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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믿음의 묵시록

우리에게 친숙한 “계시”보다 저는 “묵시”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천주교 쪽에서는 묵시를 사용하고 개신교는 계시를 씀에 따르는 보이지 않는 편견이 작용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언어로 보면 하나의 단어를 “묵시, 계시”로 선택적 번역(표현)을 하는 것으로의 차이일 뿐으로 두 가지 모두 다 “감춰져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서 보여준다는 의미” 로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서로 다른 점이나 차이점을 들추어내자면, “묵시”라는 표현이 조금 더 감춰져 있는 것을 드러낸다거나, 감춰져 있다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계시”는 똑같이 감춰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들어낸다고 하는 그 부분의 제시하는 들어냄에 초점과 강조가 강하다라고하는 부분으로 용어 자체로는 서로 엄청나게 다른 뜻이 있거나 의미가 있는 다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어의 차이에 종교적인 감각적 부분을 동원하여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 주는 구원의 계시”는 말 그대로 다 열어서 게시(제시)해 놓은 것을 뜻한다고 하며, 성령의 인도를 통하여야 정확히 꿰뚫어야 볼 수 있을 것으로.. 묵시록이라 여기기 때문에 비밀로 감취어지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감취어진 것을 억지로 뜯어 발기며 풀어 해석하다보니 해괴한 몰골이 되고, 이단의 똥파리들이 속속들이 파헤쳐 놓으므로 아작(깨지고 망가짐) 나서 그러하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 비취심에 의지한다면 계시는 묵시가 될 수 없다고도 주장합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모르는 구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통하여 제대로 비워질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바른 것으로,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 수 있을 것이므로 조심에 조심과 분별에 분별을 요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혼돈의 시기에 주어진 “묵시와 계시”는 어느 면에서는 절대자의 은혜로우신 배려에 따른 우리들이 가야할 곳 비추어주는 밝히 등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지시하시는 마지막 방향의 지향점을 제시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함에는 각자의 성품과 의도는 바로 들어나게 됩니다. 현재를 살아내야 하나, 파국적이고 절박한 미래를 예고하면서도 미래를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전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시는 보편적인 은총과 사랑이 온 세상을 향하고 있음을 느끼며 밝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강력한 환난에 의해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다양한 종말론은 인간역사 속의 시대마다 반복되어온 스토리텔링으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선진들도 익히 들어온 비슷한 내용들이지만, 만일 그 “계시와 묵시”가 맞을 것이라는 가정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유념을 넘는 착념(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끝까지 주력함)으로 그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들로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는 인간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정한 사역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부분으로 일점 획도 빗나감 없이 인정을 떠나 확정해야 바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한 일을 바꿀 리가 있겠는가?에 대한 답은 무조건적으로 없다! 이므로, 이미 다 계획해놓으시고 뜻을 정했을 때의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기도로 간구한다든지.. 하나님께 있어서는 조금도 영향과 방해를 받지 않으시며, 아무렇게나 그 계획을 바꿀 리가 전혀 없고 철회할 리도 만무할 것으로 하나님이 하려고 정한 사역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 자신에 대해 내용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 하시는 차원은 너무나 고귀한 것으로, 앞과 뒤가 다르며 어제와 오늘이 확연이 다른 조석지변의 인간들의 무지몽매의 우매함은 보시지 않고, 오직 당신을 향한 진심만을 원하심에..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음에 따라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한 다리만 걸치며 반신반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것에는 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간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하나님 사역의 기본 질서로 그의 결과로 따라오는 비물질적인 진리의 가치는 믿는 자 모두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며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묵시적 측면에서 믿는 자 모두는 하나님께 있어서 하시는 모두는 다 진리이고 다 생명이므로 인간들에게 절대적인 필요충분을 넘어서는 완전한 것이 되므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보지 않고 믿는 것은 가장 큰 믿음이라 하시므로 우리들을 향하신 그 사랑에 좌나 우에 치우쳐 홀시(눈여겨보지 아니하고 슬쩍 보아 넘김)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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