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학거사 Nov 23. 2021

믿음의 완고함..

믿음의 연륜이 많을수록 완고함에 벗어나지 못하며, 아는 것이 많아 말씀을 마구 적용하여 자신만의 론을 펼쳐 나가는 것을 느끼며 안타깝기 그지없음에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게 됩니다. 제가 잘나고 나만이 영적인 우월감을 지녔다라고 하는 썰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암담함에 있어 본질적 믿음에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고 혼란이 가중된 현실 속에서 굳건히 중심 잡아가야하기에 더욱 더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것 일까?를 기도하는 자세로 조용히 침잠하여 반문을 해보면, 제대로 된 곳이 어느 한 곳도 없음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그나마 믿음이 있다고 느끼며, 오랜 종교생활을 통하여 열심을 지닌 분들이 저러할 진데.. 믿음이 주역이 되어야할 젊은이들의 설 자리는 진정 없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말씀의 본질을 논하기 보다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우리들의 믿음에 관한 현주소와 위치값을 가지고 접근해보며,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해보고 싶으나,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믿는 자들의 “지적 회개와 지적인 겸손”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첨단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대적하며 높아진 세상의 지식과 견고한 세상적 성들로 둘러싸인 크고 웅장한 교회 안에서 말씀 비대증에 걸려 어그적 거리는 크리스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때에는 성경에 예언된 것처럼 믿음을 가진 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공격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귀에 팥이 삼기도록 들어 알면서도 그에 대한 인식이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은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지적 교만을 가장 싫어하심을 너무나 잘 아는 오래 믿은 자들은 자녀만을 우상으로 섬겼다고 단순히 치부해버리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이 들어 알고 보았던 알량한 지식들로 이루어진 지적 우상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안다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성령의 민감함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지적회개를 먼저 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함에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하는 한계를 인정하여야만 지적으로도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던 것처럼, 교회에서 이루어낸 역할과 연륜으로 제시하거나, 단정 지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영적인 우월적 존재감과 종교적 지식의 충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세상 지식과 혼용하여 섞어버리므로 참된 신앙의 우선순위와 가치적 측면에 오류를 범하고 있음도 인식치 못함을 범하게 되므로 우리는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영적으로 깨끗할 뿐만 아니라, 지식적으로도 깨끗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갈 4:19)은 정확한 신앙의 본질로 그 자체의 거룩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입으로는 자식 자랑 세상적인 것들을 입에 달고 살며, 그에 대한 간언이나 아님을 우회적으로 어렵게 표현하면 누구나 다 알며 잘 믿고 사는데 왜? 표현이 그러하냐?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등등으로 공박해 버립니다. 사소하며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모른척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던 말든 관여가 필요치 않겠지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시는데.. 많이 안다고 해도 짖어대야 하나님께 올바른 도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의 본질은 거룩한 삶으로 그것은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으로 바울이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빚는 삶으로 더 이상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측면과 더불어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라면 상대가 무엇을 제시하는지?를 깨달아 주님께 납작 엎드려야 함이 제대로 된 신앙인의 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구구절절 입에 게거품을 문다고 하다면 짖어대는 말의 의미 자체를 말씀 속에서 채용해 왔다 하드라도 본질적으로 기본이 안 된 상태이므로 성령과 동행하며 임재를 지닌 자들에게는 마이동풍과 공염불에 불과함을 빨리 깨달아 돌이키기를 기도할 수밖에는 없음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항시 의문으로 남아있었던 “종교의 영”에 사로잡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종교의 영은 영적생활의 원천인 성령의 자리를 대신하려 한다고 하는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를 주심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인정과 용납 받기 원함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순종과 영적훈련이 필요함을 통하여 자신 스스로 낮아지고, 자성하며 더욱 각성하여 주님께 힘써 다가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기회 주심에 감사드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