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바야흐로 미디어 홍수의 시대다. 잠들기 전 라디오 사연에 귀 기울이고, 일요일 밤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개그콘서트를 같이 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누구나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제한 없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이랴,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사라진 무제한적 콘텐츠 소비에도 배가 고픈지, 미디어 플랫폼 회사들은 알고리즘으로 그 중독성을 강화시키고, 숏폼으로 그 주기를 더 짧게 만들며 이동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현대인들의 콘텐츠 소비를 폭주시킨다.
아기가 부모의 말소리를 따라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처럼, 인간은 외부로부터 주입되고 노출되는 정보에 의해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그 생각에 의해 말과 행동이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한다.
요즘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의 깊이가 1년 전, 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최근 내가 나에게 주입하고 나를 노출시킨 정보들이 내 사고를 바꿀 만큼 의미 있거나 깊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배경음처럼 틀어놓고 보게 되는 유튜브 영상들, 홀린 듯 몇 시간째 돌려보는 숏츠와 릴스의 늪 사이에서, 나는 충실한 콘텐츠 ‘소비자’로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영상에 조회수를 +1 추가하며, 의미 없고 영양가 없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흘려보내고 있던 것 같다.
텍스트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영상, 숏폼, 댓글, 카톡… 우리는 늘 말하고, 써내고, 공유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토록 많은 언어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깊이 들을 수 없고, 정작 자신의 생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생각이 너무 쉽게 흘러가는 시대. 나는 그 안에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정제된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내 안의 사유를 붙잡고, 나만의 관점으로 삶을 통과해 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며 살고자 한다. 미디어 속 넘쳐나는 콘텐츠들과 프롬프트 몇 줄만으로 우습게 콘텐츠를 찍어내는 AI의 시대 속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보에 맹목적으로 휩쓸리는 ‘소비자’가 되길 거부하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타인에게 정보와 생각을 주입할 수 있는 힘이 미디어와 언론, 권위 속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쥘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로 머무르고 싶지 않다. 무수한 목소리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를 꺼내기 위해, 나는 글을 쓰며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