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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 Jan 26. 2020

90년대생은 오고 있는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지 2년,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들과 놀이터와 운동장 흙먼지 속에서 함께 뒹굴기도 했지만, 동시에 친구네 집에 모여 온라인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바람의 나라를 함께 하며 우정을 다졌던 세대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는 집 안이 그리 유복하지 않아도 폴더 폰 하나쯤은 공짜폰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땐 몇 달을 졸라 아이팟 터치를 구매하며 애정 했던 4gb짜리 Cowon D2를 방 한편에 처박아둔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학에 와선 대학 간 기념으로 어머니가 처음 사주셨던 갤럭시 S를 통해 스마트폰 세계에 들어왔고, 머지않아 아이폰 4S로 갈아탄 뒤 지금까지도 갤럭시는 쓰지 않고 있다.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문자메시지와 싸이월드가 아닌,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으로 세상을 읽었다. 단톡 방에서 모임을 잡고, 페이스북으로 친구들의 일상을 훔쳐볼 수 있었다. '우와 신기하다'라고 생각하며 재미 삼아 써봤던 앱 서비스들이 이제는 글로벌로 뻗어나갔거나 유니콘이 되어 신화를 쓰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나'로 대변되는 우리 90년대생의 세대는 말 그대로 인터넷과 기술의 성장과 그 맥을 같이 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우리의 삶에 깊게 들어와 우리의 생활 방식과 행동 양식을 모두 바꿔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고 우리의 윗 세대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거나 소외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재 혹은 '꼰대'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밴드. 평등한 기술 환경 속에 누구도 정해놓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경계가, 어쩌면 우리 같이 '도도한' 90년 대생들과 기성세대를 구분하는 미묘하고도 확실한 경계였으리라.


    하지만 곧 그 도도한 콧대는 현실 앞에 무참히 짓밟힌다. 토익과 토플은 기본, 어학연수와 다양한 자격증, 인턴 경험들을 원기옥으로 모아 자소서에 박아 넣은 뒤 겨우 면접 기회를 얻었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그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 우리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은근히 소외하고 멸시했던 '그 꼰대' 아저씨들이었으니. 여기서 우리의 갈등은 시작된다. '내가 어떻게 기를 쓰고 대학에 다녔는데',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대기업이었잖아', '그래도 연봉 많이 받으려면 대기업 가야지' 등 갖은 이유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이 선택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이 계속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도무지 저 꼰대 아저씨들의 비위를 맞추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죽은척하며 회사에 '뼈를 묻을' 자신이.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어쩌랴,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을. 아니, 용기가 없는 것을.



< 90년대생이 온다, 임홍택 지음 >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느라 나 자신을 지우고 국가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세대.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자립심, 야망, 행복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버림받은 세대, 기성세대. 201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든 책, [90년대생이 온다]는 본질적으로 기성세대의 두려움을 이야기 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기에 90년 대생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할 수 없으나, 젊고 잃을 것 없는 두려운 세대이다. 또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잡지 못할 그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부러운 세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90년대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90년대생은 기성세대가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 우리가 그들은 하지 못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잘 모른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익숙하고, 인터넷 쇼핑과 비대면 앱 서비스가 편한 우리의 생활 방식이, 이미 변화의 한가운데 있고 어쩌면 그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잘 모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친구들은 대한민국 어딘가에선 새로운 IT 서비스와 비즈니스로 Next 유니콘이 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한다, 눈 앞의 금광을 마주하고도 스스로 노예가 되려 하고 있진 않은지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깊게 되물어야만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어떤 내일을 만들고 있는지를.


90년대생은 오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91년생인 나는 올해 서른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신세대와 젊은 세대로 분류되기 애매한 그런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는 젊지 않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속도로 나는 더 빠르게 나이 먹어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갖게 될 책임과 삶의 무게들이 서서히 나를 잠식하다가 어느새 또 한 명의 기성세대가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 90년 대생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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