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론 이해할 수 없는 '나' 이해하기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한 문장은 인간을 특별한 동물로 만들어줬다. 생각하는 존재. 스스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아는 존재. 그것이 곧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는 존재’였을까? 아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무지성 존재로 살았다. 먹고, 자고, 싸우며, 본능에 따라 움직이던 존재였다. 그 긴 진화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나는 생각한다’는 문장을 갖게 된 것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이 ‘생각’에 너무 집착하며 스스로가 여전히 동물임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의 뇌는 두 개로 나뉜다. 좌뇌와 우뇌.
좌뇌는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한다. 우뇌는 감각하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흔히들 좌뇌는 이성, 우뇌는 감성이라고 단순화해서 설명한다.
크리스 나이바우어는 책 『자네, 좌네에게 속았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라고 느끼는 그 느낌조차,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환영이다.”
즉, 우리가 끊임없이 붙잡고 있는 ‘나’라는 감각은 좌뇌가 창조해낸 허구일 뿐이다. 내가 ‘나’를 찾아 헤매지만, 그 ‘나’는 결국 좌뇌가 만든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나’는 누구일까?
그 답은 우뇌에 있다.
우뇌는 흔히 감정만 담당한다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감각의 총체를 다룬다.
‘슬프다’, ‘기쁘다’라는 감정조차도, 사실은 우뇌가 먼저 감각을 느끼고 좌뇌가 그것을 언어로 해석한 결과다.우뇌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너무도 조용히, 그리고 너무도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우뇌야말로 우리의 비선실세 같은 존재 아닐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을 가진 사람. 어떻게든 몸으로 해내버리는 운동신경의 달인. 생각보다 먼저 손이, 몸이 움직여 창조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들. 이들은 좌뇌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직, 우뇌의 세계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의 문제를 좌뇌로만 풀려고 한다.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머리를 굴리고, 고민하고, 다시 생각한다. 하지만 좌뇌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좌뇌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우뇌라는 비선 실세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명상을 하며 감각에 집중하고, 생각을 비우고 달리며 몸의 흐름을 느끼고, 좋은 음악과 좋은 음식으로 내 몸을 일깨우는 것. 그런 단순한 행위들이 사실은 진짜 ‘나’를 만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우리 역사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성’이라는 잣대 하나로 자신을 재단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늘 두 개의 ‘나’와 함께 살아왔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