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정리하기 위한 담론

by 잡학거사

최근 국제기구와 사회 전반에서 “차별적 언어 사용 금지”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는 내용을 오늘 영어회화반 강의 중에 듣게 되며.. “언어 변화와 가치의 충돌‘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므로 그에 관해 정리해 보기로 했는데, 그 주안점은 최근 유엔(UN)에서는 “aborigine(원주민)”이라는 단어보다 “indigenous peoples(선주민)”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단어 교체가 아니라, 식민의 언어에서 존중의 언어로 나아가는 인류의 변화된 인식을 보여주며, 과거 “aborigine”이란 표현은 식민지 시대에 “문명 이전의 사람들”이라는 뉘앙스로 쓰이므로 원주민을 “낮은 존재”로 규정하는 차별적 맥락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indigenous”는 ‘그 땅에서 태어나 하나님이 먼저 심으신 백성들’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감수성과 사회 정의를 둘러싼 가치 전쟁의 단면은 아닐까? 하는 생각 속에 담론(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으로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으로만 보아서는 아니 될 것 같아 리뷰해 보자는 것입니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형성하고, 사유는 행동으로 이어지기에, 언어의 변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일 수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변화가 신앙적·도덕적 기반을 흔드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분별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Aborigine(원주민), Indigenous(선주민) 같은 단어조차 일부에서는 “문명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진 낙후한 집단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Aborigine”라는 용어는 원래 라틴어 ab origine(“기원으로부터”)에서 유래했지만, 식민지 시대에는 백인 정착민이 토착민을 지칭하며 쓰던 표현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는 없었고, 그 결과, 이 단어는 역사적으로 “문명화되지 못한 자, 정복의 대상”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오늘날 “Indigenous peoples”라는 표현은 동일한 집단을 가리키되, 자기 정체성과 주권, 문화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들의 변화를 단순한 “용어 교체”로 볼 수는 있겠지만, 기독교적 시선에서는 언어의 역사와 신앙적 언어 윤리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어가 인간의 존엄을 세우는 도구인가?, 아니면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인가?”라는 것으로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고스)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창조와 진리의 원리임에 따라, 기독교적 언어 윤리는 단순한 “표현의 자유” 문제를 넘어서, 진리와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말을 선택해야 함이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불어, 각 개인의 신앙적 성찰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는 언어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결될 수 있음의 성경적 인간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인종, 문화, 언어도 본질적으로 우열을 가질 수 없고,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우월감이나 타자화의 논리를 인식하고 조심하는 것은 단순히 “세속적 감수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형상의 평등성을 지키는 신앙적 책임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차별금지 담론이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흐름은 인간 존엄을 보호하는 데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도덕 질서나 신앙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도 물론 존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적 창조 질서에 대한 신앙 고백이 “차별적 발언”으로 간주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사랑의 이름으로 진리를 억압하는 역설을 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사랑의 언어를 선택하되, 진리를 침묵시키지 않는” 균형을 세워야 함에는 “주께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셨지만, 동시에 죄를 죄로 단호히 말씀하셨다.” 하심에 사랑은 진리를 배제하지 않으며, 진리는 사랑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담론의 요지를 정리 하자면, 세상사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정리해 나감은 분별과 사랑으로 세상을 읽어내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행함 속에 오늘날의 언어와 인권의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즉,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의하려는 시대적 흐름을 배경으로, 시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을 스스로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변화를 무감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닌,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언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를 새롭게 세우자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단순히 “올바른 단어”가 아니라, 상대의 존엄을 세우고, 진리를 드러내며, 사랑으로 소통하는 말로 기독교인은 세상의 언어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더 온전한 소통과 화해의 언어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정리하기 위한 나름의 결론으로 차별적 언어는 죄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의 교만으로 전통 신학에서 언어 또한 죄로 인해 타락한 영역이라 함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온 삶을 더럽힌다.” (야 3:6) 즉,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를 세울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존재들이므로 “언어는 인간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인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세우며,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심어야 한다.”라는 입장에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하나님 형상과 사랑의 언어를 세상 속에 새롭게 세우는 소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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