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0~31일, 1~2일 차 기록
몇 달의 시간이 흘러 7월 초 후덥지근한 날에, 지난 3월 말 비구름 가득했던 여정의 기록을 시작한다.
22년 3월 30일, 인천공항 출발 항공편들이 표시판 한 페이지로 끝났던 시간, 프랑크푸르트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이륙 직후 쓴 글에 남아있다.
직전 몇 달의 시간에 대한 후회, 갑자기 속한 공동체로부터 내동댕이쳐진 충격, 곧 다가올 시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희망.
출발 당시 절실했던 감정만큼은 사진을 통한 회상으로는 되살릴 수 없다.
2018년에 첫 유럽 여행으로 뮌헨과 베를린에 간 적이 있어서 이번은 두 번째 독일 방문이었다. 도시가 다르긴 해도 일단 같은 나라이기에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다. 지난번과 달리 루프트한자 기내식이 처참한 수준(단백질이 거의 없었다)으로 다운그레이드된 것에 대한 불만은 있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생소해진 독일식 도심행 열차표 발권기 앞에서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키 큰 현지인 남성이 흘끗 보더니 먼저 다가와서 도와줬다. 오랜만에 겪는 독일의 친절함이었다. 우반 에스반(독일 지하철과 전철)에서 티켓팅할 때 그렇게나 먼저 나서서 꼼꼼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보지 못했다. 4년 전 뮌헨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뭔가에 좀 더 쫓겼다. 어서 빨리 현금을 뽑아 바로 호텔로 가서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여정을 떠나온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장소는 Frankfurt Hbf였다. 이후에 겪게 된 타국, 타도시의 기차역들과 비교해 봐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하우프트반호프(중앙역)는 특별했다.
일몰 이후의 어둠과 침잠과 대비되는 역사 내부의 활기와 울림, 분주한 사람들, 끝없이 나오는 정중하면서 깔끔한 독일어만의 시적이고 운율이 있는 안내 방송, 각종 매점들과 차분한 조명들. 나 역시 방금 도착한 여행자였기에 그들의 지금 신분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다들 나처럼 어디론가 이동하는 동일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짧지만 강한 소속감마저 느껴졌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자들로 붐비는 공간은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중앙역에서 호텔까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였고, 역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기는 주변에도 가득했다. 반면 역의 건너편 거리는 부랑자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곳곳이 담배 연기와 대마초 향으로 가득했다. 이 모습에 여행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호텔로 피신하고 싶은 욕구가 앞섰다. 빠른 걸음으로 금방 The Frankfurt Hotel에 도착했다.
거의 2년이 넘어서 오랜만에 접하는 외국의 호텔 카운터였다. 중년의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꽤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를 요구했고, 그중엔 지금은 완전히 쓸모없어진 백신접종 증명서도 있었다. 그래도 2번 접어 꼬깃한 A4 한 장이 이때는 여권만큼이나 중요했다.
방은 24제곱미터 정도로 넓었고 조명과 욕실 모두 다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구조였다. 단 대로변에 위치한 특성상 끊이지 않는 차량 소음과 주기적인 트램의 기계적 소리, 금속 마찰음에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짐을 풀고... 씻고 누웠을 때 어떤 심경이었을까? 이 시점의 기억은 지금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에서 자던 시간에 맞춰서 일찍 잤을 뿐.
다음날 일어났을 땐 현지 시간으론 새벽 5시경이었지만 동아시아 기준 오후 시간이었고, 일본에 가 있는 친한 후배 W랑 이탈리아 친구 A와 메신저로 도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새벽 일찍부터 나가서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기에 한동안 퍼질러져 있었다.
중앙역에서부터 동쪽으로 쭉 이어지는 나름의 중심 대로를 걸으며 오랜만의 유럽 도시 정취를 느꼈다. 회색빛의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음산함이 깔렸지만 일단 지난 몇 년간 한국에 갇혀있던 것에서부터의 탈출이었다. 뮌헨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익숙해진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과 멀리 보이는 현대식 오피스 고층 건물의 조합은 분명 색다르고 그 나름의 매력적인 풍광이긴 했다. 그럼에도 무심하게 지나쳤다. 당시 나는 관광객이 아닌 탈출 여정자에 가까웠기에. 하필이면 내려온 북극 한파로 인해, 3월 말임에도 시리디 시린 독일의 차가운 공기를 조금씩 원망하며 돌아다니며.
아직 떨쳐내지 못한 회한 때문이었을까. 도시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이탈리아 친구 A는 내가 프랑크푸르트로 간다고 하자 "공항과 오피스 밖에 없는 곳을 왜 가니?"라고 했었다. 이 날 열심히 돌아다니긴 했다. 3만보를 넘게 걸었다. 일단 왔으니 걸어야만 했다.
언제나 푸름으로 기억되는 4월을 하루 앞둔 이 날, 프랑크푸르트는 곳곳이 녹음과 다양한 색채의 꽃들로 가득했다. 춘래불사춘.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색채보정을 엄청나게 해야 겨우 좀 예뻐 보이는 뢰머 광장의 독일 전통 양식 건물들을 둘러봤다. 2차 대전의 상흔으로 대부분의 구시가지 건물이 날아가고 남은 몇 개의 상징적인 건물들은 후에 복원했겠지. 관광객은 거의 드물었고 어떤 환경 단체로 보이는 곳에서 온 주황색 모자를 쓴 회원들이 가득했다. 거기에 얇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래 있을 곳이 아닌 느낌에 이동을 서둘렀다.
