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4월의 눈바람

2022년 4월 1일, 3일 차 기록

by Rhi hyun

애초에 프랑크푸르트는 길게 머물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밤새 다음 목적지를 숙고했으나 답이 없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파리에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고, 런던이나 그 외 독일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목적지이자 유일한 희망인 암스테르담은 주말에 비는 그치지만 흐릴 예정이었다. 서유럽에서 날씨가 좋은 곳은 스페인뿐이었지만 바로 가고 싶진 않았다.

처음 느꼈다. 갑자기 쫓겨나듯 떠난 여행이 내 뜻대로 계획 세운 대로 (세세한 계획은 애초에 없었지만) 되긴 어렵다는 것을.


첫 번째 장거리 이동 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음 날은 좀 늑장을 부렸다. 오전 내내 몇몇 친구와 메신저를 하기도, 여기저기 검색하기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쾰른에 가자”였다. 예전부터 귀에 익숙한 쾰른 대성당이 있고, 여차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넘어가기 좋은 독일 서부의 관문 격 도시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며칠 있으면서 주말이나 다음 주에 어디로든지 떠나면 되겠지.


그렇게 여유를 즐긴 뒤에 호텔을 나와 중심가 쪽을 더 둘러봤다. 호텔 근처의 U-bahn역 입구는 온갖 낙서로 가득했다. 2020년대 유럽의 중앙역 근처란 이런 것일까. 낮엔 그냥 혼란스러움을 줄 뿐이었지만, 으슥한 밤 대마초 냄새가 진동하는 와중에 지나치면 치안 부재의 위험을 느꼈을 것이다.

밤이었으면 지나가기 어려웠을 통로


후배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감자튀김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추천을 했기에, 역 근처 전문점으로 갔다. 쾰른행 열차를 타기에 시간이 조금 빠듯했지만, 중앙역 바로 앞이라 부담이 없었고 오전 11시 30분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주문했다.
중앙역 근처 거리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가게는 아늑하고 예뻤다. 녹색 식물과 우드톤, 그리고 노란 달빛 조명이 조화로웠고, 위생상태까지 신뢰할 수 있었다. 오픈 직후 갓 튀긴 감자튀김에 샐러드, BBQ 돼지고기와 콜라.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으로 든든한 한 끼를 채웠다.


잘 꾸민 식당 정도지만 회색 도시에서 약간의 안정감을 느꼈다


에너지를 채운 직후 쾰른행 열차에 탑승했다. 오랜만에 타는 독일의, 유럽의 기차였다. 티켓은 55유로 약 7만 원. 당일 예매 열차표라 꽤 비쌌다.
라인강을 끼고 올라가는 여정이라 독일 강변의 동화 같은 마을 풍경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음습한 날씨는 이 기대를 조용히 깨트렸다.

날씨가 맑았다면 동화 같았을 라인 강변 마을. 로렐라이 언덕이 가까웠다.


쾰른 중앙역 역시 천장이 유리 궁전처럼 된 거대하고 개방적인 구조였다. 탁 트인 시원함은 있었으나 프랑크푸르트에서 느꼈던, 결말을 알 수 없는 여정이 시작되는 감각의 몽환적 낭만은 없었다.

쾰른 중앙역에 진입할 때 어렴풋이 본 그 성당은 역에서 나왔을 때 더욱 잘 보였다. 현대적인 역사 너머로 검은 고딕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거대한 뾰족함은 종교적 성스러움보다는 “여기가 바로 독일이다”라는 게르만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뒤를 돌아볼 때마다 성당이 보였고, 이 거대 흑색 성당의 존재는 흔한 유럽의 주택가를 엄숙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역사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첨탑의 위용
성당 덕분에 장엄해진 쾰른 주택가


호텔 Santo까지의 거리는 지도상 10분으로 가까웠지만 이때부터 떠나오기 전 급하게 산 구두의 부작용을 겪었다. 새 신발이 아직 발에 익지 않은 채로 하루 몇 만 걸음씩 걸은 덕분에, 내 발바닥과 뒤꿈치는 퉁퉁 붓고 발가락은 짓눌린 듯 아팠다. 다리가 아니라 발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부르튼 발과 캐리어를 이끌고 겨우 중앙역에서 약 1km 북쪽에 있는 호텔 Santo에 도착했다. 인도계로 보이는 프런트 직원은 내가 들어가도 안쪽에서 자기 일만 할 뿐이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그제야 나왔다. 체크인이 끝날 때까지 한마디의 인사를 듣지 못했다. 밖이든 안이든 싸늘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호텔 방은 현대적이고 깔끔했고, 특히 욕실에 환기장치가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창 밖 풍광은 건너편 호텔이 보일 뿐이라 단조로웠지만 대신 프랑크푸르트와는 다른 조용함이 있었다.

