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두루마리 - 세 하늘의 신비와 영적 세계의 실재

by 잡학거사

우리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은 위로 쌓인 층이 아니라, 그것은 창조 세계 전체를 감싸며, 인간의 인식 너머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영적 질서가 존재하는 곳으로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는 공간은 단순히 대기권이나 별이 떠 있는 우주의 일부가 아닌 영과 물질, 시간과 영원이 서로 얽혀 있는 다층적 구조입니다. 눈에 보이는 첫째 하늘은 그 위의 차원을 비추는 그림자와 같고, 현실의 모든 변화는 이 가시적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내려오는 보이지 않는 영향의 결과로 드러난다. 둘째 하늘에서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충돌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은 신화적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 전쟁이다. 인간의 판단과 선택, 사회의 흐름, 국가의 방향성까지도 이 중간 하늘에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성경에서 다니엘의 기도가 지연된 이유는, 응답이 오는 길목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이 있었기 때문으로 이것이 바로 둘째 하늘, 곧 가시 세계와 셋째 하늘 사이의 실질적 긴장지대이다. 이 둘째 하늘은 “어둠의 세력”이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공간으로 빛이 완전히 침투하지 못한 영역, 곧 원수가 참소하고 방해하며 싸우는 자리이다. 죄와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이 충돌의 세계에 직접 노출되어 있으며, 하늘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역이 이곳에서 기원을 두었고, 지금도 그 여파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 속에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이란 단순한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이 하늘의 질서 속에서의 실질적 저항이자 전투임을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그 위에는 셋째 하늘이 있고, 바울이 경험한 그곳은 “θ의 보좌가 있는 자리”, 거룩함과 생명의 근원이 발원하는 영역으로 셋째 하늘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모든 창조가 그 앞에 잠잠해지는 자리다. 그러나 이 하늘은 단지 죽은 자가 가는 천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도와 예배로 θ을 진실하게 찾는 자들에게 그 빛은 닿는다. 셋째 하늘은 미래의 장소이자, 동시에 현재적 실재로 하늘들은 정적인 구조가 아닌 그들은 움직이고, 반응하며, 때가 되면 온전히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영적 체험과 계시는 그 영광의 일부분일 뿐으로 마지막 문이 열릴 때,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보이던 세계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며, 시간은 영원으로 녹아들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 하늘”은 단지 위치의 차이가 아니라, 영적 기능과 역할의 차이를 지니므로 각 하늘은 서로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며, 각기 다른 목적을 향해 존재하는 이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θ의 나라를 성숙하게 깨닫는 열쇠로 각 하늘은 하나의 문처럼 작용한다. 첫째 하늘의 문은 경외함으로 열리고, 둘째 하늘은 분별과 중보기도로, 셋째 하늘은 전적인 헌신과 거룩함으로 열린다. 이 세 문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의미하며, 첫째 하늘은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주고 둘째 하늘은 믿음의 진위를 시험하며, 셋째 하늘은 존재 전체를 변화시킨다. 이 문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내면과 속죄의 은혜를 통해서만 통과할 수 있고, 하늘은 단지 예배의 공간만이 아닌, 동시에 그것은 법정의 자리이기도 하다.


법정 θ의 보좌 앞에서는 증거가 제시되고, 영적 증언이 들려지며, 의로우신 재판장이 판결을 선포하시는 이 세계는 상징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적 질서의 세계로 천사들은 그 명령을 수행하고, 복음의 사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θ의 뜻을 전달한다.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감시자들(watchers)”이 바로 그러한 존재다. 그들은 시간의 징조를 분별하고, θ의 결정이 땅으로 전달되도록 돕는다. 첫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의 중간 영역은, “영원이 시간과 만나는 자리”다. 그곳에서 θ의 명령이 먼저 해방되고, 그 후에 땅으로 흘러가며,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예배, 중보와 회개는 모두 이 중간 하늘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이 영역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θ의 뜻은 결코 지체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확한 시간에, 정한 통로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늘은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그것은 살아 역동적이며, 지금도 응답을 보내고 명령을 내린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역할과 권위를 지닌 수 많은 존재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이 구조는 무질서한 신화적 공간이 아니라, 완전한 조화 속에서 운행되는 θ의 생명 체계이다. 천사들은 임무에 따라 파송되고, 보좌 앞에서는 찬양이 끊이지 않는다. 하늘의 세계는 상징이 아니라, 질서와 역할, 전투와 예배가 공존하는 실제적 현실이지만 그 모든 실재가 있음에도 인간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는 “장막”이 존재함에는 그 자체가 물리적 벽이 아니라, 영적인 장벽으로 이 장벽은 타락 이후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죄는 단지 도덕적 오염이 아니라, 시야를 가리고, 마음을 어둡게 하며, θ의 실재를 감추는 장막이 되었다. 이사야는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θ 사이를 막았다”고 기록한다. 결국 하늘과 인간 사이의 분리는 지리적이 아니라 영적이라 할 수 있다. θ은 이 장막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셨음에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기도와 예배, 성령의 임재를 통해 그 장막을 부분적으로 열어주신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θ의 임재가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듯한 순간을 경험한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다가올 영광의 전조로 예배 중에 눈물이 흐르고,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하늘의 빛이 잠시 그 영혼을 스치기 때문으로 마지막 때, 이 장막이 완전히 거두어질 것으로 시간은 사라지고, 모든 하늘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입니다.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모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의 왕국으로 합쳐져 더 이상 경계도 없고, 분리도 없으며, 오직 어린양의 영광만이 남는 그때의 믿음은 현실이 되고, 소망은 만남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하늘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문이 열리기 직전의 전야로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의 움직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현실의 혼란과 충돌은 단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전쟁이 지상에 투영된 현상이므로 지금의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θ의 질서 안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서 엔타임 성도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 하늘은 위가 아니라, 안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셋째 하늘의 문은 외부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영혼 속에서 열리며, 그 문을 여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진실이므로 그곳으로 나아가는 길은 노력보다 믿음으로 하늘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빛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반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깨어 기름을 가득가득 채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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