아이젤너 다리를 건너, 흐린 강물을 잠시 바라보고 강 건너편으로 향했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휴일이 아님에도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중 몇 명만이 이방인 동아시아인 관광객에 흘끗거릴 뿐 대체로 그들끼리의 놀이에 집중했고, 그 옆 벤치에 앉아있는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이때 처음 느끼지 않았을까. 서로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인 사람으로 있는 것이 어떠한지를. 10분 정도 머무른 다음 다시 다리를 건너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은 작은 도시의 소규모 박물관이겠거니 했던 예상을 뒤집었다. 상세하고 정교한 컬렉션이 있었다.
영주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았던 중세 자유도시 시절을 구현한 미니어처가 먼저 보였다. ‘바쁜 삶과 이동의 자유가 있는, 미국처럼 보이는 첫 번째 도시’라는 문구도 있었다 (1860년대 미국 대사의 기록이라 한다). 독일 제2제국 시절의 제국 깃발과 누구나 알아볼 만큼 강렬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그리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란 무엇인가’를 정의한 문장이 있었다. 광기에 의해 개인이 집단으로 흡수되고 집단이 다시 개인으로 흩어지는 과정이었다.
자유와 소속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건 나도 쉽지 않았다.
바로 그 나치 시대를 다룬 전시물들은 별도의 특별 전시전에 더 다양하게 있었다. (촬영 금지라 사진은 없다) 평일 낮임에도 시종 진중한 표정의 성인 관람객들이 있었다. 여럿이 어울려 관광하듯 박물관과 미술관에 오는 한국에서의 모습과는 달랐다. 거의 개인 한 명 혹은 많아야 둘이서 와서 말 한마디 없이,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전시물과 설명을 지켜봤다. 그 엄중한 분위기 속에 몰입될 수밖에 없었다.
관람을 끝내고 박물관에서 집중했던 뇌를 달래고자 요깃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 날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박물관에서 호텔로 되돌아오는 길에 중국식당에서 테이크아웃한 꼬치고기들과 중동 식료품 집에서 산 자몽인지 오렌지인지 모를 과일로 끼니를 때운 순간이었다. 한국을 떠난 이래 특히 그 루프트한자의 부실한 서비스 덕분에 제대로 된 고기 음식을 먹지 못했기에 더더욱 특별했다. 약간 기름지면서도 매콤하고 익숙한 중화식 향신료 양념이 더해진 닭꼬치와 양꼬치 그리고 느끼함을 보정해 주는 새콤한 감귤류 과일의 조합만큼 세상에 훌륭한 양식도 드물었다.
다시 호텔을 나서 중앙역사 북서쪽의 쇼핑몰 Skyline Plaza로 향했다. 떠밀리듯 떠나온 여행에서도 운동은 해야 했기에, 푸시업바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저 시점에서 나의 계획은 유럽에서 끊이지 않고 남미와 북미까지 갈 예정이었기에 홈트 도구가 필요했건만 챙겨 오지 못한 게 실수였다. 쇼핑몰 안에서 금방 한국의 다이소를 닮은 Flying Tiger라는 가게를 발견했지만 그 안에 내가 찾던 도구는 없었다. 몸 챙기려는 쇼핑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왔기에, 미리 점찍어둔 독일식 소시지 전문 레스토랑 '뢰머 필스 브루넨'으로 향했다. Hbf북서쪽의 쇼핑몰에서 중앙대로를 지나 뢰머 광장을 거쳐 식당까지 최소 30분 이상 걸었다. 중간 현대식 고층 건물 단지를 지나치며. 돌이켜보면 그런 고층 오피스를 지날 때마다 심적 체감 온도가 내려갔다. 철근 콘크리트 유리에서 느껴지는 그 차가운 느낌 때문이었을지. 그 주변만 유독 보행자가 적어서였을지.
좁은 길과 낮은 층고의 건물들, 북적거림과 비좁음이 그땐 편했다.
목표한 식당에 도착했을 무렵 괜찮은 평점에 비해 다행히도 대기 손님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곧바로 가게 구석의 창가 자리에 앉아서 주문했다. 말 꽁지머리를 한 동유럽 출신 종업원은 꽤 능숙한 솜씨로 고객을 대했다. 팁을 원하는 것 이상의 친절함은 없었다. 맥주를 0.7~0.8리터가량 마셨고, 샐러드는 신선했으며, 소시지는 정말 그냥 소시지 그대로였다. 웨이터가 팁을 받지 못할까 봐 신용카드를 꺼리는 눈치였기에, 적당한 만족감과 함께 일부 팁을 현금으로 남겼다.
비 오는 뢰머 광장과 중앙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지나 호텔 방향으로 되돌아갔고, 다시 프랑크푸르트 Hbf에 들어갔다. 전날 느낀 독일 역사 특유의 활기를 한 번 더 느끼기 위해서.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혹은 방황하는 여행자들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싶어서.
이후 쾰른에서도, 암스테르담에서도, 이탈리아 및 스페인 도시들에서도, 심지어 나에게 최초의 독일의 기억을 줬던 뮌헨에서도, 프랑크푸르트 Hbf에서 느낀 그 울리는 설렘은 겪지 못했다.
역사 내 서점에서 간단한 엽서류의 기념품을 사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전날 마주한 적 있는 집시 여자아이의 구걸을 외면하고 일부 부랑자들의 틈바구니를 지나면서 거의 뛰다시피 했다.
오후 9시가 넘어 더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도착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