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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호 Aug 11. 2017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2.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 - 1

이번에는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필드에서 만난 1인 디자인 기업가 중에는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데뷔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대부분 장시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자리를 잡는데, 그때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이 매우 아까울 수밖에 없다. 나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오랫동안 하고 독립했다. 마지막 회사 생활 1년은 독립 후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체험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독립하기 위해 재입사를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은 힘들다.

앞으로 발행될 몇 가지의 아티클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한 후 독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회사를 나와 1인 디자인 기업가가 되려면 퇴사를 해야 하는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사직서 내고 다음날부터 출근 안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아니다. 내가 독립해 1인 디자인 기업가가 되려고 맘을 먹었다면, 이 퇴사가 마지막 퇴사가 될 텐데, 그냥 사직서만 던지고 나갈 것인가?

퇴사엔 퇴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바로 퇴사력. 퇴사력은 사직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치가, 내 마인드가 독립에 적합하게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 퇴사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미션을 수행해야 할까?




첫 번째, 혼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맡아보자


디자인 회사는 대부분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진행하고 완료하고 납품해서 돈을 번다. A라는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을 때 회사는 A 프로젝트에 맞는 팀을 구성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팀에는 팀장급의 디자이너 혹은 기획자가 PM을 맡아 전체 프로젝트를 메니지먼트하고 팀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업무로 나눠 배분한다. 팀원들은 할당받은 분량의 디자인을 진행해 다시 팀장에게 넘기고, 팀장은 이를 취합해 납품한다. 이런 프로세스로 대부분의 업무가 처리된다. 정말 간단한 디자인이라면 디자이너 개인에게 일이 맡겨지겠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면 대부분 팀별로 할당된다.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는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한다.(물론 협업이라는 좋은 제도도 있지만 말이다.)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자마자 혼자 일을 처리하려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퇴사하기 전에 회사로 들어오는 일을 혼자 처리해보자. 회사를 내 사업의  테스트 필드로 활용해 보는 것이다.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프로젝트 하나를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해보았다. 디자인 기획부터 서식 디자인, 본문 구성, 카피라이팅 등의 디자인 업무부터 고객 미팅, 스토리보드작성, 시연 등 기획이나 영업팀에서 할 일까지 다 해봤다. 어차피 퇴사하고 나면 나 혼자 할 일들이니 공부한다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했다. 항상 팀으로 움직이며 분업을 해왔던 터라, 처음에는 생각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작업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았지만, 오로지 내 아이디어로만 디자인 하고, 팀원 간의 이견으로 인한 시간낭비도 없어서 총 작업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과물의 디자인적 통일성도 월등히 높았고, 클라이언트 만족도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 일하는 연습은 단순히 경험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회사에 의뢰되는 일의 프로세스에 대한 학습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실제 디자인은 전체 업무의 50% 정도 밖에 안된다. 나머지 50%는 디자인 외적으로 이루어지는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들을 먼저 체험해 보면서 추후 독립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한 후 자신감을 얻었다. 혼자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


단, 이 첫 번째 미션은 조건이 있다. 반드시 혼자 할 수 있을만한 깜냥이 될 때 도전해야 한다. 무턱대고 혼자 했다가 감당을 못했을 경우 불명예스럽게 퇴사당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사내 강의를 진행해 보자.


강의는 오랜 공부의 산물이다. 강의를 준비하다 보면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강의안을 만들다 보면 분명히 막히는 부분이 생기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게 된다. 나도 퇴사 전에 사내 강의를 2번 정도 진행했는데, 파워포인트에 대한 강의와 포토샵을 파워포인트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했다. 강의안을 준비하며 파워포인트에 대해 더 면밀히 공부할 수 있었고, 포토샵도 단순히 사진을 수정하는 용도가 아닌 편집디자인과 연계하여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내 강의의 좋은 점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나만큼 강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점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몇 년간 얼굴 보며 함께 일해온 사이인데, 뭐 어떠랴. 강의를 준비하면서 잘 안 풀렸던 부분들은 동료들과 토론을 하며 풀어 나갈 수도 있다.


프레젠테이션 디자이너로 취직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난 파워포인트를 다룰 줄 몰랐었다. 이때, 사내 강의를 통해 파워포인트의 핵심기능만 딱 한 시간 동안 배웠다.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이너에게 알려주니,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위한 기능들만 간추려서 배울 수 있었고, 쓸데없는 기능들을 배우기 위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사내 강의를 준비할 때도 청중들이 디자이너였으니 일반적인 디자인보다는 고급 디자인 스킬과 트렌드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야만 했고, 그 또한 좋은 경험이 되었다. 강의를 진행하며 정리했던 여러 스킬들은 훗날 책 집필을 하며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뭐가 되었든, 정리해놓고 모아두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된다.


요즘은 회사에서 자신의 업무 외에도 복지 차원에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회사에서 내가 독립해서 써먹을 만한 강의 콘텐츠들을 얼마든지 테스트해보고 나올 수 있다.




세 번째, 월급 이외의 수익을 만들어보자.


과외 수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갖고 있는 콘텐츠가 시장에서 통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그 수익이 많든 적든 수익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수익을 발생시키려면 일단 일을 의뢰받는 것이 먼저인데, 나는 정말 특이한 경험으로 과외 수익을 만들었다.


퇴사를 몇 주 앞둔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는데,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고, 나만 혼자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전화가 올리가 없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요, 혹시 PT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을까요?"


나는 회사 매뉴얼대로 제작비용과 제작기간을 안내했으나, 고객이 예상하던 금액을 훨씬 넘어선 비용이어서 인지 금방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5분 정도 흘렀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럼 혹시 다른 프리랜서에게 의뢰한다면 더 저렴하게도 가능할까요?"


그 당시 프리랜서들이 어느 정도를 받고 일하는지 잘 몰라서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하고 끊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프리랜서를 소개하여달란다. 일단 알아보겠다고 말한 후 전화번호를 받아놓고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소용돌이쳤고, 곧 결론을 내렸다.


'나를 소개해 주자.'


그렇게 그 고객에게 (곧 프리랜서가 될) 나를 소개해 주었고, 주말을 이용해 디자인을 해서 납품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혼자서 일하는 연습이 덜 되어 있던 터라 적잖이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의 첫 과외 수익 150만 원이 만들어졌다. 당시 월급이 200만 원 남짓이었으니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다 직업윤리에 배치되는 일이었긴 하지만, 첫 과외 수익을 만들어 보며 퇴사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았다.


퇴사를 독려하는 책들에서 기본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있다.

'퇴사 이전에 다른 수익을 만들고, 다른 수익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과 같아지거나 많아졌을 때 독립하라.'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1인 디자인 기업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과외 수익을 만드는 데는 꼭 이런 우연이 있어야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소셜미디어와 지식 공유 서비스 등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내가 갖고 있는 아이템의 시장성을 판단해 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내가 하는 디자인을 알리고, 의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 주변 사람들은 소개를 시켜줄 것이다. 보험회사에 처음 입사해도 가족 영업, 지인 영업이라는 것을 한다. 내가 일을 찾고 있다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고 먼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면 작은 일부터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나의 아이템에 대한 테스트가 마무리되면 퇴사력이 +10 정도 상승해 있을 것이다.




지난 글 보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Part1-1.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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