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잘되고 싶어 합니다. 돈도 벌고 싶고, 실패하지 않고 싶고, 가능하다면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겠지만, 스스로들의 그 고민 자체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적 정직함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옳지만 들리지 않는 말로의 믿음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삶에 바로 대입할 수 방향을 찾는 노력을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문제는 이 욕망 자체가 아니라, 그 욕망이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느냐? 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있으면 신앙도 더 잘할 수 있다”, “성공하면 여유 있게 살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절대 아니나 실제 본인의 삶에서는 순서가 자주 뒤집힘을 제대로 경험하셨을 것으로 돈과 성공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고, 신앙은 그 목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오히려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더 교묘해지며 지능화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θ을 말하지만, 실제 결정의 기준은 여전히 “이게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이 선택이 나를 편하게 만드는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람은 θ을 떠난 것이 아니라, θ을 삶의 중심에서 한 발 옆으로 밀어낸 상태가 됩니다.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부르는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말씀이 옳게 들려도 마음에 닿지 않습니다. 틀려서가 아니라, 지금 붙들고 있는 기준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내려 놓아라”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말을 들을 귀도 여력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내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잃을까 봐 불안한가?” 이 질문은 신앙의 깊이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중심으로 삽니다. 그게 돈이면 돈이 중심이고, 인정이면 인정이 중심입니다.
θ은 그 중심을 빼앗기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니라, 그 중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부르시는 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θ 중심의 삶은 갑자기 세상 욕망을 버리고 수도자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일하고, 벌고, 계획하고, 경쟁합니다. 차이는 하나입니다. “이게 내 인생을 지켜줄 것인가?”를 묻지 않고, “이 선택이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가?”를 묻는 삶입니다. 돈은 벌 수 있지만,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멈출 수 있는 힘. 성공은 추구하지만, 그 성공이 나를 오만하게 만든다면 조절할 수 있는 기준. 이것이 θ 중심 삶의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가장 쉬운 출발점은 “더 영적으로 살자”가 아니라 “선을 넘지 말자”입니다. 신앙은 욕망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욕망이 폭주하지 않게 하는 브레이크에 가깝습니다. 명참모의 자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석하고, 판단하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은 귀한 능력입니다. 다만 그것으로 사람을 조종하거나 자신을 신격화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됩니다.
θ 중심 정체성이란 대단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내 판단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으라”는 말은 포기 선언이 아닙니다. 그 말은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속도로 깨닫고, 각자의 지점에서 멈춥니다. 신앙의 현실은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돈과 성공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 그것들이 지켜주지 못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삶의 중심을 점검하는 것이 신앙의 지혜입니다. 결국 θ 중심의 삶은 성공을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성공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는 삶입니다. 이 정도라면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자기 삶에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