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김부장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

by 러닝커브

처음엔 그저 60-70년대생 꼰대 부장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경제 호황기에 대기업에 취직해서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다 보니 약간의 빚을 져서 서울에 아파트를 샀고, 아이들 적당히 사교육 시켜서 인서울 대학 보낸. 그래서 순탄했던 자신의 삶만이 옳고, 나의 방식이 맞았음을 '라떼는~' 이라는 접두어와 함께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며 설교하는 세대. 하지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은 조금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은퇴한다

원작자 송희구 작가는 이 이야기의 시작을 우리 모두가 은퇴를 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써 내려갔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직장에 다닌다. 일부 자영업, 사업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근로소득자로 십수 년 일하며 집도 사고 아이를 키우는 게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보통의 선택이다.

그리고 우린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직장이 잘 되는 게 내가 잘 되는 일이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게 나의 사회적, 물질적 성공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내가 이 직장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의 범위와 역할이 커지고, 그에 비례해서 보상도 늘어난다. 그렇게 한 개인은 십수 년 간 개인의 자아를 직장과 동치 시키며 가정을 꾸리고, 자리를 잡고, 늙어간다.


넌 어떡하겠니 난 어쩌면 좋겠니 세상이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넌 어떨 것 같니 난 어떻게 하니

- 이적 혼자였다 가사 중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OST Part.1)


이 이야기는 이렇게 보통의 선택과 보통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김부장이 더 이상 직장 = 내(김낙수)가 아님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고 불편하게 보여준다. 25년간 몸 담았던 회사는, 그 안에서 형 같이 밀어주고 끌어줬던 백상무는 인사팀장을 통해 전해진 회사의 선택 앞에 큰 고민 없이 김부장을 날려버린다.


그렇게 5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으로부터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은 김부장은, 여전히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어깨에 메고 스스로가 아직 죽지 않았고 건재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다. 하지만 대기업 시스템 속에서 활약했던 김부장이 아닌, 세상 물정 모르는 50대 중반 김낙수는 상가 임대 사기 한 방에 평생 대기업 다니며 모았던 부를 한 순간에 잃고 주저앉는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김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정한 성공의 이면 속 개인의 상실에 대해 조명한다.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이라는 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그 사람이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지 모를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겠지만, 그 이면을 비추었을 때 과연 개인에게 무엇이 남는가에 대해 조금은 아프게 꼬집고 있다.


드라마는 김부장이 상무 진급에 실패하고 밀려난 것에 조명하지만, 실제는 김부장 역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직장 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승진 한번 빠트리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나간 엘리트였다. 그런 김부장도 치고 올라오는 도부장에게 밀려난다.


G7A5yuXbYAAd19X.jpeg 도부장은 악역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최선을 다 했을 뿐.


더욱 애석한 현실은, 김부장을 밀어낸 도부장 역시 상무 진급에 실패한다. 배은망덕한 도부장을 백상무는 내칠 수도 없다. 백상무의 진급엔 도부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극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개인들이 서로에게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상황으로 얽히고설키지만, 결국 그 속엔 누구도 승자는 없다는 사실을 차갑게 비춘다.




우린 언젠가 모두 김부장이 된다


드라마를 보며 김부장을 그저 꼰대라 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스스로를 잃게 되었던 김부장. 직장인 대부분이 그의 이야기 속에서 어렴풋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극 중 김부장은 우여곡절 끝에 김낙수 스스로와 화해하고, 김낙수를 보내준다. 평생 일했던 직장에서의 위엄, 평생 번 돈으로 마련한 집, 돈 그 모든 것과 함께 김부장은 떠났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김낙수는 스스로가 이미 갖고 있던 행복을 깨닫고, 나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스크린샷 2025-12-01 오후 5.54.55.png 스스로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간 김낙수


김낙수로 거듭난 김부장은 묻는다.

우린 언젠가 모두 김부장이 될 것이라고.


만약 우리의 행복이 김부장, 김주임, 김변호사, 김선생님에 기댄 모습으로 자리 잡아있다면, 우린 필히 언젠가 김부장의 몰락을 마주해야만 할지 모른다.


김부장 타이틀을 뗀 당신은, 과연 무엇을 가진 사람인가?

또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나를 찾는 것, 내가 가진 행복을 깨닫는 것, 나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김부장이 김낙수로 거듭나며 보여줬던 용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부장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김낙수처럼은 살고 싶었던

오래간만에 묘한 여운을 남겨줬던 시리즈


세상의 모든 김부장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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