사님이 전화가 오셔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하시다가 차단기에 접촉사고가 나셨다는 거다. 상황을 확인하러 뛰어가면서 내비게이션을 검색을 해보니 길은 온통 빨간색인데, 혹시 몰라 다른 택시를 호출하려고 하니 잡히는 택시도 없었다.


다행히 택시는 범퍼가 우그러졌을 뿐 주행에는 문제가 없어 출발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이게 나쁜 징조가 아닌가 싶어 눈 앞이 캄캄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림픽 대로는 늘 그렇듯 꽉 막히고, 합격자 발표 시간까지 다가오자 극도로 초조해졌다. 원래 인생은 혼자 헤쳐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입시야 말로 오로지 나 혼자 치러내야 하는 일이고 특히 합격 발표 직전의 긴장감을 견뎌내는 것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뭐 그리 긴장할 일이냐고 가벼이 여길 수도 있는 일이라 나는 꼭 나만 아는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다.


발표 시간이 되어 결과 발표 창에 수험번호를 입력하는데 긴장이 되어 살짝 숨이 찼다. 수험번호 입력 후 두 눈을 감았다가 한 쪽눈만 살짝 떴다. 결과가 불합격이라면 도저히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찌푸린 눈으로 언뜻 보니 '합격'이라고 써있는 것 같았다. 정말 합격이라고? 그제서야 겨우 두 눈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자 발표 조회 창

정말 합격이었다. 나는 무교임에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한 고비를 넘었구나하는 안도감도 컸다. 박사과정 입시까지 했으니 이제 나에게 더 이상의 입시는 없을 예정이지만 전혀 아쉽지가 않다. 인생은 삼세판이고 학부, 로스쿨, 박사까지 3번 입시를 했으니 할만큼 했다. 수고했다 나 자신!




돌아보니 역시 도전하기로 용기를 내는 것이 입시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막상 도전하고 나서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작게는 TEPS시험 점수부터 해서,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생긴 소중한 인맥들도 있다. 그러나 진짜 성취는 나의 컴포트 존(comport zone)에서 벗어나보기로 결심했던 나의 마음가짐 영역에 있다고 믿는다. 언제나 내면에서 성취한 것들이 우리 밖의 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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