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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Nov 23. 2021

좋은 기회 주심에 감사드리며...

오직 예수를 지향하시는 교우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어떤 사심과 감정은 추호도 없음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 싶으며, 더불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습니다. 단지 어떤 모양에서든지 천국의 모형인 이 세상에서 교우님을 만나 뵙고 함께 주의 나라에 덕이 되는 그 어떤 것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득한 상태라고 말씀 드릴 수 있고, 저 스스로는 기본적으로 남을 판단 정죄하는 것들은 극히 혐오하기에 될 수 있으면 피해버리는 경향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차저차하여 20**년 1월 **** 교회에 등록하고 *** 목사님의 깊이 있는 영혼의 말씀을 통하여 자중하며 많은 성숙을 가져온 것은 사실로, 지금까지 300편에 걸쳐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들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쓰고 안 쓰고를 이야기 드리는 것이 아닌, 주님의 인도로 **** 교회의 전에 와서 저는 하나님의 성품을 비롯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이동성전으로써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교우님께서 이 교회의 터전이 있기까지 노력하신 내용들을 많이 들었고, 항시 은혜로운 터전에 오게 됨을 감사의 마음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지리적으로 같은 구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구역모임은 저 스스로 반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고, 아내에게 항시 “나 구역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거야~”를 외치면 왜? 당신은 그러느냐 믿음 생활에서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하곤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개 끌려가듯 참석해 보아도 별반 다름이 없음에 말은 못하고 될 수 있으면 일을 핑계로 피하기 급급하였고, 진정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교제”란 무엇일까? 와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나?라는 의문은 증폭이 되어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의 심리적 상태는 나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표출시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주어지며 다가오는 차례에 강한 면들이 표출되지 않았나?를 생각해 봅니다. 다양한 영적인 경험으로 혼란의 극치를 경험하고 오직 푯대만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울며불며 밤마다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저에게 있어서 은혜로운 하나님의 전을 있게 한 교우들에게 함께 하심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에서보다는 구역에서의 느낌은 싸했으며.. 뭐야? 왜? 이러하지? 등등으로 괜히 내가 잘못하면 이상해 질 수도 있으므로 아예 원천적 봉쇄적 차원에서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항시 생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못 속인다고.. 아니, 성령과 동행하며 인도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믿는다 한다면 뭘? 믿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한다는 감동에 “듣는 자들에게 오해를 주실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믿는 이들의 참다운 교제에 있어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하심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틀렸다면 쫓아내고 격리시키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가진 자들끼리 서로 수용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공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제가 생각하는 주님의 이름 안에 함께하는 교제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영으로 싼다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찬양과 경배가 살아 있고,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는 연합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이 충만해야 하지만, 그리하지 못한다 하드라도 한줄기의 공통분모의 빛은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모두 모여 함께 주님께 영광을 이루어내기는 어렵겠지만, 제가 보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사귐의 지속성은 적어도 각자의 심령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으로 온전히 의지하고 있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소원을 이루며 안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종교생활이란? 부분은 일반적이며 포괄적인 표현으로 너무 심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왜냐? 하면 교우님과 제가 이야기 제대로 나누어본 적도 없으며, 말씀을 공유해본적은 더 더욱 없음에 종교생활이란 표현으로 대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우님의 영성과 영적생활에 대하여는 아는 부분이 전혀 없기에 교우님의 영적부분을 터치하거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절대로 아니며, 저는 제가 아는 부분에서의 말씀의 적용이 제대로 되어야 된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때마침 제가 태백 매봉산에서 크게 은혜를 받아 충만한 상태에서 “실제 그것을 누리도록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의 팔에 안기는” 자세와 증거에 있어서는 입으로는 다 맡겼다고 하지만, 그러지 아니한 경우가 많다고 주절이 한 부분이 걸리셨을 것으로 봅니다. 폐일언하고, 주님의 망극하시며 한량없으신 사랑에 감사함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믿는 자 우리 모두는 익숙하고 습관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닌지? 지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냉철히 돌아보며 언제 어디에서든지 점검에 점검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교우님의 믿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위해 기도할 것으로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저를 채근하며 구역식구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려 합니다. 좋은 기회 주심에 교우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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