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한가운데서 하늘의 절대 기준을 붙드는 삶은 성경이 반복해서 증언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부르심과 맞닿아 있고, 성경은 언제나 θ의 백성이 현실을 떠나 살도록 부르지 않으신다. 오히려 애굽, 광야, 바벨론, 로마와 같은 실제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으심의 절대 기준은 하늘에만 머무는 말씀이 아니라, 땅 위의 삶을 바로 세우는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견디며 바르게 살아내도록 주어주심의 성경적 삶은 도피가 아니라 책임이며, 이상이 아니라 순종으로 성경이 말하는 절대 기준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θ의 성품과 뜻에서 비롯된다. “나는 여호와라 변하지 아니하나니”라는 선언처럼, θ의 절대적 기준은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붙드는 방식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요셉은 애굽의 정치 체계 안에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문화 속에서, 에스더는 페르시아 궁중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준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현실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그들이 체제 안에 있었지만, 체제에 의해 규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은 현실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등불로 이 삶의 출발점에는 현실을 직면하는 정직함에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연약함과 세상의 타락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므로 절대 기준을 붙든다는 이유로 세상의 복잡함을 단순하게 재단하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나 예언자들은 언제나 현실을 정확히 보았고, 그들은 죄를 죄라 불렀지만, 동시에 왜? 그 죄가 반복되는지, 어떤 구조와 상처가 그 배경에 있는지를 함께 드러냈습니다. 예수께서도 죄인을 부르실 때, 먼저 그 삶의 자리에 들어가셨으며, 절대적 기준은 사람을 밀어내는 돌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는 빛으로 작동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 의미에서의 포용은 기준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며, 그것은 θ의 오래 참으심을 닮아가는 태도로 θ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죄인에게 돌아올 시간을 오래 허락하십니다. 현실 한가운데서 절대 기준을 붙드는 사람은 이 θ의 성품을 삶으로 전환해 그는 쉽게 판단/정죄하지 않으며,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즉시 배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함께 울고, 아파하며 함께 기다리며, 진리가 작동할 수 있는 관계의 자리를 지키므로 포용은 약함이 아니라, 오래 견디는 힘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포용만을 말하지 않으며,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분명한 결단을 요구할 것으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머뭇거리지 않았던 것처럼, 다니엘이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도들이 “사람보다 θ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하늘의 절대적 기준은 결국 선택의 순간을 동반합니다. 이 결단은 언제나 절대 쉽지 않을 것으로 성경 속 인물들의 결단은 대부분 손해와 고립, 오해를 불러왔으나 그 결단은 개인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θ이 누구이신지를 삶으로 증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용기로 이는 담대함이라는 이름의 공격성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의 용기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는 확신이기에, 절대 기준을 붙드는 삶은 결과를 보장받고 움직이는 삶은 아니며, 오히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θ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입니다. 이 용기는 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자신을 변호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대신 침묵 속에서도 기준을 놓지 않는 태도로 드러나며, 성경적 절대 기준을 붙드는 삶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을 기준 위에 세우지 않는다는 점으로 바리새인들의 실패는 기준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소유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경적 삶은 언제나 말씀 아래에 자신을 두므로 기준은 나를 판단하는 도구이지, 내가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므로.. 이 삶은 늘 회개와 갱신을 동반하며, 절대적 기준을 붙드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더 자주 점검하며, 쉽게 확신하지 않고, 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출 것입니다. 결국 현실 한가운데서 절대 기준을 붙드는 삶은, 성경이 말하는 좁은 길과 닮아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속도가 매우 느려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이 삶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외치기보다, 먼저 자신이 변화의 통로가 되는 삶이 될 것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혼란한 현실 속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고, 하나의 증언이 될 것입니다. 말보다 삶으로, 주장보다 태도로, 성경이 말하는 절대 기준이 여전히 유효함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내는 삶, 그것이 현실 한가운데서 성경적 의미를 담아 절대적 기준을 붙드는 삶임을 잊거나 무시 또는 무지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