체크인 무렵 휘날리던 수준의 눈비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강해졌다. 4월에 이게 뭔가 싶었지만 아늑한 호텔 방에 입실한 직후였기에 편하게 쉬며 창밖을 관조할 수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카톡도, 보이스톡도 아니고 전화였다. 만약을 위해 유심 교체가 아닌 로밍을 했던 것인데 도착 3일 차에 연락이 올 줄은. 전 직장의 관리자였다. 2월 말 갑작스러운 불운이 닥쳤을 때 나름 중간에서 조율을 하려 했으나 그 역시 어찌할 수 없었다. 한때 업무상 갈등도 있었지만 마지막 모습을 알기에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섞인 기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내가 독일 여행 중이라는 것에 놀라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순간 의례적인 안부일까 싶었지만 전화가 온 시간은 한국 기준 늦은 밤 12시쯤이었다. 떠난 지 한 달 넘은 사람에게 이 시간에 전화까지 한 건 조직 논리를 떠난 나름 인간적 배려였겠지. 통화가 끝난 후엔 잠깐의 상념과 함께 그대로 졸음에 빠져들었다.



그 해 두 번째 맞이한 겨울


깬 직후 허기가 찾아왔고, 며칠 만에 독일의 느끼한 음식들에 질린 것 때문인지 저녁은 아시아식으로 먹고 싶었다. 마침 근처에 평이 좋은 베트남 음식점 Viet Küche가 있었다. 여전히 고통을 주는 발바닥을 참으며, 눈비를 맞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입구와 간판이 눈에 띄지 않은 데다, 창 안쪽 실내조차 어두워서 문을 닫은 줄 알았다. 그러다 일요일이 아님을 떠올렸고 겨우 정문을 찾아 들어갔다.

직원은 독일어랑 베트남어에만 익숙한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메뉴를 보며 주문을 했고, 쌀국수와 닭튀김류 음식을 시켰다.


주문 후에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한 중년 여성이 포장 주문을 위해 들어왔다. 기다리던 와중에 그 여성은 가게에 홀로 있는 동아시아인에게 흥미가 생겼는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땐 왠지 그러고들 싶었나 보다.

프랑스인이었고, 간단한 인사와 소개 뒤에 나에게 영어로 What do you make?라고 묻는데 이게 직업을 묻는 건지 아니면 전공을 묻는 건지 좀 헷갈렸다. 내가 지금 만드는 것이라곤 카드 빚뿐인데 뭐라 답해야 하는 건가. 주저하는 사이 추가로 묻는다. “Music?"

내가 일반적인 관광객과 달리 셔츠와 남색의 블레이저 재킷의 정중한 차림새여서인지 날 음악 전공 유학생으로 여기는 듯했다. 독일에 있는 한국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테니까.

난 "I am just a traveler, I am traveling"이라고 여행 중임을 강조했으나, 전달이 안되었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What do you MAKE?" Make에 좀 더 강세를 둬서.

여전히 난 여행만 강조했고 이에 지쳤는지 “I am not good at English"말과 함께 간단한 인사를 하더니 떠나갔다. 답답한 표정과 함께.

아쉽게 끝난 짧은 대화였지만 그래도 누군가 사적으로 말 걸어준 게 어딘가. 인천 공항을 떠난 뒤, 사람 대 사람의 첫 대화였다.


나중에 번역기를 돌려보고 알았다. 프랑스어로 직업을 묻는 문장 ‘Qu'est-ce que vous faites?’ 의 단어 ‘faites’에 do와 make의 뜻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 그분은 그걸 make로 옮긴 듯했다. 직업이란 뭐가 되었든 남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니 의외로 적절한 표현일지도.


그런데... 그때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았더라도 내가 답을 할 수 있었을까?


인간적 관심을 보여준 이 중년 여성분을 아쉽게 떠나보내고, 곧장 나온 음식에 집중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지만, 급격한 공간의 이동 때문이었을까. 서쪽 나라에서 먹는 동쪽 나라의 면 요리, 고수와 향신료가 담긴 뜨거운 국물이 유독 반가웠다. 장소와 처지와 시간, 날씨가 한데 모여서 쌀국수 한 그릇이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소울푸드가 되었다.

여행 3일 차. 첫 번째 사람과의 대화


북극한파에 얼린 몸을 녹여준 고마운 한 끼



식당을 나서 근처 마트로 향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이후로도 그랬듯이 물, 과일, 빵, 초콜릿을 사기 위해서.

10분 거리 떨어진 마트에 도달할 무렵엔 눈비와 함께 휘몰아치는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한 겨울의 강추위만큼은 아니었지만 봄가을 차림의 홀로 여행자에겐 충분히 시린 날씨였다.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진 예상치 못한 4월의 눈바람은 당시엔 사무치게 아렸지만, 지금 같은 습습한 여름날 돌이켜보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신선한 감각을 준다. 과거 느낌은 현재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한국의 마트보다 더 다양하게 느껴진 독일 마트의 풍부한 물산에 감탄 후, 곧바로 호텔로 복귀했다. 일기 예보를 봤더니 다음날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맑음.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과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땐 쾰른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여정은 중간에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 편도 3시간 남짓의 가까운 거리로 느껴졌다. 토요일 밤 암스테르담의 호텔 값이 상당히 비싸기도 했다. 이에 직선거리 200km의 또 다른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3박 요금을 결제한 쾰른 호텔에 캐리어를 둔 채, 서울-대구 거리를.
편도 52유로 약 7만 원. 돌아오는 표 역시 비슷한 49유로. 이렇게 100유로만 썼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테지만... 실제로는 갑절의 돈을 내서 겨우 돌아오는 참사를 겪게 된다.

다음 날은 암스테르담으로 가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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