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타파_15]
교회 댕기며 교회생활에 충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주신 말씀을 제대로 알고 안 것들을 삶에 잘 활용과 적용하기 위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이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습관화(체화)시키는 가이드나 노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전도로 많은 자들을 교회로 유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제대로 된 양육을 통하여 믿음의 기본적 전제인 성경 읽기에 게으르거나, 아예 접근하지 못하고 오직 설교에만 목을 맨다면 믿음의 성장은커녕 장성한 분량은 사치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단순한 반복적인 “성경읽기”의 노예로 읽기 “중독”에 빠기게 한다면, 다양한 선입견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말씀의 생생한 맛을 즐기지 못하고, 말씀이 주는 변화의 능력을 온몸으로 받아낼 준비가 매우 미흡하게 될 것으로 이런저런 기교를 배워 성경읽기를 통하여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믿는 자들의 고민은 벌써 해결되었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읽기”가 마찬가지겠지만, 성경 역시 올바른 읽기가 어려운 것은 방법론적 무지를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방해가 개입되기 때문으로 따라서 제대로 된 성경읽기의 핵심은 외면적 해석의 기교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들의 내면적 방해물들을 발견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관한 유사한 내용들을 웹서핑을 하다 찾아낸 크고 작은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을 가이드 하는 하우투(How to) 웹사이트인 위키하우(wikiHow)의 “올바른 성경공부 방법”이라는 주요 내용들을 정리해 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이 실제적이라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해명되어야 한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고백 혹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진술이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내가 말씀을 어떻게 깨달았으며 내가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해석의 과정이 투명하게 해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꼼꼼하게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읽기만 하는 건 공부와 다르며, 하나님의 말씀은 존경받을 만하며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성경은 여러 문화와 시대, 그리고 현대의 어느 시대와도 연관성과 상관성을 가진 오랜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성경은 가장 잘못 해석되는 책 가운데 하나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로 쓰여진 것이 명망 있는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고, 성경공부의 목적은 올바른 문맥 속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세로 성경을 공부하라.”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어야 하며, 성경은 영혼의 양식이므로 성경공부는 배움에 대한 깊은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고, 말씀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면 성경이 재미있어질 것으로 열린 마음, 기도, 다른 사람과의 토론은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원래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는 시간을 갖아야 하며, 성경적 원리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은 수 년 간의 헌신, 열심히 들으며, 읽음에서만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권의 책이 아니고, 66권의 책을 묶어 놓은 것이며 저자들도 다르며, 한 권 이상의 책을 쓴 저자도 여럿이며, 이들은 다른 이유로 다른 시대에 책들을 썼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유사한 주제와 의미를 성경의 모든 책들을 통해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성경은 원래 한글로 쓰여진 것은 아니며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고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 졌습니다. 따라서 일부 단어와 개념들은 직접적으로 번역하는 대신 그 문구의 느낌과 의미를 표현하고자 시도했으며, 어떤 부분은 직역으로 일부는 실용적으로 번역되었음을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다 보면 과학적 사실이나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일반상식에 대해 비난을 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런 느낌이 올 때는,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성경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베드로후서 1:20, 21)는 것으로 신경이 쓰이는 문구를 찾아 그 문맥과 어조를 공부하며. 대개 구절에 대한 자신 만의 이해가 잘못된 경우는 많습니다. 따라서 성경공부를 해나가는 가운데 자신의 의구심을 풀어주고 동의가 되는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지만,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 설명을 부탁하고 그래도 만족이 안 되면 자신이 내린 어떤 결론이든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반드시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불확실한 부분이라도 성경을 읽다 보면 어디에선가 증명이 될 것으로 한 주제에 대해 모든 성경 전문가들이 쓴 것을 읽지 말라고 권하는 경우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읽다 보면 서로 충돌하는 내용도 있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져 결국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 베뢰아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며,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들은 말씀을 판단하고 증명하려는 시도(사도행전 17:11)를 통하여. 성경 자체가 말하도록 하면, 말씀의 저자(하나님)이신 이가 환경과 사람을 통하여 들어내고 영감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에서 신앙의 출발은 성경읽기에서 시작됨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런 이유로 성경읽기는 신앙생활의 오리엔테이션과 같고, 이때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신앙의 유형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읽기를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면 못 말리는 괴물이 탄생할 위험과 소지는 농후해질 것입니다. 더불어 신앙이 지식화가 되어 영적인 교만에 물들면 신앙은 좀처럼 자라지 않고, 성경 읽은 것을 자랑하고 자기가 안다고 착각을 하면서 판단하거나 더 이상 성경을 배우려 하지 않는 바리새인 유형 신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하는 측면에서 독이라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보고 들은 것은 있어 어느 유명 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그가 말한 어느 부분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그 저자는 그를 표현하기 위해 말씀에 온 삶을 바친 부분을 읽고 그 부분만을 믿음에 적용하려함은 총체적 난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조적 난맥상의 극치를 이룰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자칭 성경을 읽었노라 하지만, 삶에 변화는 이루지 못하며 징징거림을 표출하며.. 진정 그 말씀이 살아 있도록 뭘 한 것이지?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제시된 진정한 맥을 찾아야 한다.”에 있어 성경 읽기를 매우 쉬운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 되며, 실상 어렵고 인내가 요구되는 부분으로 스스로 주신 말씀이 제시하거나 요구하심은 무엇일까? 라는 관점에서 그 맥을 찾고자하는 열정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말씀을 설명해주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문맥을 통한 맥락적 입장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쪼가리 한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표현하면 멋대로 읽고 멋대로 해석하는 우를 범할 소지는 농후해질 것입니다. 읽다보면 도통한다는 말보다는 은혜주시길 갈망하며 성령님의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시기를 먼저 바탕이 되도록 인도하고 그에 대한 실증적 기반을 갖추어 거룩한 성경 읽기로 전환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백날 읽고 가르친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이여서는 절대 아니 되므로 성령의 인도로 한방에 믿게 할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읽기표 나눠주고, 무조건적 반복 읽기를 강요해서는 절대 아니되며, 유명 성경학자가 제시하는 “헬라인은 성경을 이해하려 읽고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읽으며, 현대인들은 성경을 사용하려 읽는다.”함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횟수와 읽어야 하는 당위성보다는 주신 말씀의 진정한 맥을 찾음은 진짜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