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 - 4
이번엔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돈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모든 산업이 돈으로 평가된다. 봉사단체가 아니라면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이윤은 기업 구성원의 가족이 살 수 있는 기초 자금이 된다. 이래도 돈 이야기가 속물적인가?
나는 누누이 디자이너는 장사꾼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생업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은 생각보다 큰돈을 벌지 못한다. 디자인판의 TOP에 계시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업무량이나 생산성 대비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돈을 이것밖에 못 벌까?
우리나라의 디자인 분야 산업 규모는 연 15.6조 정도이다.(2015년 기준, 산업디자인 통계조사) 시각, 제품, 산업, 인테리어, 뉴미디어 등 디자인을 활용하고 디자인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총매출 규모가 15조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디자인산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30만여 명이다.(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편 참고)
단순 계산을 해보자. 15조 원 나누기 30만 명은? 5천만 원.
30만 명이 연봉 5천만 원씩 나눠가질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 경쟁체제인 우리의 현실 상, 서로 만원 한 장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해마다 디자인산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의 규모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나는 15년 전 첫 회사에서 월급으로 100만 원을 받았다. 그때 신입사원의 첫 월급은 80~150만 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한 동기들도 대부분 그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2개월 만에 옮긴 2번째 회사에서는 연봉으로 2,200만 원에 계약했고, 3번째 회사에서는 2,400만 원으로 계약했다. 당시 1~2년 차 연봉 치고 작은 연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디자이너들의 연봉은 얼마 정도 일까?
잡코리아 기준 디자인 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평균 연봉은 3000만 원 선이다. 신입 디자이너의 연봉 평균은 2천만 원을 넘기 힘들다. 15년 전에 새우깡의 가격이 5백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200원이다. 물가가 2배가 넘게 상승하는 동안 디자이너의 연봉은 그대로다. 왜 이럴까?
산업의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는 꾸준히 늘고 있다. 출혈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디자인의 단가는 연일 내려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기업의 이윤은 줄어든다. 이윤이 줄어든 만큼 더 많은 일을 수주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실제로 내가 회사에 다니던 시절 제작했던 발표자료의 제작비는 3천만 원~5천만 원 선이었다. 그 당시에는 경쟁업체가 별로 없어서 수요는 많았고, 공급이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의 단가는 자연스럽게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동일한 분야를 디자인하는 회사가 굉장히 많아졌고, 디자인 단가는 10분의 1 정도로 낮아졌다.
디자이너의 연봉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회사나 산업이 함께 성장을 해야 한다. 회사만 성장을 하면 경쟁회사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산업만 성장을 할 경우에는 신규 진입자가 너무 많아진다. 아울러 고용주의 생각도 바뀌어야 상생의 경제가 완성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연봉은 회사의 매출과 순익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매출이 안 나오는데 디자이너의 연봉을 많이 주면 회사는 없어진다. 사장님들은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영업을 하고 직원들을 독려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납품한다. 결과물이 좋으면 재구매가 이어지고, 그만큼 이윤이 높아지고 회사는 지속된다.
나는 2005년에 독립해 1인 디자인 기업가가 되었다. 회사에서 했던 업무를 그대로 가지고 나와 나만의 회사를 만들었고 내가 만든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몰랐던 매출액 대비 순이익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당시의 사장님은 얼마를 벌었을지가 예상이 되었다.
순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제외한 순수 이익을 말한다. 비용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 복리후생비 등이 있다. 회사가 법인이라면 사장님도 급여를 책정하여 일정 금액의 급여를 받으며 남은 금액은 사내유보금으로 적립되고 개인사업자라면 순익이 사장님의 월급이 된다. 적립된 사내 유보금은 연말 정산 후 주주에게 비율대로 배분된다.
A회사의 순익 분석
- 월 매출 3,000만 원일 경우
1. 직원 급여 : 250만 원 x 2 명 = 500만 원 / 300만 원 x 2명 = 600만 원 - 합계 1,100만 원
2. 사무실 임대료 : 250만 원
3. 복리후생비 : 1인당 20만 원(식대+부식) X 5명 = 100만 원
4. 사무실 유지비 : 150만 원(통신비, 전기·수도료, 관리비, 세무 대행료 등)
비용 합계 = 1,500만 원
※ 여기에 업종에 따라 차량 유지비나 접대비, 회식비 등이 추가되기도 하고, 세금으로 나갈 수 있는 비용을 일정 금액 적립해 두기도 한다. 또, 야근이나 특근을 했을 경우 각종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예시로 든 회사의 경우 사장님의 월급은 500만 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다. 직원이 사장님 포함 5명 회사에서 월 매출 3천만 원을 만들기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 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예시임을 밝혀둔다. 직원의 임금도 실제보다 높게 책정했다. 계산하고 보면 사장님도 그리 큰돈을 버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직원 없이 1인 디자인 기업일 경우 월 매출이 3천만 원 정도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직원을 두고 일하는 경우에는 직원이나 사장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국내 디자인산업의 맹점이기도 하다.
예시에서 봤을 때 가장 줄이기 쉬운 비용이 무엇일까? 비용을 줄여야 순익이 올라가는데, 가장 쉽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가장 큰돈이 나가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대부분 급여에 칼을 댄다. 개개인의 급여를 줄이든지, 직원 한 명을 해고하든지. 전자라면 그만큼 디자이너의 사기가 낮아져 생산성도 줄어든다. 디자이너도 사람이니까 당연하다. 후자라면 디자이너의 노동강도가 높아져 업무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이 또한 악순환이다.
요즘 디자인업계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힘들다.'이다. 전래 없는 불경기가 지속되어서 일 수 도 있겠지만, 저성장과 비용절감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상 힘든 시기는 지속될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디자이너들에게 사장이 되라고 말한다. 여력이 된다면 직원을 거느린 ceo가 될 수도 있겠지만 독립해서 1인 디자인 기업이 되면 사장이 되는 것이다. 회사는 디자이너를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직접 사장이 되어 나의 미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소규모 디자인 부띠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도 비용절감과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을 수시로 진행한다. 평생을 디자이너로 일해왔고, 디자이너로 정년까지 일하고 싶어도 40세만 넘어가도 눈치를 보며 회사생활을 해야 한다. 순환근무라는 명목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타 부서로 발령을 내기도 한다.
내가 사장이 되면 적어도 내가 일한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처럼 소모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팀장님, 사장님을 거처 발주처 담당자에게 가는 컨펌 프로세스가 발주처 담당자에게로 일원화되어 좀 더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이는 곧 생산성과 연결이 되며 작업시간과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평생을 디자이너로 돈 벌고 싶은가?
독립해서 사장이 되자.
어차피 사장님이나 직원이나 큰돈 만질 수 있는 직업군은 아니니, 맘이라도 편하게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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