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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 Dec 01. 2020

대학의 종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교육을 받는다. 의무교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입시를 잘 준비해서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이 성인이 되기 전 자기 증명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자 결과이다. 7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 갖는 의미가 일종의 합의된 출발선이자 기본 전제임을 내포한다. 


학생들은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을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고, 우린 그냥 대학에 간다

대한민국 교육 과정엔 '왜'라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적과 이유에 대한 그 모든 질문을 '대학에 가면 성공한다'는 명제로 덮어버린 채 오늘도 학생들은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4지선다형 문제를 푼다. 그렇게 대학에 간다. 대게는 성적에 맞춰 자신의 대학과 학과를 고른다. 성적이 어중간한 학생들에겐 자기가 원하는 학과를 선택한다는 건 사치이자 오만이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했다. 그렇게 대학에 오니 또다시 경쟁의 시작이었다. 학점을 잘 따기 위해 수업을 녹음하고, 필기 노트를 사고팔며 그렇게 질문과 방향에 대한 고민 없는 공부는 계속된다. 그렇게 학생들은 졸업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노력을 통해 대학을 졸업해서 남는 건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뿐

일부 돈 있는 상위권 학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 등을 통해 전문직으로 빠지면, 나머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대기업은 사람을 안 뽑고, 중소기업은 월급이 짜거나 근무가 힘들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체면이 안 선다) 그렇게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간다. 지금도 약 20만 명의 젊은이들이 5000명 뽑는 9급 공무원 합격을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고 있다


참 억울하고 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만 가면 성공할 거라는 어른들의 말과 달리, 대학 4년 이후 내게 남은 건 졸업장과 몇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뿐이다. 그렇게 학위를 사고 나면 취업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핑크빛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과라서 죄송한 현실, 왜 대학을 탓하지 않는가?


진리의 상아탑에 오른 자는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다

이쯤 되면 내가 4년 동안 학기 당 몇백만 원을 갖다 바친 대학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며 배운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가치, 경제학과를 다니며 배운 시장의 논리, 생물학과를 다니며 배운 진화의 원리 같은 것들은 졸업 후 내 삶의 생산성을 늘려주지 못했다. 

대학(大學, university, universitas) :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학위를 수여하는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

아차, 졸업하고 생각해보니 대학은 원래 '학문'을 하는 곳이었었다. 대학 평가를 하는 기준도 연구 역량과 우수한 논문을 쓰는 '교수'의 수에 맞춰져 있는 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대학은 양질의 연구를 통해 말 그대로의 학문을 할 사람들이 가야 해던 곳이었던 건 아닐까. 그래, 4년 간 나는 학문을 한 것이다. 근데.. 이게 내가 원했던 것일까?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대학 가면, 아이폰 주는 세상


21세기, 우리는 꼭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

대학이 학문을 하는 기관이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고 있진 않은가. 요즘 같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1년에 10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젊음을 투자해 받는 졸업장이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로 남게 되는 것을까.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데, 1990년대에 마지막 논문을 쓴 저 노교수가 읊조리듯 암송하며 오래된 PPT를 읽는 강의를 들으러 왕복 3시간 걸리는 통학길에 나서야 하는가. 


수 년 전에 찍은 인터넷 강의를, 매년 새로운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며 듣는다


코로나가 드러낸 대학의 민낯 

코로나 사태는 낯 뜨거운 대학의 민낯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철밥통 대학 교수들에게 위엄을 실어주는 강의실 교단이 사라지자, 시대에 뒤쳐진 혹은 실력이 뒤쳐지는 교수들의 밑바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교수들에게 또한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남는다. 


온라인 수업을 너무 잘해버리면, 학생들이 캠퍼스로 안 돌아오지 않을까?


권위로운 캠퍼스의 교단이 사라지면, 교수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미 우리는 Open Course, MOOC 등 세계 최고 대학의 명강의들이 번역되어 언제든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고, 코로나는 그 불편한 현실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촉매제가 된 것뿐이다.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MIT Open Course - 지식은 이제 값이 싸다


배움과 성공을 꼭 대학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진 사회

읽을 수 있는 글이 책 속에 밖에, 책이 모여 있는 도서관에 밖에 없던 시절엔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식의 요람이자, 정보와 콘텐츠의 바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스마트폰 터치 몇 번 만으로 대학 도서관과는 비교도 안될 양질의 정보를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정보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선 직업의 경계는 없어지고 성공의 정도(正道)나 방정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누구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성취와 결과물을 세상에 공유할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세상에서 대학이 갖는 높은 장벽은 한없이 초라 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사람들은 대학 없이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어떤 방향으로든 성공하고 성취할 수 있다. 


성공의 척도에 '학벌'이 낄 수 있는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예정된 대학의 종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상위권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다가, 평화롭게 은퇴하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이 명제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제 이 사회는 더 이상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기회를 잡고 성공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높겠지만, 필요조건에선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식의 값이 너무나 싼 세상에서, 지식만을 파는 대학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그 기능과 실효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대학의 종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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