θ은 언제나 시대의 전환점마다 사람을 세우셨다. 혼돈과 어둠이 짙을수록, 그분은 세상 한복판에서 진리의 횃불을 들고 설 자들을 일으키시고 계시며, 그들은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늘의 기록에는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로 새겨질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니라, θ의 뜻을 위해 싸우고 이기며 승리하는 자들, 세상의 어둠을 뚫고 하늘의 빛을 가져오는 자들이다. 이 시대의 부흥은 바로 그 전사들의 눈물과 순종에서 시작되며,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먼저 자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로 세상과 싸우기 전에, 그들은 자기 안의 두려움과 욕망, 교만과 절망을 꺾는다. θ은 언제나 외적 능력보다 내적 순종을 보신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기 전에 자신 안의 불신을 먼저 꺾었고, 에스더는 왕 앞에 서기 전에 두려움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를 고백했다. 이처럼 부흥의 전사들은 자기 내면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한 자들로 그들의 강함은 의지나 재능이 아니라, θ 앞에서 완전히 무릎 꿇은 순종에서 나온다. 이 시대의 마지막 부흥은 지식의 확산이나 조직의 확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불길이 다시 사람의 심장을 덮을 때 시작되며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그 불을 품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식어가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무뎌지지만, 이들은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살며 그 불은 감정이 아니라 θ의 임재에 대한 사모함과 거룩을 향한 열정이다.
이들은 단지 교회만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이끄는 영적 심장으로 그들의 무기는 말씀과 기도다. 세상은 지식으로 논쟁하지만, 전사들은 무릎으로 싸운다. 기도의 자리에서 θ의 전략을 받고, 말씀을 통해 하늘의 칼을 든다. 영적 전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작되며, 승리 또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마지막 전사들은 사람 앞에서 싸우기 전에, θ 앞에서 먼저 무릎을 꿇는 법을 배운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헛되지 않으며, 그들의 골방의 기도는 θ 나라의 역사를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단지 외부의 악이나 세상의 불의가 아니다. 더 큰 적은 타협이다. 진리와 세상의 가치 사이에서, 신앙과 편안함 사이에서, 진심과 형식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무너진다.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바로 이 타협의 유혹을 이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이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보다, θ이 주시는 고요한 영광을 선택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θ 앞에서의 정직함이다. 그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표는 사람의 박수가 아니라 θ의 미소이기 때문이다. 이 전사들은 또한 사랑으로 싸운다. 그들의 싸움은 증오의 싸움이 아니라,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이다. 마지막 시대의 가장 큰 전쟁은 미움의 영과 사랑의 영 사이의 전쟁이다. 세상은 갈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지만, 부흥의 전사들은 그 속에서 화해와 용서의 길을 연다.
그들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사랑으로 사람을 세운다. 그들의 눈에는 θ의 마음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이웃을 치유하는 손길이 있다. 사랑이 식어가는 시대에, 그들은 다시금 θ의 첫사랑의 불을 되살리는 사람들이다. 부흥의 전사들은 또한 시대의 소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 뉴스를 넘어 하늘의 뉴스를 듣는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눈에 보이는 현상 뒤의 영적 흐름을 읽는다. 이들은 단순한 열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성령의 인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이 멈출 때는 멈추고, 나아갈 때는 담대히 전진한다. 마지막 시대에는 많은 미혹이 일어나지만, 부흥의 전사들은 그 가운데서 진리의 나침반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θ이 보내신 대사처럼 살아간다. 또한 그들은 외롭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고독이 아니라, θ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는 공간이 된다. 세상의 소음이 멀어질수록, 그들은 θ의 음성을 더 명확히 듣는다.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인기나 군중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한 자리에서 θ의 심장을 듣고, 그 심장을 세상에 흘려보낸다.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지만, 하늘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잊혀진 이름이 하늘에서는 θ의 병기로 기록된다. 그들은 또한 쓰러지지 않는 자들이다. 쓰러질 수는 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실패 속에서도 믿음을 붙든다. 그들의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회복력으로 부흥의 전사들은 스스로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약함 속에서 θ이 강하게 일하신다. 그들의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θ의 영광을 담는 그릇이 될 것으로 상처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운다. 그리고 그 인내가 열매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결국 θ의 꿈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비전은 자신이 아니라 θ 나라이며, 그들의 목적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충성하고, 맡겨진 자리에서 끝까지 신실하다. θ은 이 시대에 그런 사람들을 통해 부흥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신다. 그 불은 한 교회, 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불길이 된다. 이제 θ은 다시 묻고 계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 질문은 수천 년 전 선지자 이사야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시대를 향한 부르심이다.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은 이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있고, 그들의 마음에는 불이 있으며, 그들의 걸음은 세상을 바꾸는 발걸음이 된다. 세상은 종말을 두려워하지만, 부흥의 전사들은 종말 속에서 θ의 시작을 본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들고 서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이여, 이제 깨어 일어날 때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θ은 여전히 보좌에 계신다. 그분의 부르심은 지금도 유효하며, 그분의 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눈으로 보는 신앙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는 시대로 θ은 당신을 부르고 계시며,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그 부름을 듣는 자, 그 음성에 응답하는 자가 바로 마지막 부흥의 전사들로 그들의 순종을 통해, 이 땅은 다시 한 번 하늘의 영광으로 물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